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연말 예산소진 시즌이 다가왔는지 아침 출근길 여기저기서 공사판을 벌여놓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다른길로 얼른 돌아가면 되는 약간의 불편함이겠지만 나같은 시각장애인들에겐 작은 문제가 아닐 때가 많다.
안전팬스가 설치 되어 있지 않은 공사현장이나 여기저기 아슬아슬 쌓아 올린 공사 자재들은 생명보존을 위한 간절한 기도가 저절로 나올만큼의 아찔한 장면이 되고는 한다.
마을버스 정류장을 당당하게 점령하고 짐을 내리는 대형트럭들도 갑자기 생겨난 노점 아저씨도 내겐 어제까지 존재하던 길이 갑자기 없어져 버린 정도의 당황스런 사건으로 다가온다.
스마트폰을 꺼내 초점도 맞지 안는 사진을 찍고 민원을 접수하는 것은 내겐 어느 때 부턴가 일상적인 일이 되어버렸다.
요즘 사람들은 나같은 사람을 프로 불편러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것도 불만 저것도 불평인 사람들을 비꼬는 표현이란다.
다수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사실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몇 되지도 않는 사람들 때문에 공사장 주변에 안내인력도 배치해야하고 버스정류장에 주차하면 바로 내릴 수 있는 짐도 멀리 있는 주차장에서 옮겨와야 하는 상황이 그들에겐 보통 짜증스런 일이 아니라는 것도 이해 안되는 바는 아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양보하고 저렇게 희생하다 보면 가당치도 않은 융통성 발휘해 가며 불편하게 견뎌야 하는 것은 늘 소수의 몫이 되어버린다.
길거리의 표지판도 공공의 안내물도 건널목의 신호등과 버스 번호판 마저도 보는 사람들의 위주로 만들어진 세상에서 음성안내 신호기 정도 요구하는 것은 세금내는 시민으로서 누려도 되는 권리 아닌가?
점자로만 만들고 소리만 나게하면 시각장애인에게 빛을 주었다고 떠드는 가짜 복지가들에게 주려면 똑바로 만들어서 주라고 말하는 것이 배은망덕은 아니지 않는가?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 속도만큼이나 그 방향도 다수에게 더욱 편안한 방향으로 맞춰져 간다.
다수를 만족시키는 것만큼이나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방법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만큼이나 소수를 더욱 소수로 만드는 잔인한 일도 없다.
여기저기 건의라는 이름으로 투덜대고 불평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시각장애인들은 스마트폰은 커녕 pc의 기본적인 환경조차 공유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교과서가 바뀔 때도 교육정책이 변할 때도 당사자들의 불편한 의견들이나마 없었다면 소수의 교육은 의무교육 단계에서부터 무너져 버렸을 것이다.
난 오늘도 대학진학을 준비하는 친구들에게 학교에 스스로의 요구를 관철시키고 권익을 보존하는 방법에 대해 열을 내며 이야기 했다.
점자와 관련하여 획기적인 복지사업을 준비했다며 어렵사리 전화를 걸어온 정부관계자에겐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야할 구시대적인 발상이라며 날선 비판을 전했다.
보조기기 업체들에게 어제와 다른 또 다른 불만을 접수하고 정책가들에게 현실적으로 무리하다고 생각할만큼의 요구를 전하는 것도 특별할 것 없는 나의 일상이다.
아직 세상은 다수가 편해지는만큼 소수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쪽으로 달려가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다.
흔하디 흔한 영화관들도 커다란 놀이공원들도 아이들의 장난감과 게임들 마저도 소수들에겐 무리한 불평 없이 다가갈 수 없는 것들이 되어 간다.
수천명 앞에서 강의도 해 보고 방송도 나가고 sns의 힘도 빌려보지만 소수의 힘으로 바꿔낼 수 있는 것은 전체에 비하면 여전히 소수라는 한계를 자주 느낀다.
소수의 불평을 내려놓게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다수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무거운 짐은 열 사람 백 사람의 손을 더하면가벼움으로 바꿔갈 수 있다.
소수의 큰 불편함도 다수의 힘이 더해지면 약간의 다름으로 느껴지게 만들 수 있다.
세상이 다수의 행복을 추구한다면 소수의 프로 불편러는 더욱 더 양산될 수 밖에 없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생각할 때 우리는 소수의 불평하던 힘마저 공동체의 힘으로 포용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베테랑 프로 불편러이다.
이제 멀지 않은 시간 내가 필요하지 않을 때 나도 이 자리에서 은퇴하고 싶다.
출처: 허프포스트
해당기사링크: http://www.huffingtonpost.kr/seungjoon-ahn/story_b_1835578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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