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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에 ‘턱’을 없애자 장애인·비장애인 ‘턱’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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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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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일대에는 도로와 보도가 이어지는 곳에 턱이 없다. / 류인하 기자

서울 종로구 일대에는 도로와 보도가 이어지는 곳에 턱이 없다. / 류인하 기자

종로구 서울맹학교 주변, 일반인과 시작장애인이 어우러져 사는 곳으로

 

종로에는 ‘맹인골’이라는 마을이 있다. 종로구 청운동, 옥인동, 사직동 등 서울맹학교를 다니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이곳에 터를 잡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터전을 맹인골이라 지었고, 스스로를 맹인골 주민이라고 부른다. 시각장애인들은 익숙한 지형이 아닌 이상 보행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한 번 자리잡은 곳을 쉽게 떠나지 않는다. 시각장애아동들은 서울맹학교 유치부에 입학하면서 이곳으로 이사와 초등부, 중·고등부, 자립생활전공부를 졸업할 때까지 맹인골에 머문다. 다른 지역 대학으로 진학하거나, 결혼을 해도 결국 이곳으로 돌아온다. 맹인골이 시각장애인들에게는 가장 편하고 안전한 쉼터이기 때문이다.  

종로구에는 ‘턱’이 없다. 길을 걷다보면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고, 비장애인들은 인식하기도 어려운 2~3㎝ 높이의 낮은 턱조차 종로구에는 없다. 대신 길이 이어지는 곳마다 장애인 유도블록이 길게 놓여져 있다. 시각장애인들은 유도블록만 따라가면 집을 찾을 수 있고, 학교를 다닐 수 있다. 혼자서 음식점을 갈 수도 있고, 통인시장에서 장을 보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12월 19일 종로구를 찾았다. 경복궁역 2번출구에서부터 자하문 터널까지의 거리는 1.86㎞다. 비장애인이 시각장애인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길을 걸을 수는 없기 때문에 일부러 바닥에 발을 끌며 걸었다. 눈이 얼어붙어 미끄러워진 거리를 걷는 데 40분이 걸렸다. 주목할 만한 것은 단 한 번도 발끝이 턱에 걸리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일반 보도에서는 길과 길이 이어지는 곳마다 있었어야 할 턱이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턱이 있던 기존 구간에는 아스팔트나 콘크리트를 메우는 방식으로 연결해 턱의 높이를 없앴다. 또는 블록을 낮게 깔아 턱이 생기지 않게 했다.  

시각장애인들에게 턱은 가장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이다. 벽이나 가로등 등 시각장애인 보조기구로 예측이 가능한 장애물들은 장애인 스스로 피해갈 수 있지만 곳곳에 위치한 2~3㎝짜리 낮은 턱은 시각장애인들의 발목을 부러트린다. 한 시각장애아동의 어머니는 “시각장애인을 볼 기회가 있으면 신발을 유심히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여자 시각장애인들은 높은 굽에 익숙한데도 바깥 출입을 할 때는 원피스에 등산운동화를 신는다”며 “(등산운동화를) 신고 싶어서 신는 게 아니라 턱에 걸려 발목을 접지르거나 그대로 넘어지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여러 차례 경험해봤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다른 부모는 “당장 눈을 감고 내 앞의 길을 걷는다고 생각해봐라. 앞이 보일 때는 장애물로 인식하기도 어려운 낮은 턱이 시각장애인들에게는 매순간 다가오는 공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달을 것”이라고 말했다.  

혜택은 시각장애인들만 받고 있는 게 아니다.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부모나, 활동보조기구를 짚고 다니는 노인들도 ‘턱이 없는 도로’의 혜택을 받고 있다. 종로구에서 50여년째 살고 있는 박모씨(82)는 “턱이 사라진 게 불과 몇 년도 안 됐다”면서 “길을 걷다가도 턱이 보이면 이걸(보행보조기) 들어올려야 해서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지금은 그대로 끌고 다니면 되니 바깥출입 부담도 줄고 좋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도보길 전체에 노란 유도블록이 깔려 있는 점도 특징이다. 길마다 장애인 유도블록을 깔도록 법이 정하고 있지만 이를 제대로 지키는 지자체는 거의 없다. 형식적으로 설치는 하되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점자블록 돌출돌기가 닳아도 그대로 방치하거나, 경고형 점자블록과 유도형 선형블록이 뒤섞여 설치되는 등 문제가 매년 지적되지만 개선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는 샛길로 빠지는 구간이나 차량이 다니는 구간마다 ‘멈춰라’ ‘새로운 길의 시작’이라는 의미의 경고형 점자블록과 유도형 선형블록이 전부 정확하게 설치돼 있다. 시각장애인의 부모들이 이곳의 감시자이기 때문이다. 효자동의 한 주민은 “공무원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보니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로바로 건의를 하는 편이더라”라고 말했다.  

종로구에는 등록장애인 6069명이 거주한다. 지체장애를 제외하면 시각장애인이 741명으로 가장 많이 산다. 이곳의 거주 장애인은 종로구 전체 인구 15만4906명의 3.9%에 불과하지만 지역 전체가 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방식으로 조성돼 있다. 대표적 혐오시설처럼 취급되는 장애인학교도 가장 많이 들어서 있다. 국립 농·맹학교, 발달장애학교, 수도사랑학교 등 6곳이다. 이곳에서 18년째 우유납품·판매업을 하고 있는 조진순씨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늘 섞여 있는데도 동네 분위기가 항상 좋다”고 말했다. 조씨는 “학교 앞에서 장사를 오래 하니까 아주 꼬맹이 때부터 본 아이가 성인으로 잘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늘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며 “맹학교 다니던 한 아이는 숙명여대에 합격하더니 혼자 버스 타고 학교를 다닐 정도로 잘 자랐다”고 덧붙였다. 그는 “농·맹학교에 다니겠다고 전국 각지에서 이사를 오는데 여기 살던 아이들은 성장한 다음에도 신혼살림을 여기서 차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장애인특수학교 설치를 막으며 장애아 부모들을 무릎 꿇게 한 강서구 주민들이 하나같이 주장한 집값 하락도 종로구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농학교 앞 오케이부동산 관계자는 “이 동네는 절대 집값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집값이 큰 폭은 아니지만 꾸준히 상승하는 편이라고 했다. 그는 “한 번 이사 오면 적어도 10년 이상은 나가지 않고 사는 데다 장애아의 비장애 형제·자매들은 청운초·중학교, 경복고 등 명문학교에 보낼 수 있으니 살기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장애인학교를 님비시설이라고 하는데 여기는 그런 게 전혀 없다”며 “비장애인들이 훨씬 많이 사는데도 여기서 장애인들 때문에 집값 떨어진다고 항의하거나 불평불만을 하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오히려 마을주민들이 주말마다 국립 농학교 운동장에 모여 다함께 운동을 하는 등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지내는 분위기라는 설명이다.  

 

이날 맹학교 앞으로 아이를 데리러 온 송모씨(37)는 “아이에게 시각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많이 절망했지만 맹학교에서 만난 많은 동네 주민들과 의지하며 살다보니 씩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게 된다”며 “우리 아이가 차도로 잘못 지나간다 싶으면 동네 주민이 ‘차 온다. 조심해’라며 아이를 보호해줄 정도로 이곳은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편견 없이 봐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출처: 경향신문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2240943011&code=940100#csidx7add542253750bdb190a22e65f7bfc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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