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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날] "한 걸음 내딛기도 어려워"…시각장애인 체험 해보니
편의지원센터
2018-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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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체험을 하는 기자. 버스도착안내방송을 듣고 일어섰지만 버스 출입구를 찾아 탑승하기까지 어려움을 겪었다. /사진=유승목 기자
시각장애인 체험을 하는 기자. 버스도착안내방송을 듣고 일어섰지만 버스 출입구를 찾아 탑승하기까지 어려움을 겪었다. /사진=유승목 기자

 

"눈 감고도 다닐 수 있다고요? 한 발짝 내딛기도 힘들걸요."

2018 평창패럴림픽이 열려 장애인 복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이들의 불편함은 비장애인들이 쉽게 공감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일상적으로 다니는 길, 이용하는 버스·지하철마저도 장애인들에게는 두렵고 힘든 여정이다. 이를 조금이나마 파악하고 공감하기 위해 기자가 직접 안대를 쓰고 시각장애인 체험을 해봤다.

◇대중교통 이용 경력 20년, 겁부터 덜컥

지난 14일 오전 10시 서울특별시립노원시각장애인복지관. 시각장애인 체험을 결정한 뒤 긴장한 채 앉아 있자 홍은녀 복지관 직업재활팀장이 밝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시각장애인인 홍 팀장은 "정말 할 수 있겠냐"고 되물었다. 이어 시각장애인의 보행권 문제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세심한 배려가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말로는 쉽게 와닿지 않아 곧바로 테이블에 놓여 있던 검은 안대와 흰 지팡이를 들었다. 이옥천 교육관이 도움을 주겠다고 나섰다. 그는 "시각장애 체험은 결코 쉽지 않다"며 주의사항과 함께 보행법을 설명했다.

시각장애인에게 흰 지팡이는 앞이 보이지 않는 그들의 촉각을 연장해 안전을 지켜준다. 자신의 몸처럼 다뤄야 한다는 것. 이 교육관은 "빛 지각 자체가 불가한 전맹 체험을 하기 때문에 항상 지팡이를 좌에서 우로 훑으며 장애물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체험은 복지관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7호선 중계역에 내려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경로로 정했다.

검은 안대를 끼니 앞이 컴컴했다. 오감 중 하나가 사라지니 바깥이 낯설었다. 겁이 나기 시작했다. 망설이다 한 걸음 내딛고 또 주저하는 일이 반복됐다. 복지관에서 30m 떨어진 버스정류장까지 가는데 3번이나 교육관을 불렀다. 그저 주위에 의존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해 타야 할 버스가 언제 오는지 기다렸다. 의지할 것은 안내방송 뿐이었지만 차량 소음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신경이 곤두서고 불안했다.

복지관에서 점자교육을 담당하는 시각장애인 최상민씨(33)는 "정확히 어느 위치에서 타야 하는지, 어떤 버스가 내가 타야 할 버스인지 알 수 없어 버스를 놓치고 하염 없이 기다릴 때가 많다"고 말했다.

잠시 뒤 버스가 도착했지만 출입문을 찾기가 힘들었다. 지팡이를 뻗으며 헤매니 "버스를 세게 치지 말라"는 버스 기사의 핀잔이 돌아왔다. 그러고 나서야 버스에 겨우 올라탈 수 있었다. 기사의 도움을 바란 것은 아니지만 다소 아쉬운 대목이었다.

 

점자유도블록이 없어 보도 화단에 붙어 걷다가 자전거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왼쪽).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보도에 점자유도블록이 설치되지 않아 불편했다. /사진=유승목 기자

점자유도블록이 없어 보도 화단에 붙어 걷다가 자전거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왼쪽).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보도에 점자유도블록이 설치되지 않아 불편했다. /사진=유승목 기자

 

◇걷다가 '쿵', 곳곳이 위험천만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도유도블록을 찾았다. 하지만 지팡이에 걸리지 않았다. 20m를 걷고 나서야 점자블록이 나타났지만, 일반 보도블럭도 울퉁불퉁해 여간해서는 구분하기 어려웠다.

이 교육관은 "처음 시각장애 보행 훈련을 받는 시각장애인들도 유도블록과 일반 보도블록을 구분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며 "한 달 내내 지팡이를 짚고 걷는 법만 훈련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도로 곳곳에 장애물이 있었지만 안내는 찾기 어려웠다. 보도 화단 쪽에 붙어 걷다 두 번이나 넘어질 뻔했다. 갑자기 나타난 자전거 보관대에 세워진 자전거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점점 겁이 나서 걸음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타고 역내에 들어가자 한층 편해졌다. 바닥이 매끈해 점자블록을 구분하기 수월했다. 사람들의 발소리에 귀 기울이라는 교육관의 조언에 따라 걸음을 옮기니 개찰구를 찾을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한 시민은 도와주겠다며 손을 내밀기도 했다. 붐비는 시간대는 아니었지만 시민들은 시각장애인이 된 기자를 배려해 길을 터주었다. 교통약자를 배려하는 시민의식은 전보다 한층 성숙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지하철은 곳곳에 설치된 음향유도기와 유도블록, 계단·스크린도어 등에 쓰여진 점자들로 현재 위치와 방향을 파악할 수 있어 이용하기 편리했다. 역사에 근무하는 사회복무요원의 도움도 쉽게 받을 수 있었다. 긴장을 늦출 순 없었지만 안전히 지하철을 탈 수 있겠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점자와 유도블록 등을 이용해 조심스럽게 지하철역 계단을 걸어 내려오고 있다. /사진= 유승목 기자
점자와 유도블록 등을 이용해 조심스럽게 지하철역 계단을 걸어 내려오고 있다. /사진= 유승목 기자


◇시각장애인을 막는 것은 시각이 아니라 사회적 장애물

하계역에서 온 길을 되돌아 다시 복지관에 도착했다.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혔고 쉬지 않고 뛴 것 같은 피로감이 몰려왔다. 온갖 구조물을 만진 탓에 왼손은 새까맣게 때가 타 있었다. 30분쯤 지났나 싶어 시계를 보니 1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방향과 거리 감각은 물론, 시간 감각도 잃은 듯했다.

기자에게는 1시간이지만 시각장애인들에게는 평생이다. 여전히 시각장애인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독립 보행을 하는 데 어려움이 많아 보였다.

이들의 외출을 가로막는 것은 시각 장애가 아니라 제도적 장애물이었다. 점자유도블록이 없거나 있어야 할 자리에 세워진 구조물로 시각장애인들은 독립 보행에 위협을 느낀다.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설치된 점자를 읽으며 방향과 지하철 칸 등을 파악하고 있다. /사진=유승목 기자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설치된 점자를 읽으며 방향과 지하철 칸 등을 파악하고 있다. /사진=유승목 기자


그나마 서울은 나은 편이다. 홍은녀 팀장은 "서울과 달리 지방에는 공공기관에서도 점자유도블록이나 시각장애인 편의시설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지방에 사는 시각장애인은 외출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불편에는 인식 부족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해에는 보행자 불편과 미관상 이유를 들어 몇몇 지자체가 점자유도블록을 철거해 시각장애인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시각장애인들은 무조건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지켜보고 스스로 걸을 수 있게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옥천 교육관은 "시각 장애인들과 함께 활동하다보면 불편해하거나 신기해하는 것을 느낀다"며 "'똑같은 사람'으로 여기고 있는 그대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상민씨는 "불안한 것은 알지만 시각장애인을 보호대상이 아니라 같이 살아가는 이웃이라고 여기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출처: 머니투데이

해당기사링크: http://news.mt.co.kr/mtview.php?no=201803141456247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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