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올림픽 장애인 편의시설 우수업소 마크다.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올림픽 개최지에 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음식,숙박업소를 더 많이 만들기 위해 벌이는 캠페인에서 그 업소들에 부착하기로 한 공식 마크다.
"장애인이 업소에 들어가는 모습" 그런데 이 마크의 장애인, 뭔가 달라 보이지 않는가?
아직 뭔가가 느껴지지 않는다면, 아래 사진을 보자.
왼쪽은 국제 공인 장애인 마크고, 오른쪽은 지금 국제적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새로운 장애인 마크다. 이제는 둘의 차이가 느껴지는가, 왜 40년 넘게 사용된 국제 공인 장애인 마크를 바꾸려고 하는지 말이다.
이미 공식 장애인 마크를 오른쪽의 새 마크로 바꾼 미 뉴욕주의 쿠오모 주지사는 교체 법안 서명 당시 그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원래 마크는 ‘장애인’이라는 사실에 방점을, 새 마크는 ‘인간’이라는 사실에 방점을 찍고 있다”. 미국 보스턴시의 한 미술운동가가 시작한 작은 시도가, 지금 전세계에 장애인 마크 논쟁을 블러일으키고 있다.
다운증후군 아들 엄마의 도전
미 보스턴 하버드대 디자인대학원에 재학중이던 사라 핸드렌(Sara Hendren)은 다운증후군 아들을 둔 엄마다. 장애인 문제에 관심이 없었던 핸드렌은 지난 2005년 다운증후군 아들을 낳고서야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아직 열악하다는 걸 알게 됐다. 핸드렌은, 아들은 분명 장애인인데도 휠체어를 타지 않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사회적 지원에서 종종 소외된다는 걸 깨달았다. 역설적으로 핸드렌은, 휠체어를 탄 사람을 표현한 장애인 마크에 주목했다. 왜 사람들은 장애인을, 휠체어에 의존하는 수동적 존재로만 보는 걸까? 장애인도 활동적이고 독립적일 수 있고, 또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사회가 지원해야 하는 것 아닌가?
2009년 핸드렌은 함께 거리미술운동을 하던 고든대학 교수 브라이언 글레니와 함께, 이른바 ‘장애인 마크 논쟁’을 일으켜보기로 했다. 새로운 장애인 마크 디자인을 거리에 부착해 사람들이 장애인 마크를 눈여겨보고 그걸 통해 장애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자는 계획이었다. 게릴라식 장애인 마크 부착 프로젝트다. 핸드렌은 스스로 휠체어를 움직이는 모습의 보다 역동적인 장애인 마크를 새로 디자인했다. 그리곤 그걸 보스턴시의 각종 공공장소, 주차시설 등의 장애인 마크 위에 덮어붙였다. 사람들의 반응이 어떤지 봤다. 그런데, 그걸 보는 사람들의 반응이 신통찮았다. 사람들이 장애인 마크의 존재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아예 눈길을 주지도 않은 것이다. 핸드렌은 2개의 마크를 비교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고안했다. 새 마크를 투명한 스티커로 만들어 기존 장애인 마크 위에 덧붙이는 것이다. 기존 마크도 보이고, 새 마크도 같이 보이게 말이다. 그걸 보고 사람들이 ‘장애인 마크가 2개 있네, 뭐가 다르지? 새 마크는 더 역동적이네“하고 느낄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사실 기존 장애인 표지를 훼손하는 이 시도는 불법적인 것이다. 걸리면 벌금을 물 수 있다. 하지만 많은 보스턴 시의 미술운동가들이 프로젝트에 동참했다. 천여 개의 새 투명 장애인 마크가 보스턴 시내 여기저기의 장애인 마크에 덧붙여졌다. 그리고 2011년 초, 드디어 지역 언론이 이에 대해 보도했다. 대체 왜 이런 게릴라 프로젝트가 시도되고 있는가?
게릴라 프로젝트가 진짜 표지판으로 거듭나
핸드렌의 게릴라식 새 장애인 마크 덧붙이기 프로젝트는 장애인 마크 자체를 정말 바꾸려던 시도는 아니었다. 장애인 마크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 사람들이 장애인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해 더 많이 얘기하게 만들려던 시도였다. 그런데, 지역 언론의 보도 뒤, 정말로 장애인 마크를 새 마크로 바꾸고 싶다는 요청이 쇄도했다. 학교, 기업, 공공기관 등지에서 자신들의 장애인 마크를 새 걸로 바꾸겠다며 디자인을 달라고 요청해왔다.
하지만, 핸드렌의 마크는 미술운동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기에, 여러 규정에 적합하지 않았다. 미 연방장애인법(ADA: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에 따르면 장애인 마크는 바탕색과 표지색의 대비가 70% 이상이어야 하는데, 핸드렌의 마크는 투명 바탕에 오렌지색이라 이 규정에 어긋났다. 또 국제 표지판 규격에 맞게 선의 굵기 등도 조정돼야 했다. 전문 디자이너가 동참해 몇 달을 연구한 끝에 실제 공공표지판에 사용할 수 있는 지금의 새 마크 디자인이 완성됐다.
새 장애인 마크가 정말 사용될 수 있게 된 것이다. 매사추세츠주 고든 대학을 시작으로 매이든시 등 지방자치단체, 클락크스 같은 기업들이 연이어 마크를 바꿨다. 미국의 다른 주에서는 물론 이탈리아, 스웨덴, 캐나다 등 세계 각지의 학교, 병원,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새 마크로 바꾸기 위한 조언을 구해왔다. 핸드렌은, 사람들이 장애인에 대한 자신들의 다른 생각을 표현하고 싶어 한다는 걸, 그런 사회적 인식 변화의 욕구가 이미 광범위하게 존재해왔다는 걸 깨달았다.
뉴욕주, 미국에서 처음으로 공식 마크로 채택
이런 움직임이 퍼지면서 뉴욕시장실에서 이 마크를 공식 도입하는 논의를 시작해 결국 미국에서 처음으로 뉴욕주가 새 마크를 공식 장애인 마크로 채택하게 된다. 지난 2014년 7월 24일 미 장애인법 제정 기념일에 쿠오모 주지사는 2가지 법안에 서명했다. 첫째, 장애인 표지에 Handicapped라는 말을 더 이상 쓰지 않고 Accessible이란 말만 쓴다. 둘째, 뉴욕시의 장애인 마크를 새 마크로 바꾸는 법안이다.
영어에서 장애인을 뜻하는 한 단어인 handicapped는 과거 많은 장애인들이 손(hand)에 모자(cap)을 들고 구걸을 한 데서 유래한 말로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담고 있으니 쓰지 말고, 장애인의 접근이 가능하다는 뜻의 accessible로 통일하자는 것이고, 두 번째로 장애인 마크를, 장애인의 휠체어 의존성이 아니라, 장애인의 역동성과 인간으로서의 독립 의지를 강조한 새 마크로 바꾸자는 것이다.
끝나지 않은 도전... 국제적 마크 논쟁
그렇다면 이제, 모두가 새 장애인 마크에 행복한가?
뉴욕주의 새 법안은 2014년 11월 22일에 발효됐다. 새로 짓는 모든 건물, 주차장, 새로 장애인 마크를 바꾸는 모든 건물과 주차장 등은 이제 새 마크를 부착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미 연방정부는 아직 이 마크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 연방장애인법에 따른 공식 장애인 마크는 기존 마크다. 따라서 기존 마크를 사용하지 않으면 장애인법 위반으로 벌금을 물 수 있다. 만약 미 연방정부의 법무부가, 새 마크가 기존 마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사용이 가능하다는 법률적 해석을 내려주면, 새 마크의 사용은 합법적인 것이 된다. 뉴욕주의 건물주들은 지금 연방정부의 법적 해석을 기다리고 있다. 연방정부가 새 마크 사용에 실제로 벌금을 물린 사례는 없다. 하지만 만약에라도 벌금을 무는 경우를 피하려면 뉴욕주의 건물들은 새 마크와 기존 마크 모두를 부착해야 할 것이다.
주의회를 통과해 조만간 새 마크를 공식마크로 사용하게 될 미국의 두 번째주 코네티컷, 피닉스시, 엘파소시 등 이미 새 로고를 사용하는 지방자치단체들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특히 주와 시의 건물은 마크를 바꿔도 연방정부에서 관리하는 고속도로 등에는 새 마크를 사용할 수 없다. 미 연방 고속도로국은 지역의 고속도로 시설 표지판까지 새 마크로 바꾸게 해달라는 요구를 연방장애인법에 의거해 거부했다.
새 마크가 처한 더욱 큰 도전은 기존 마크를 옹호하는 장애인 관련 국제단체들의 비판적 시각에 있다. 국제표준화기구 ISO는 새 마크로 바꾸자는 제안에 대해, 기존 마크에 대한 국제적 인식이 광범위한 만큼 새 마크로 바꿀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기존 마크는, 수잔 코포레드의 디자인에 기초해 1969년 세계재활협회 RI(Rehabilitation International)가 만든 것으로 1974년 유엔이 장애인 국제마크로 지정해 40년 넘게 통용돼왔다. ISO는 아직도 세계 곳곳에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저급한 곳이 많고, 장애인 마크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 곳이 많기 때문에 기존마크를 더 많이 쓰도록 확산하는 게 중요하지 새 마크로 교체하는 게 중요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기존 마크를 만든 세계재활협회는, 기존 마크가 수동적으로 느껴진다는 비판이 주관적이라고 일갈한다. 실제로 미 장애인단체 일각에서는, 새 마크가 장애인의 역동성과 독립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현실에는 신체적 독립성이 떨어지는 중증 장애인도 많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새 마크가 그런 중증 장애인을 소외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장애인의 독립성은 휠체어를 움직일 수 있는 신체적 독립성이 아닌 내면의 독립성으로 강조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라의 꿈은 이루어지고 있다.
국제적 논란 속에서도 사라 핸드렌의 장애인 마크는 계속 확산 중이다. 세계 곳곳으로 퍼져가 평창올림픽에까지 사용되게 됐다. 장애인 마크에 대한 관심 자체도 높아졌다. 과거 1990년대 사라와 비슷한 시도를 했던 브랜든 머피(Brendan Murphy)의 마크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머피의 마크 역시 역동성을 강조한 디자인으로 샌안토니오시와 뉴욕현대미술관(MOMA) 등이 채택한 바 있다.
다운증후군 아들을 둔 보스턴 한 미술운동가의 시도는 이렇게,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던, 장애인 마크에 대한 국제적 논쟁으로 발전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람들이 그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머릿속에 인식되지도 않을 짧은 순간 보고 그냥 스쳤던 그 장애인 마크를, 여기는 내가 쓸 수 있는 화장실이나 주차장이 아니로구나 하고 인식하는 데만 주로 소용이 있었던 그 장애인 마크를, 다시 보고 그에 대해 논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건 단지 장애인 마크에 대한 논쟁이 아닐 것이다. 장애인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장애인에 대해 어떤 지원이 더 필요할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생각들일 것이다. 사람들의 생각에 변화를 일으키고 싶다는 한 장애인 엄마의 꿈, 사라의 그 꿈은 지금 이루어지고 있다.
출처: kbs뉴스
해당기사링크: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305986&re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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