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는 어린이의 날(5일)도 있지만 어린이 안전사고가 가장 많이 나는 달 중 하나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어린이 교통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달은 5월과 8월로 나타났다. 최근 국내에서는 어린이 차량사고를 막기 위해 어린이 보호구역에 보도를 넘어 벽까지 세모난 모양으로 노란색이 칠해진 곳들이 곳곳에 들어서고 있다. 국제아동인권센터가 개발한 어린이 안전보호구역인 옐로카펫이다.
옐로카펫은 횡단보도를 이용하려는 어린이가 대기할 수 있는 안전 공간이기도 하지만 눈에 확 띄는 밝은 노란색으로 칠해 횡단보도 앞 어린이가 운전자의 눈에 잘 띄게 하는 목적도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이 외부와 분리된 공간에 들어가도록 유지하는 ‘넛지 효과'도 있다. 넛지는 옆구리를 슬쩍 찌른다는 뜻으로 부드럽게 개입해 선택을 유도하는 것을 말한다.
효과는 확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도로교통공단 연구에 따르면 옐로카펫을 설치한 횡단보도와 설치하지 않은 횡단보도에서 안전한 장소에서 대기하는 초등학생의 비율을 조사했더니 미설치 횡단보도에서 66.7%였던 것은 91.4%로 늘어났다. 횡단보도 대기 공간이 눈에 잘 띄는 효과도 검증됐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에 따르면 옐로카펫을 설치한 후 횡단보도 대기 공간의 시인성은 40~50% 증가했다.
옐로카펫은 한국에만 있다. 2015년 국제아동인권센터의 ‘아동이 안전한 마을만들기’ 사업에서 어린이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로 횡단보도가 지목되며 옐로카펫이 탄생했다. 국제아동인권센터가 상표권을 보유하고 있다. 옐로카펫은 2015년 홍콩 디자인센터가 주관하는 국제 디자인 어워드에서 대상을 받았다. 심사위원 대표는 “단 한 아이의 생명이라도 살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가치가 있다”며 “전 세계 위험한 곳에서 이 프로젝트가 시행되길 바란다”고 수상 이유를 밝혔다.
옐로카펫이 지켜야 할 어린이들은 횡단보도를 건너는 저학년 어린이다. 어린이 교통사고는 줄어드는 추세지만 저학년 사고와 횡단보도 사고 비율은 높다. 보험개발원이 2일 공개한 2016년에서 2018년까지 자동차보험 통계로 파악된 교통사고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어린이 교통사고 피해자의 나이는 초등학교 1학년이 8960명, 2학년 8670명, 미취학 아동 8417명 순으로 많았다.
어린이는 성인보다 특히 횡단보도 사고 위험이 크다. 보험개발원 분석 결과 전체 피해자의 횡단보도 사고 비중은 10.2%였다. 반면 어린이는 20.5%로 2배 이상이었다. 횡단보도 사고도 1~2학년이 440명, 3~4학년이 400명, 5~6학년이 314명으로 저학년이 많았다. 잠재적인 사고 위협은 더 크다. 도로교통공단 연구에 따르면 횡단 중 사고위험을 느꼈다는 어린이는 10명 중 3명이었다. 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경우가 숨어있는 셈이다.
어린이 횡단보도 사고를 막기 위한 옐로카펫 설치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국제아동인권센터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따르면 2018년 12월 기준 전국에 설치된 옐로카펫은 887개소다. 2016년 대비 4.2배 늘었다. 지자체들이 어린이 교통안전에 주목한 영향이 크다. 현재 대구를 제외한 전 광역 지자체에 옐로카펫이 깔려있다.
옐로카펫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설치가 늘어나면서 단순히 설치에 그칠 것이 아니라 효과적인 설치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옐로카펫의 효과선 증진을 통한 어린이통학로안전보장을 위한 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안효섭 한국3M 교통안전사업부장은 운전자의 시선 효과와 드론을 통한 차량 속도 분석 등 최신 연구결과를 공개하며 “무분별한 설치 확대보다는 어디에 설치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옐로카펫이 운전자의 시선을 끌어올리는 것은 확실했다. 옐로카펫이 설치된 13개소에서 운전자의 시선 관심도를 분석해 본 결과 횡단보도 앞 보행대기공간은 옐로카펫 설치 전에는 관심 집중도가 34%였지만 설치 후에는 85%로 증가했다. 시선이 집중되는 순서도 설치 전에는 첫 번째 집중 위치가 건물, 도로위 차량 등 다양했다면 설치 후에는 옐로카펫이 첫 번째로 바뀌었다.
다만 두 곳에서는 시선 집중도가 오히려 떨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안 부장은 “첫 지점은 옐로카펫 근처에서 노란색 사물이 다수 설치돼 있었고, 두 번째는 벽면까지 설치되지 않고 소형 미니어처 형태로 설치돼 규격과 거리가 먼 부적합한 시공이었다”며 “다른 노란색 설치물이 많은 곳은 설치를 지양하고 정상적 설치가 불가능한 곳은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호등이 없고 작은 골목 도로일수록 옐로카펫의 효과가 커졌다. 80m 상공에 드론을 띄워놓고 정지선으로부터 40m 밖에서 접근해오는 차량의 속도를 측정한 결과 옐로카펫이 설치된 곳에서 속도 감속 효과가 가장 큰 곳은 주택지나 상업지 속 국지도로에서 신호가 없는 횡단보도일 때였다. 신호가 있는 횡단보도에서도 감속 효과가 나타났지만, 상대적으로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 부장은 “국지도로 비신호교차로에 주로 설치해야 한다는 가이드를 드릴 수 있는 결과”라고 말했다.
옐로카펫의 효과를 체감할 학생들과 학부모, 교사들도 어디에 설치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충남교육청과 함께 옐로카펫이 설치된 학교 학생과 학부모, 교직원 총 800명을 상대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옐로카펫에 대해 매우 만족한다와 만족한다의 비율은 69.1%로 만족도가 높았다. 보통이라는 경우도 25%였다. 학생들은 옐로카펫 인지도가 높을수록, 기대효과가 클수록, 설치장소가 적절할수록, 현장교육 경험이 있는 경우 효과가 높다고 답했다. 학부모 경우는 인지도가 높을수록, 기대효과가 클수록, 설치장소가 적절할수록. 교직원은 학교에서 정보를 얻었을 경우, 설치장소가 적절할수록. 계층별로 차이는 있었으나 설치장소가 중요하다는 의견이 공통적이었다.
옐로카펫의 효과를 증명하는 연구결과들이 공개되면서 정부도 옐로카펫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산하 재난연구원의 연구를 통해 2018년 6월 ‘옐로카펫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포했다. 옐로카펫의 색상, 재질, 규격 등 들어갔다. 이종수 행안부 안전개선과장은 “정부에서 해야할 사업을 시민사회가 나서서 해온 것에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도 올해 2월 도시지역 설계 가이드라인에 차량방호 안전시설 중 하나로 옐로카펫, 어린이 횡단보도 대기소를 올렸다.
옐로카펫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설치가 많아지며 설치비도 내려가는 추세다. 초기에는 한국3M에서 제작한 알루미늄 소재의 스티커를 붙이는 방법 하나였다. 정병수 국제아동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초기에는 재료비와 설치 비용을 포함해 옐로카펫 하나를 까는 데 400~500만 원이 들었다”며 “이후 지자체들이 관심을 가지고 가이드라인도 생기면서 여러 업체에서 옐로카펫을 설치하는 다양한 시공 기술들을 개발해 단가가 내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옐로카펫을 지자체들이 설치하면서 설치 과정에서 주민 의견을 배제하는 보여주기식 사업이 된다는 지적도 있다. 이 경우 교통안전 효과가 작아진다고 옐로카펫 담당자들은 조언했다. 김현기 초록우선 어린이재단 복지사업본부 대리는 “지자체 담당자에게 옐로카펫은 매력적인 아동안전시설물이지만 주민과 함께하는 옐로카펫은 과정이 복잡하고 귀찮은 일로 여겨지기도 한다”며 “함께하는 과정에서 옐로카펫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져야 효과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에서도 사례가 없는 시도라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시각장애인에게 길 안내 역할을 하는 점자블록과 옐로카펫의 색이 겹쳐 시각장애인에게 불편을 준다는 것이다. 정 사무국장은 “시각장애인 보행에 대한 지적은 잘 알고 있다”며 “점자블록과 옐로카펫 모두 설치 기준은 구분이 되는 색상이라 둘을 만족시키는 전략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린이의 안전보장을 위한 시도가 한국에서 처음 시작됐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토론회를 주최한 이용호 국회의원은 “옐로카펫은 우리 사회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뜻깊은 선물이 통학로 안전보장이란 점을 다시 확인시켜 줄 것”이라며 “더이상 등하굣길에 무고한 생명을 잃거나 다치는 아이들이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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