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이 보편화 되면서 우리의 삶이 크게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물론, 시각장애인들의 삶도 많이 달라진 것이 사실이다. 이 두 문장만을 읽고 '정보 접근권'이야기를 하려나 보다 하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시각장애인의 보행과 관련된 이야기를 좀 해 보겠다. 시각장애인 동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스마트폰이 보급된 이후에 길을 걷는 것이 훨씬 불편해 졌다는 이야기들을 자주 한다.
아마도 길을 걸으면서도 시선이 스마트폰을 향하고 있는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에는 보행을 하다 보면 마주 걸어오는 이들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적당히 피해서 걷는 것이 보통이었고, 시각장애인이 흰지팡이를 들고 걸어오는 것을 보면 알아서 피해 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렇지 않다. 시선도 앞을 향하지 않고 있는데다가 부딪히기 일보 직전인 상황에서 아슬아슬하게 피해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 같다. 이렇다보니 아무래도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으로서 길을 걷는 것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그뿐만이 아니다. 요즘은 자동차들을 참 잘 만드는 것 같다. 길을 걸으며 가장 믿는게 청력인지라 과거에는 멀리서 차가 오는 것도 쉽게 알아차리고 미리 한켠으로 피해 있을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자동차 엔진소리 자체가 작아진데다 하이브리드 자동차, 전기 자동차 등이 크게 늘어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어도 뒤에서 차가 다가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가 소스라치게 놀라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들고 가는 보행자나, 소리가 거의 나지 않는 자동차에 의해 크게 다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보행자는 스마트폰을 보느라 느리게 걷기에 크게 위험하게 부딪히는 경우는 드물다.
또, 자동차들도 사람이 걸어 다니는 곳에서는 어지간해서는 고속으로 달리지 않는다. 문제는 오토바이, 자전거 등이었다. 이들은 인도와 차도를 가리지 않고 시속 20KM이상으로 질주하곤 한다. 심지어는 횡단보도 조차 이정도 속도로 달려 건너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요즘은 더 위험한 것들이 등장했다. 개인용 이동수단(Personal Mobility)이라 불리는 탈것들이 그것이다. 전동 킥보드, 전동 휠 등이 이러한 탈것에 해당하는데 올 한해 시장 규모가 7~8만대에 달할 것으로 추산될 정도이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거리에서 이러한 탈 것을 이용하고 있는 이들을 쉽게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비장애인 보행자들도 개인용 이동수단을 이용하는 이들 때문에 한 번 쯤은 놀란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물며 시각장애인은 어떠할까?
눈을 감고 몇 걸음이라도 걸어본 사람들은 언제 어디에 부딪힐지 몰라 큰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단지 한 곳에 정지해 있는 장애물들만으로도 이런 극도의 공포를 느껴야 하는데 별 소리조차 내지 않고 이런 이동수단에 탑승한 사람들이 휙휙 지나가는 상황에서의 그 공포란 어떠할까?
흰지팡이가 있어도 이런 이동수단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것이다. 흰지팡이가 아니라 흰 몽둥이가 있어도 이들이 돌진해 오는 것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기에 막을 수도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마냥 공포스럽기만 하다.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전동킥보드들의 사양을 한 번 확인해 보니 이 기기들의 최대속도에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려 시속 40KM이라는 수치가 적혀 있었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시속 40KM으로 60KG의 무게를 가진 무언가가 돌진해와 충돌한다면 부상을 당해도 가볍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전동 휠이나 전동 킥보드 들은 도로교통법 상 인도나 자전거 전용도로 등에서 탈 수 없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정작 이러한 이동수단은 주로 인도에서 많이 탈 뿐만 아니라 보행자들 사이를 이리저리 묘기하듯 헤집고 다니기 일쑤이다. 명백한 위법행위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들의 위법행위만을 탓할 것이 아니라 정작 이들이 이러한 이동수단을 탈 수 있는 장소가 없다는 점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법률상으로는 차도에서 타야 하는데 자동차안전관리법 등과 관련하여 안전검사 문제 등을 완벽히 해결한 제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결국 사회의 변화를 법제도가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 결국 법이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와 위험을 보행자들이 고스란히 감수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시각장애인들은 이러한 개인용 이동수단으로 인해 발생하는 위험한 상황들에 대해 시각으로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어렵고 보다 큰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요즘 복지관 등을 방문하는 시각장애인을 보면 한 가지 큰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독립보행을 통해 복지관을 방문하는 이들의 수가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활동보조인과 함께 이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점자형 유도블럭이나 음성 신호기 등 시각장애인의 이동권 보장과 관련된 편의시설 등은 과거에 비해 크게 개선되어 독립보행을 하기에 그래도 예전보다는 용이한 것이 사실이다.
독립보행을 위한 환경은 좀 더 나아졌는데 정작 독립보행을 하는 이들은 줄어든 것이 의아하기도 하고 이러다가 우리 시각장애인들이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는 이동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된다.
특히, 개인용 이동수단 등과 같은 새로운 문물은 시각장애인에게는 비장애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위험이 되기도 하는 상황인데 이에 대한 적절한 제도적 대응까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기에 더욱 걱정스럽다.
시각장애인들이 독립보행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한 것이 현실일 수 있다. 새로운 탈것을 이용할 권리와 시각장애인도 자유롭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 모두가 존중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출처: 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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