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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185억 쓰고도… 점자블록 걷다보니 가로등이 불쑥
편의지원센터
2019-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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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장애인 보행 개선사업' 3년간 5000곳 정비했다는데

지난달 24일 시각장애인 김재광(43)씨는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인근 버스 정류장에서 아내 임미진(39)씨의 차를 기다리다가 아찔한 경험을 했다. 점자블록을 서성이던 중 무언가 둔중한 물체에 부딪혀 고꾸라질 뻔했다. 알고 보니 점자블록 한가운데 가로등이 설치돼 있었다. 김씨는 "하마터면 도로 위로 굴러 떨어져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며 "안전하다고 믿었던 점자블록에서 안전을 위협당하다니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거리의 점자블록 한가운데에 가로등이 세워져 있다.
지난달 30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거리의 점자블록 한가운데에 가로등이 세워져 있다. /김선엽 기자
서울 시각장애인들의 안전한 보행을 유도하기 위해 설치된 점자블록이 오히려 이들의 안전에 위협이 되고 있다. 점자블록은 시각장애인들이 인도와 차도를 구분해 안전하게 보행할 수 있도록 깔아놓은 바닥이다. 현행법상 공원과 도로, 교통시설과 연결되는 보도 등엔 점자블록을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서울시는 지난 2016년부터 대대적인 점자블록 정비에 나섰다. 잘못 설치된 점자블록을 정비하거나 새로 설치하는 '보행 환경 개선 사업'이다. 시 관계자는 1일 "정비 대상 점자블록 5000곳 중 4942곳에 대한 정비가 완료됐다"고 밝혔다. 최근 3년간 예산 185억원이 투입됐으나 정비 결과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리를 맡은 일부 구에서 비용이나 행정 편의를 앞세워 원칙을 무시하고 공사를 진행해 민원이 여전히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점자블록은 자치구나 시설관리공단에서 관리한다. 지난해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가 서울시 성동도로사업소 관할 점자블록 1349곳 실태를 조사한 결과, 무려 79.5%(1072곳)가 부적절하게 설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가 부딪힌 가로등은 점자블록 가운데 우뚝 서 있다. 국토교통부가 정한 점자블록 설치 지침에 따르면 점자블록 내에 장애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가로등이나 전봇대 등 보행 장애물을 설치해야 할 경우 점자블록과 최소 60㎝ 이상 띄워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이 무시된 채 점자블록 공사가 이뤄진 것이다. 관리를 맡은 송파구는 이 같은 문제가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구 관계자는 본지 통화에서 "점자블록을 깔 때 가로등을 다른 곳으로 옮겼어야 했는데 비용 문제 등으로 그대로 깔았다"며 "가로등 이설(移設)을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점자블록 가운데에 맨홀이 파여 있거나(서울 중구 태평로), 블록 안내 방향이 잘못돼 횡단보도가 아니라 차도로 직진하도록 설치된(성동구 홍익동 양지사거리) 위험한 경우도 있다. 대부분 점자블록 설치 기본 원칙을 어겼기 때문에 발생한 사례들이다.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시각장애인들의 보행 교육을 맡고 있는 이민환 사회복지사는 "오죽하면 점자블록을 믿지 말라고 교육하겠느냐"며 "점자블록을 따라가면 오히려 사고 위험이 커지기 때문에 '차 소리나 주변 사람들의 보행 움직임 등 단서를 활용하라'고 당부한다"고 했다.

단순히 미관상의 이유를 내세워 점자블록이 기능을 못 하도록 설치한 사례도 있다. 원래 점자블록은 희미하게라도 색을 구분할 수 있는 시각장애인들을 배려해 황색처럼 알아보기 쉬운 색으로 놓아야 한다. 그러나 일부 구에서는 "황색으로 하면 눈에 띄어 보기 안 좋다"며 검정으로 깔았다. 서울 관악구 낙성대역 인근이 대표적이다.

홍서준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연구원은 "저시력장애인에게 검은색 점자블록은 웅덩이로 보이기 때문에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라며 "점자블록 숫자만 늘리는 건 보여주기식 행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종인 나사렛대 인간재활학과 교수는 "점자블록이 시각장애인들에겐 생명과 직결된 시설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야 한다"며 "시민들도 그 위에 자전거 등을 주차하지 않는 선진 시민의식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조선일보

해당링크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4/02/201904020017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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