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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삽자루의 천민통신] (1) 장애인이 행복한 사회, 모두가 행복한 사회
편의지원센터
2017-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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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승로는 여느 때처럼 가는 발길과 오는 발길로 북적거렸다. 용무가 급한 이들이 걸음이 느린 이들 사이를 헤쳐나갔다. 대도시의 초침은 항상 몇 발자국 빠른 듯이 느껴진다. 바삐 지나가는 풍경 사이로 노란선이 그어져 있다. 한 사람이라도 붙잡아야 하는 지하철 상인과 한 시라도 서둘러야 하는 시민을 가르는 미묘한 경계선이다. 정체는 점자보도블록이다. 선은 향하라는 뜻이고 점은 멈춰서라는 뜻이다. 선을 따라 한참을 가면 점이 나온다. 멈춰 살펴야할 곳이다. 깜깜한 암흑을 걷는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생명선이다. 멈춰 살펴야할 곳에 서지 못하면 험한 일을 당할 수 있다. 현실의 생명선은 상인들의 영업구획선이었다. 점자보도블록에 인접하거나 혹은 그 위로 상품들이 진열됐다. 시각장애인들의 눈을 밟고 서있는 셈이다. 비장애인의 삶과 상인의 삶 사이에서 시각장애인의 삶은 짓밟혀 있었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각장애인. 세계일보 자료사진

 

요식업계에 확산 중인 자동주문기계도 그 미묘한 경계선에 서 있다. 업주에게는 인건비절감기계다. 종업원에게는 감정노동저감장치다. 손님은 간편하게 터치패드로 음식을 골라 카드로 긁으면 끝이다. 어서 주문을 완료해달라는 눈빛에서 해방될 수 있다. 기계는 5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사고 카드를 내밀어도 전혀 찡그리지 않는다. 혼자 햄버거 두 개 먹어도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 무인시스템은 방약무인(傍若無人)이다. 인간성을 지워내서 만든 편리다. 시각장애인들에게는 불리다. 겪어본 어떠한 자동주문기계도 목소리를 들려주진 않았다. 기계와 사람 사이에는 침묵만 오고갈 뿐이다. 주변에 도움을 받으면 된다고 말하는 이들은 무책임하다.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의 도움을 받는 것에 불편해한다. 눈이 불편할 뿐인데 음식 먹기도 불편해졌다. 햄버거처럼 식기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에게마저 불편부당한 대우를 받는 셈이다. 무인시스템은 안하무인(眼下無人)이다.

 

경남 창원시 의창구 창원중부경찰서 앞에서 열린 280억원대 투자사기 조직 ‘행복팀’ 엄벌 촉구 기자회견에서 한 피해자가 수화 도중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창원=연합뉴스

 

청각장애인 수백명에게 수백억을 가로챈 악한들이 붙잡혔다. (관련기사 

행복팀이라는 투자사기 조직을 운영했다. 형편이 어려운 청각장애인들에게 많게는 수억까지 대출을 받게 했다. 거부하거나 조직을 떠나려하면 떼로 몰려가 협박했다. 행복팀이 만든 건 지옥이었다. 우리가 만들고 있는 세상은 천국일까 하는 물음을 가져본다.  

지적장애인 고모씨가 12년간 무임금 노동을 하며 생활한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의 한 축사 창고에 딸린 쪽방. 청주=연합뉴스

 

지난해에는 XX노예사건(관련기사)이 잦았다. 뒤늦게 구조돼 삶을 찾았지만, 잃어버린 세월은 구상(求償)받을 수 없다. 주변의 외면 속에 하나의 인권이 능욕 당했다. 착한 사마리아인들은 그저 모자란 인부로 봤겠다. 자신이 장애인의 삶을 빼앗는 걸 방관한 방조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겠다. 관심과 무관심은 같은 힘이 있다. 한쪽으로 향하면 한없이 그쪽으로 기운다. 누군가 베푼 관심을 나도 베풀지 않을 수 없어 모세의 기적처럼 차들이 갈라지고 귀중한 생명을 구한다. 의식불명의 택시 기사를 두고 서둘러 비행기 시간을 맞추려던 무관심에 귀중한 생명을 잃기도 했다. 함께 만들고 있는 세상은 천국이 아닐 수도 있다. 

장애는 불편일 뿐 불행이 아니라는 예사말이 있다. 완성되지 않은 문장이다. 불행은 몸의 불편보다 생활의 불편에서 온다. 우리가 간과한 작은 무관심이 불씨다. 전동휠체어를 타면 역무원 도움이 있어야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철역에서 나올 수 있다. 불법주차를 막겠다는 진입방지대는 벽이다. 극장의 장애인석은 맨앞열이거나 맨뒷열이다. 식당에는 문턱이 있고, 한 끼를 먹으려면 복도를 차지하거나 두 자리를 빼야한다. 점자 메뉴판이 있는 식당은 본 적이 없다. 상점 매대의 간격은 비장애인들에게도 비좁은 편이다. 비교적 넓은 대형마트에 가면 필요한 물건은 윗선반에 있다. 장애인들을 집안에 가두는 건 비장애인에 맞춰진 사회 탓이다. 의무는 아니기에 강제할 수는 없다. 경상대학교는 10여 년 전 장애학생 한 명을 위해 전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했다. 1990년대 초만 해도 대학에서는 장애학생의 입학을 거부할 수 있었다.  

뇌병변 장애인이 차별을 극복하고 15년 만에 꿈에 그리던 교사가 된 뇌병변 1급 장혜정(36·여·사진)씨. 세계일보 자료사진

 

뇌병변 장애 차별을 딛고 소송 끝에 교사의 꿈을 이루게 된 사연(관련기사)은 우리 사회가 갈길이 멀었다는 방증이다. 장애인들이 떳떳하게 권리를 누리는 사회가 돼야 한다.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이기에 그렇다. 

하정호 기자 southcross@segye.com

 

출처: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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