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진 기자
입력 2015-12-18 03:00:00 수정 2015-12-18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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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주제 ‘이제는 실천’]<242>장애물 없는 시설 만들기
세 살 때 눈이 멀었다. 심한 열병이 빛을 앗아갔다. 항상 걸음을 조심해야 했다. 다른 사람이나 벽에 부딪치기 일쑤였다. 마음 놓고 발을 내디딜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이형례 씨(66·여)에게 하얀색 지팡이에 의존해 혼자 길을 걷는 것은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2008년 상상은 현실이 됐다. 서울 남산에 걷기 좋은 산책로가 생겼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블록이 3.5km에 이르는 산책로를 따라 깔려 있었다. 급격히 꺾이는 부분이 없어 부딪칠 염려 없이 편히 걸을 수 있었다. 이 씨는 매일 이 산책로를 따라 운동했다. 15일 오전 10시에도 자주색 털모자를 쓰고 오리털 점퍼까지 껴입은 이 씨는 오른손에 쥔 하얀색 지팡이로 바닥을 좌우로 가볍게 ‘콩콩’ 하고 두드리며 산책을 시작했다. 이 씨는 “서울 시내에 시각장애인들이 마음 놓고 발 디딜 수 있는 공간이 생겨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장애인 편의시설이 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2007년부터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제도’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장애인이나 노약자가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건물이나 시설물을 인증해 주는 제도다. 서울시 청사,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국립현대미술관 등 전국 203곳이 인증을 받았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정작 장애인들이 이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서울 지하철 7호선 어린이대공원역에는 공원 입구까지 300여 m에 걸쳐 점자블록이 설치돼 있다. 하지만 출입구 공사 가림막 등이 블록 연결을 막고 있었고 정작 공원 내부에는 블록이 없어 시각장애인 혼자 공원시설을 즐길 수 없는 구조였다. 15일 이곳을 찾은 시각장애인 나병택 실로암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52)은 “점자블록만으로는 목적지를 제대로 찾는 데 한계가 있고 그마저도 공사 때문에 중간에 끊겨 있어 길 찾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승철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재활지원센터 팀장은 “장애인 편의시설이 수적으로는 늘고 있지만 정작 실효성이 없는 경우가 많다”며 “장애인들이 직접 의견을 내고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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