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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유도로' 빛 좋은 개살구
편의증진센터
2015-07-31
5356

 
막히고 끊긴 점자블록 … 아슬아슬 벼랑길 아찔
 차량 등 유도로 위 장애물에 부딪히기 일쑤
 블록 갑자기 끊겨 차도방향 보행 '위험천만'
흉내 아닌 진정한 '선진복지행정' 구현해야'

2015년 07월 27일 월요일

 

 

▲ 휘어진 길에 노란 유도블록이 끊어져 있어서 시각장애인들은 진행하던 방향을 따라 위험한 차도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 /사진제공=수원지체장애인협회

 

우리 사회의 장애인 복지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복지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는 무엇이며 장애인들의 삶은 실제로 얼마나 나아지고 있는 걸까.

이전에는 야당에서 외치던 복지 구호를 이제는 여당이 선점하는 시대다. 대선을 포함한 모든 선거에서 '복지'는 가장 매력적인 공약(모두가 알다시피 여기서 공자는 빌 공(空)자인 경우가 많다)이다. 

그에따라 복지 수준은 점차로 나아지고 있거나, 나아지고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 낸다. 본지는 '만져지는 복지'를 체감하고자 한 시각장애인의 시내 외출에 동행했다.

시각장애인 A(57·시각장애 1급·수원시 세류동 거주)씨는 녹내장으로 하루아침에 시력을 잃었다. 3년간 집안에서만 지내다가 용기를 내 '밖으로 나오는 일'에 성공했다. 그는 매일 산책을 다닌다. 수원시 세류안길에서 남문까지 하천길을 따라 약 3㎞ 가량의 거리를 걷는다.

그의 정강이는 상처투성이다. 볼라드 등의 장애물에 부딪혀 상처가 아물만 하면 다른 상처가 생긴다. 그래도 그는 외출을 포기하지 않는다. 밖으로 나와서 사람들과 어울려야 웃으며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본지는 그와 더불어 수원시내 도로에서 산책을 해보았다. 시내의 인도에는 다행히 점자블록이 깔려 있다. 도로를 만들 때 '시각장애인 유도로'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법규가 정해져있기 때문이다. 

산책은 노란 점자블록이 깔린 팔달구 매산로에서 시작됐다. A씨는 싱그러운 바깥공기에 코를 벌름거리며 길을 따라 조심스레 발을 옮겼다. 조금 걸어가자 장애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폐가전제품과 리어카, 자전거, 입간판, 주차된 차량 등이 노란색의 유도로를 막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시각장애인에게 어떤 폭력을 행사하는 것인지 알지 못한 채 길을 막아놓고 있었다. A씨는 지뢰탐지기를 든 군인처럼 흰지팡이로 위험물을 탐지했지만 자주 부딪혔다.

그의 외출은 느닷없이 날아오는 타격과의 끊임없는 싸움이었다. 더구나 길 가운데에 설치돼야 할 점자블록이 자전거도로를 피해 벽쪽으로 바짝 붙어서 만들어진 탓에 걷는 일은 아슬아슬한 벼랑길처럼 힘겨웠다. 또한 예전에 설치된 점자블록은 신설되는 KS규격품(가로, 세로 30㎝)와는 달리 작은 벽돌로 돼 있어서 촉지(촉각에 따른 인지)가 어려웠다.

 '지뢰밭' 같은 길을 힘들게 가다보니 점자블록이 갑자기 끊겼다. 매산로 86번길이었다. 당황한 A씨는 흰지팡이를 더듬거리며 방향을 모색했다. 하지만 그의 발길은 차들이 꼬리를 물고 달려오고 있는 차도를 향하고 있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시각장애인 유도로가 갑자기 끊어져 버리는 곳은 매산로 뿐만이 아니었다. 정조로 사거리 이춘택병원 앞에서 세류동 방면의 인도에도 점자블록은 없었다. 화성행궁 광장 앞 200m 가량의 인도에도 유도로가 끊겨있다. 시각장애인에게는 길을 가다가 갑자기 벼랑을 만나는 기분일 수밖에 없다.

A씨는 말했다. "외출을 나갔다가 사고를 당하는 것은 약시 장애인들이 더 많다. 조금 보이는 탓에 거리로 나섰다가 낭패를 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각장애인들은 행정기관에서 운영하는 차량이나 바우처 도우미를 이용하거나 집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빛 좋은 개살구'인 복지행정을 믿고 외출했던 교통약자들을 오히려 위험에 몰아넣는 장애인유도로는 '독이 든 사과'다.

이것은 수원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기도 전체, 나아가 전국적 현상이다. 혈세를 들여서 쓸 수 없는 장애인 편의시설을 만드는 것이 '선진복지 구현'이란 정책의 초라한 현주소인 것이다. 이런 도로상황에서는 경기도 5만여명, 수원시 4300여명의 시각장애인들이 거리를 홀로 마음 놓고 걸을 수 없다.

경기도의회는 지난 6월17일 '장애인 등의 편의시설 사전·사후점검에 관한 조례'를 일부개정했다. 이 조례에 따르면 "편의 시설이 적합하게 유지·관리되는지 점검하는" 실태점검을 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수원시도 지난 6월5일 '교통약자 이동편의시설의 사전·사후 점검에 관한 조례'를 마련했다. 원칙이 세워졌으니 이제는 실행의지와 방법이 문제다. 경기도시각장애인협회는 편의시설 점검요원 양성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민·관이 협력하는 거버넌스의 형태도 해법의 한 방법으로 모색되고 있다.

도로에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잘 돼 있으면 노인, 임산부, 어린이 등 모든 교통약자가 편해질 수 있다. '선진 복지행정 구현'은 예산과 법규, 슬로건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정책의 입안과 실행 과정에서 전문적이고 명실상부한 '역지사지'가 필요하다. 장애인의 입장에서 볼 때 '이건 뭐지?' 싶은 경우가 빈발한다면 그건 복지가 아니고 '복지흉내'이다.


 /양훈철 기자 yang@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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