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선 2015.12.07 17:37:24
시각장애인을 위한 지도를 말하는 촉지도는 손끝의 촉각으로 정보를 읽어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지도인데, 시각장애인만을 위한 지도이다 보니 색과 모양이 단순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설리번학습지원센터 촉각교재제작팀이 만든 3D 촉지도는 독특하다. 마치 건축물과 도로들을 그대로 축소시켜 놓은 듯 입체적이고 색도 알록달록해서 하나의 미술작품을 보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3D 촉지도가 가진 심미성으로 일반인의 관심을 끌고 실용성으로 시각장애인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는 설리번학습지원센터 촉각교재제작팀을 만나 3D 촉지도에 대해 알아봤다.
‘제89회 시각장애인 점자의 날’을 맞이하여 시각장애인에게 도움이 되는 물품들을 소개하는 전시회가 국회에서 열렸다. 국회의원회관 입구에서 다소 협소하게 열린 전시회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3D Finger Map'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는 네모난 물체이다. 2m 남짓 되는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이 물체는 시각장애인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소개된 다양한 물품 중, 크기부터 남달랐다.
'3D Finger Map’은 3D 촉지도라는 이름으로 주로 불린다고 했는데 거치대를 제외하면 가로 1m, 세로 90cm 정도의 크기였다. 3D 촉지도는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평면적이고 차가운 금속으로 제작된 관공서용 촉지도와는 그 모습이 많이 달랐는데 요즘 유행하는 모바일지도 앱(APP)을 켜서 하늘 위에서 직접 건물과 건물 사이를 가로지르는 도로를 보는 것과 같이 한 동네 자체를 그대로 담은 듯했다.
건물의 높이는 제각각, 색도 각자 빨간색, 하얀색, 파란색 등 알록달록했고 건물들 사이로는 인도와 도로가 지나가고 있었다. 건물 앞에는 점자로 그 건물이 어떤 곳인지 나타내는 표시가 있었다. 고무소재로 된 건물을 만져보니 신기하게도 바로 그 건물 앞에서 서 있는 듯 ‘OO은행입니다’라는 음성과 함께 횡단보도가 몇 시 방향에 있는지 음성안내가 나왔다.
무엇보다 특별했던 건 안내하는 음성과 함께 전해져오는 현장의 소음이었다. 도로에 차가 지나가는 소리, 사람들의 말소리, 횡단보도가 켜지고 시각장애인용 안내 음성이 나오는 소리 등등 시각적으로도 눈에 띄었지만 그 기능도 신기했다. 취재원은 3D 촉지도를 직접 제작했다는 설리번학습지원센터의 촉각교재제작팀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촉각교재제작팀은 이런 곳
촉각교재제작팀은 시각장애인들이 학습하거나 생활하는 데 있어서 불편한 부분에 촉각을 접목하고 이를 3D프린터로 출력하여 이해와 편리를 도모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이인애 팀장과 김준영, 이송 미술점역사를 만날 수 있었다. 생소하게 느껴지는 점역사는 일반도서의 문자, 수식, 그림 등을 점자로 바꾸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수학, 외국어 등 다양한 분야가 있다고 했다.
촉각교재제작팀에 있는 점역사들은 모두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미술점역사라고 했는데 미술점역사로 구성된 촉각교재제작팀은 5년 동안 기초를 닦아 올해 2015년에 신설됐다고 했다. 이곳은 기본적으로 시각장애인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목적이 있지만 그 밖에도 상징적인 의미도 있다고 했다. 이인애 팀장은 “시각장애인들에 대한 인식개선을 돕기 위해 시각장애인들이 사회의 더 다양한 부분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으며 계속해서 연구하고 기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준영 미술점역사의 경우는 실제로 3D 프린터로 3D 촉지도를 만드는 일을 맡고 있다고 했는데, 그는 3D 프린터가 움직이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면서 “촉지도라는 건 보통 선이나 2D쪽으로 많이 제작된다. 입체적이지 않다. 하지만 시청각장애인들은 공간 감각이 떨어지고 교육적으로도 도움을 줘야 하기 때문에 보다 더 입체적으로 제작해 시각장애인들에게 교육 목적으로 제공을 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어려움도 있다고 덧붙였다. 아직 개발 초기 단계라 3D 촉지도를 접했을 때 낯설어하는 시각장애인분들도 많다는 것이다. 김준영 미술점역사는 “앞으로 사용 방법을 표준화시킨 뒤 책자를 제작해서 보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시각장애인들의 알권리
눈이 보이는 입장에선 ‘시각장애인이 굳이 건물의 높낮이까지 알 필요가 있을까? 길을 찾아가는 게 더 중요한 것 아닌가?’하고 생각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김준영 미술점역사는 “3D 촉지도에 대해 신기해하는 시청각장애인들도 있지만 어떤 분들은 보행에 중점을 두는 게 어떻겠냐는 소리도 한다”면서 “제작팀이 건축모형처럼 촉지도를 제작하는 이유는 시각장애인들도 일반인들처럼 똑같이 ‘알권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일반약도처럼 제공하면 제작하는 입장에선 편리하지만 제작팀의 목표는 시각장애인들에게 건물의 모습을 일반인들이 보는 것처럼 똑같이 보여주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가령 일반인들이 지도를 봤을
때 ‘이쪽은 오밀조밀하구나. 건물은 어떤 형태구나’와 같은 걸 느끼듯이, 시각장애인들도 3D 촉지도로 똑같은 것을 느꼈으면 한다는 얘기다.
3D 촉지도는 어떻게 구성되나?
이인애 팀장은 “시각장애인들에게 일반인이 길을 보듯 똑같은 것을 보여주고 싶지만 한계점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복잡한 모양을 시각장애인이 전부 학습하기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길 간격에 일정한 패턴을 적용시킨다고 했다.
“3D 촉지도의 경우 ‘3D Finger Map’이라고 해서 기본적으로 손가락이 가면서 모양을 인지할 수 있게 합니다. 이 때문에 기본적으로 손가락이 가는 길을 1cm나 1.2cm 정도로 열어두는 거죠. 건물 높낮이에도 패턴을 적용합니다. 1cm는 주거 공간, 2cm는 랜드마크 중에서 편의점이나 빵집처럼 시각장애인들이 잘 기억하는 장소, 3cm 높이는 관공서입니다.”
이 팀장은 색깔에도 패턴이 있듯이 여기서도 색깔을 적용하는데 가령, 주거지역은 흰색, 상가는 파란색, 센터나 주요건물(맹아학교 등 아이들이 주로 다니는 건물)은 붉은색으로 표시한다고 설명했다. 색깔 패턴은 저시력인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적용했다고 했다. 저시력 시각장애인의 경우 아예 시력을 잃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색을 가까이에서 보면 원색은 구분할 수 있다. 반면에 점자나 음성이 들어가는 것은 점맹(아예 시력이 없는)인 시각장애인을 위한 것이다.
이 팀장은 “타겟을 한 가지로 정해서 촉지도를 만들면 편할 수도 있지만 다양한 타겟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정보를 담느라 촉지도를 제작하는데 어려움도 따른다고 털어 놓았다. 다만 촉지도를 단순화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고 과장되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추가로 부연설명을 해주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3D 촉지도의 소재
김준영 미술점역사가 3D 촉지도를 직접 보여주며 “시청각장애인분들은 지도를 누른다기보다도 ‘스윽~’하고 쓸 듯이 만진다. 이번 촉지도가 기존 촉지도와 다른 거라면 누르는(Push) 방식이 아니라 터치(Touch) 방식이다. 건물의 특정 부위가 아닌 전체적인 부분을 만져도 반응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시각장애인들의 경우 손끝이 아주 예민한데, 관공서 촉지도의 경우 소재가 스테인리스다 보니 겨울에는 차갑기도 하지만 지문을 닳게 만들어 아프다는 분들이 있어서 이번 촉지도 제작에서는 소재까지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저희가 제작하는 촉지도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고무소재를 선택해서 제작하고 있습니다. 고무의 경우 후(後)가공이 아주 어렵기 때문에 수작업으로 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까 칼질을 하다가 손을 베는 경우도 많습니다. 고무소재는 3D 프린터 업계에서도 디테일한 표현이 힘들어 잘 쓰지 않아요. 그러나 시각장애인들은 손끝에서 느껴지는 아주 작은 부분도 정보로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디테일하게 제작하려고 합니다.”
종로만 적용, 점차 확대할 예정
현재 제작된 3D 촉지도는 설리번학습지원센터가 위치한 종로 지역만 대상이다. 서울시 교육청을 시작으로 해서 경복궁 조금 포함한 부분까지다. 이러한 범위제한은 맹아학교가 설리번학습지원센터와 비슷한 블록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기도 한다. 맹아학교의 학생들이 주로 종로를 오가기 때문인데 이 팀장은 앞으로 계속해서 대상 지역을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다음 계획은 경복궁터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실용성을 최대한으로 갖춰서 시각장애학생들이 여가까지 즐길 수 있도록 돕고 싶어서라고 했다. 3D 촉지도는 올해 처음 만들었기 때문에 보급된 곳은 아직 없다. 이 팀장은 “올해는 현재 가르치고 있는 시각장애 학생들의 보행교재로 쓸 생각이고 추후에 협의를 해서 경복궁 역에 비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여기에만 비치를 해두면 시각장애학생들만 보지만 경복궁역에 비치를 해두면 시각장애학생이 아닌 사람들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시각장애인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개인을 위한 특별한 촉지도
이 팀장은 또 한 가지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 ‘아이들 각자 자신만의 길’을 제작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아이들 개개인을 위해서 만든 촉지도를 본 사람 중에 누군가는 그 촉지도를 보고 아이를 돕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시초가 되었다. 시각장애인들은 시력을 잃은 대신 다른 감각들이 예민해진다고 한다.
특히 후각이나 청각, 촉각에 예민해지는데 그들이 랜드마크를 기억하는 방식이 아주 흥미로웠다. 예를 들면 빵집이나 커피숍처럼 냄새가 나는 곳을 지나칠 때, 그곳만이 가진 향기를 기억해두었다가 개인취향대로 자신만의 길을 갖게 된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아이들 개개인의 취향에 맞춘 길을 넣은 촉지도는 이미 기획이 들어가 있는 상태로 올해 12월 중순이면 나올 예정이다. 촉각교재제작팀은 이를 통해 대중들이 시각장애인들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촉각교재제작팀은 아직 소수의 인원이고 팀이 형성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아 홍보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홍보를 위해 지난 5월과 6월에는 부스 후원이 들어와 미술페어에도 참가했다. ‘제89회 시각장애인 점자의 날’에는 국회의사당에서 전시회도 가졌다. 학계와 연계해서 도움을 주고받지만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일반인들의 협력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시각장애인을 돕는 일이 우리만의 리그로 끝나지 않고 모두의 리그가 되길 희망한다는 이 팀장은 “앞으로도 계속 심미성과 실용성을 둘 다 잡은 촉각자료를 개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시각장애 학생들의 마음을 ‘치유’해주고 싶다는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모든 일이 한 번에 이뤄질 수는 없지만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 것처럼 꾸준하게 노력해나갈 것”이라는 촉각교재제작팀의 말이 오랫동안 귓가에 맴돌았다.
MeCONOMY Magazine December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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