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언론 비마이너 촬영
1급 장애인 이도건(36)씨가 장애인 단체들이 입주한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의 건물 현관 처마에 오른 지 16일로 열흘째입니다. 이씨는 농성에 들어간 7일부터 곡기도 끊었습니다. 경기 용인에 사는 이씨는 경기도 장애인단체들이 모인 경기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장애인공투단)의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대학 때 교통사고를 당해 휠체어 없인 이동하기 어려운 지체장애 1급 이 위원장이 남의 건물 처마에 올라 세상을 향해 하고픈 얘기는 무엇일까요. 이 위원장은 장애인도 비장애인처럼 바깥활동을 할 동등한 권리가 있고 공공 교통수단이 이를 뒷받침해야 하는데 경기도는 별 관심도 없고 심지어 지난해 장애인단체와 한 약속까지 지키지 않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이 위원장과 전국장애인철폐연대 그리고 경기도 쪽의 말을 두루 들어봤습니다.
1. 저상버스 보급률 13%…장애인도 버스 좀 탑시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한국교통연구원에 의뢰해 펴낸 ‘2015년도 교통약자 이동편의 실태조사 연구’를 보면, 경기도 인구 1235만여명 가운데 일상생활에서 이동에 불편을 느끼는 교통약자는 292만여명에 이릅니다. 장애인(31만여명), 고령자(65살 이상·125만여명), 임산부(11만여명), 어린이(63만여명), 영유아동반자(61만여명) 가운데 중복 인구를 뺀 수치입니다. 서울처럼 지하철이 곳곳에 가 닿을 수 없는 경기도의 특성상 이들 교통약자들이 이용하기 편리한 대중교통 수단은 차체 바닥이 낮아 타고 내리기 쉬운 저상버스입니다. 그런데, 경기도에 보급된 저상버스는 전체 시내버스 1만522대 가운데 1376대로 도입률은 13.1%에 그칩니다. 전체 시내버스 7482대 가운데 2653대의 저상버스를 보유해 전국 1위를 차지한 서울의 도입률(35.5%)의 3분의 1을 조금 넘는 수준으로, 전국 평균(19.9%)에도 한참 모자랍니다. 전국의 시도 가운데 가장 많은 인구 1200만여명이 경기도에 산다는 점을 감안하면 불편함을 느끼는 장애인 등 교통약자들이 매우 많은 셈입니다.
경기420공동투쟁단은 경기도가 통상적으로 9∼11년마다 교체하는 도내 버스 교체기 때 일반버스를 모두 저상버스로 바꾸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면 앞으로 10년 안팎에 걸쳐 저상버스 도입률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합니다. 저상버스는 장애인한테만 편리한 게 아니라 임신부나 어린이, 노인 등 교통약자들이 이용하기에 두루 장점이 많습니다.
시·군 이동은 하늘의 별따기…장애인용 교통수단 지원 확대 필요
정부는 교통약자들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2005년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하 교통약자법)을 만들면서 저상버스와 함께 이른바 특별교통수단이라는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특별교통수단이란 대개 승합차의 뒷부분을 개조해 휠체어를 통째로 싣고 1·2급 장애인이 멀리 이동할 수 있는 교통수단을 말합니다. 서울에선 장애인콜택시라고 부르는데, 전국의 자치단체마다 쓰는 명칭이 다 다릅니다.
경기도가 도입한 특별교통수단은 모두 566대입니다. 교통약자법에 의하면, 특별교통수단 법정 대수는 장애인 200명당 1대입니다. 경기도는 법정 대수(547대)보다는 높은 도입률(103.5%)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이 법정 대수 기준 자체가 터무니없이 낮은 데다 경기도 내 31개 시·군이 운영을 따로 하고 있어 문제가 크다고 말합니다. 이 위원장은 “특별교통수단이 부족해 장애인이 한 번 쓰려면 1주일 전에 예약을 해야 하고 당일에도 너댓시간을 기다려야 겨우 쓸 수 있는 상황”이라며 “시·군마다 이용요금도 다르고 운영하는 센터도 서울처럼 한 곳에서 통합 운영하는 게 아니라 다 다르다보니 매우 불편하다”고 지적합니다.
이 때문에 경기 용인시에 사는 장애인이 구리시에 볼 일이 있어 용인시의 특별교통수단을 불러 타고 가면 일을 마친 뒤 다시 용인시로 돌아올 수가 없답니다. 구리시는 장애인용 특별교통수단을 운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일을 마칠 때까지 특별교통수단 기사한테 기다리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이도건 위원장은 경기도내 특별교통수단 도입률을 현재의 2배인 200%로 올리고, 경기도가 31개 시·군 운영센터를 하나로 통합해 광역센터를 운영하자고 제안합니다. 가평군에 사는 장애인이건 수원시에 사는 장애인이건 단일한 전화번호를 쓰는 광역센터에 전화를 걸면 광역센터가 기초자치단체 운영센터에 연락해 특별교통수단을 배정하면 장애인들이 한결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아주 상식적인 방안입니다.
3. 경기도의 약속 위반…17일 시한 놓고 협상
이도건 위원장은 경기도의 약속 위반이 없었다면 이번에 목숨을 건 단식농성까진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위원장 등 장애인공투단은 ‘장애인 차별 없는 경기도를 만들기 위한 10대 정책 과제’를 경기도에 제안하는 등 그동안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꾸준히 노력을 해왔지만 경기도는 시큰둥한 반응만 보였습니다. 급기야 지난해 10월 장애인 활동가들이 광역버스 한 대를 붙잡고 점거농성에 들어가자 경기도는 단체 쪽에 공문을 보내 약속을 하기에 이릅니다. “향후 10년 이내 저상버스로 100% 전환 추진하고 2016년 300대 이상 도입 추진”, “특별교통수단 도입 확대와 시군 운영의 통일성을 기하기 위해 운영비의 도비 지원 비율을 10%에서 30% 이상으로 증액하고 2018년까지 특별교통수단이 200% 이상 도입되도록 시·군 지원정책을 시행하겠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해가 바뀌자 경기도의 태도는 돌변해 관련 예산 배정도 제대로 하지 않고 애초 300대 도입하겠다던 저상버스도 겨우 32대 늘리는 데 그쳤다는 게 이 위원장 등의 주장입니다. 올해 39억원을 배정한 특별교통수단 도입 지원액도 올해까지만 지원하고 내년부턴 하지 않는 ‘일몰예산’으로 돼 있습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 면담을 요구하던 장애인공투단이 지난달 13일부터 경기도청 예산담당관실 점거농성에 들어가고 6월2일에는 이 위원장이 수원역 앞 육교에 휠체어를 매단 채 농성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 위원장은 더 큰 여론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장소를 옮겨 7일부터 여의도 단식농성에 들어간 것입니다.
이 위원장은 “거리에 휠체어 탄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은 장애인이 원래 피동적이어서가 아니라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환경 때문입니다. 장애인의 80∼90%는 후천적 장애인이에요. 장애인한테도 동등한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와 지자체가 존재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경기도 쪽은 당시 공문에 대한 해석과 관련한 입장의 차이가 있답니다. 경기도 장애인복지과 관계자는 “우리 쪽은 그런 방향으로 노력하겠다는 얘기이지 꼭 관철하겠다는 건 아닌데, 단체 쪽에선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경기도와 공투단은 일단 17일까지 합의안을 도출키로 하고 논의를 진행 중입니다. 원만한 합의안이 나와 이 위원장이 단식을 멈추고 땅에 내려오게 될지, 또 다른 극한의 상황에 내몰리게 될지 지켜볼 일입니다.
모든 사람은 장애인이거나 잠재적 장애인입니다. 사고가 없더라도 나이가 듦에 따라 크고작은 장애없이 세상과 이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교통약자를 위한 공공의 투자가 많은 사람들한테 두루 혜택을 가져다준다는 장애인단체 쪽의 주장이 무리하다고 비난할 순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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