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탬프 도로와 사고석 도로
길은 사람이 자주 다니면 만들어진다. 그런 길은 유사 이래로 있어 온 그 길에는 사람도 다니고 우마차도 다녔다. 우리나라 전통 시대의 길은 겨우 말이 다닐 정도 외에는 형편없었다고 한다. 그 후 일제강점기 시절 현대적인 길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그 길을 신작로라고 불렀다.
그 신작로에는 우마차 대신 차들이 다니기 시작했다. 산업의 발달로 차들이 많아지자 사고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신작로를 차들이 다니니 차도와 사람들이 다니는 인도로 구분하기 시작했다.
옛날의 신작로는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현대적인 차도(車道)는 아스팔트로 만들고 인도(人道)는 보도블록(步道 block)으로 만든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차도는 검은색 아스팔트로 만들지만, 인도는 거리마다 지자체마다 여러 가지 문양과 다양한 색깔의 보도블록으로 만들어져 인도의 색깔은 제각각으로 알록달록하다.
▲ 부산역 앞 횡단보도와 점자블록. ⓒ이복남
휠체어 사용 장애인이 다니기 좋은 길은 평탄한 길이다. 그런 길에는 젊은 부부의 유모차도 다니고 다리를 다친 사람이나 어르신 등 노약자도 다니기에 편하다. 언제부터인가 고령자나 장애인도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배리어 프리(barrier free)도 있고,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도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지체장애인이 감수해야 하는 길이 있으니 점자블록이다. 다리가 약간 불편한 사람은 물론이고 목발을 사용하거나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에게 점자블록은 또 하나의 불편한 장애물이지만, 그것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장구이므로 어쩔 수 없이 감수하고 있다.
필자 입장에서는 점자블록도 겉으로 드러나게 하지 말고 흰지팡이로 감지할 수 있도록 땅속에 센서를 묻고 도로에는 색깔로 표시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비장애인은 물론이고 저시력장애인에게도 가장 눈에 잘 띄는 색이 노란색이지만 아직 그런 도로는 없는 것 같다. 향후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시각장애인용 유도블록 개발과 보급이 이루어져야 될 것 같다.
몇 해 전 일본 후쿠오카에서 온 어느 장애인단체에서 부산을 둘러본 소감을 말하는 자리가 있었다. 일본에서 온 사람들은 시각장애인을 비롯하여 지체장애인과 발달장애인 등 10여명이었다. 그들이 제일 먼저 얘기한 것은 점자블록이었다. 길에서 점자블록을 만나기는 했는데 가다가 뚝뚝 끊어지고, 어떤 곳에서는 상인들이 점자블록 위에 물건을 쌓아 놓기도 해서 점자블록을 따라가다가는 길을 잃을 것 같았다고 했다. 그 다음은 보도블록인데 부산의 보도는 ‘요꼬보꼬’가 심하다고 했다. ‘요꼬보꼬는 요철(凹凸) 즉 보도블록이 울퉁불퉁하다는 말이다.
보도블록은 인도를 평평하게 고른 다음 그 위에 블록을 까는데 처음에는 평평하게 다듬었겠지만, 그런 길이 빗물에 쓸려 꺼지거나 파이거나 해서 평평한 보도블록이 울퉁불퉁해지기 때문이다.
▲ 롤러로 무늬를 만드는 스탬프 공법시공. ⓒ이복남
그 일본인들은 웃으면서 얘기했지만 점자블록이 끊어지고 인도가 울퉁불퉁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므로 정말 부끄러웠다. 점자블록이 끊어지면 흰지팡이를 짚고 혼자 길을 가는 시각장애인은 길을 잃을 것이고, 평평해야 할 보도블록이 울퉁불퉁하면 지체장애인은 물론이고 비장애인들도 까딱하면 걸려서 넘어지기 일쑤이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평평한 보도블록이 낡고 파손되어서 요철이 심해지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보도 또는 차도를 울퉁불퉁한 요철로 만들기 시작했다.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이것은 유치한 시인의 ‘깃발’의 한 부분이다. 그런데 평평한 보도블록이 잘못되어 울퉁불퉁한 요철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보도나 차도를 요철로 만든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장애인에게는 정말 슬프고도 애달픈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이런 울퉁불퉁한 길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길입니까?”
몇 해 전 자갈치를 다녀온 한 장애인이 볼멘소리로 필자에게 항의(?)를 했다.
“글쎄요? 왜 그랬을까요?”
그런데 이런 길은 자갈치뿐만이 아니었다. 중앙동에도 있었고 광안리에도 있었다. 그때 뭔가 대책을 강구했을 텐데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잘 알 수가 없다. 그 후에도 몇 번인가 그런 내용의 전화를 받았던 것 같은데 아마도 편의시설을 전담하는 곳으로 안내를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난 연말부터 필자 사무실이 있는 부산 동구 차이나타운 부근에 도시가스관 등의 매설 공사를 하면서 도로를 파헤쳤다. 공사를 끝내고 아스팔트 포장을 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아스팔트 위에 선을 긋기 시작했다.
▲ 스탬프 공사를 하고 색칠한 도로. ⓒ이복남
어느 담벼락에 ‘보행환경 개선사업’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아스팔트 위에 선을 긋는 것은 미끄럼방지 포장공사라고 했다.
“이런 곳에 웬 미끄럼방지 공사람? 부산에는 눈도 잘 내리지 않고 얼음도 잘 얼지 않는 길인데…….”
대부분의 길은 차도와 인도가 분리되고 차도에는 아스팔트를 깔고 인도에는 보도블록을 까는데 동구 초량 차이나타운 부근에는 차도와 인도를 아스팔트와 보도블록으로 구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구분을 안 하는 것은 아니고, 아스팔트로 포장을 하고 선으로 구분하고 있었다. 아스팔트를 하고 그 위에 보도블록 같은 사각무늬 또는 격자무늬를 만들고 있었는데 철근으로 만든 무늬판을 아스팔트 위에 올리고 롤러로 밀어서 무늬를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또 며칠인가 지나자 이번에는 도로에 회색과 검은색으로 아라베스크 같은 문양을 그리기 시작했다. 길게 또는 둥글게 여러 가지 문양을 만들었다. 보도블록이 아니라 아스팔트 위에 무늬를 만들어 색칠을 하므로, 보도블록을 까는 것 보다는 예산도 적게 들고 개보수도 수월 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워질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요즘은 5030시대라 안전속도 5030정책으로 큰 도로는 50km 작은 길은 30km인데 새로 만든 스탬프 도로는 전부 30km도로다.
▲ 차이나타운 입구에 만든 동그란 문양. ⓒ이복남
동구청에 전화를 했다. 건설과로 전화를 했더니 도로에 칠을 하는 것은 교통행정과 담당이라고 했다.
필자 : “자갈치나 중앙동 광안리 등에는 울퉁불퉁한 돌이 깔려 있어서 장애인들의 원성이 높은데 동구청에서는 어떻게 해서 아스팔트에 이런 문양을 하게 되었나요?”
동구청 교통행정과 : “잘은 모르겠지만 자갈치 같은 곳은 바닷물에 아스팔트가 삭고, 그리고 차의 속도를 줄이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우리 동구에는 그런 점을 감안해서 석재 보도블록 보다는 개·보수도 수월할 것 같아서 내부적으로 스탬프 공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스팔트 위에 철근으로 무늬를 만드는 것은 스탬프 도장을 찍는 것 같으므로 스탬핑이라고 한단다. 그리고 울퉁불퉁한 돌은 사고석이라고 했다.
사고석이란 원래 사괴석(四塊石)으로 화강석을 인위적으로 정형화하여 정사각형으로 성형한 돌을 말한다. 주로 궁궐의 담장이나 격식이 있는 사대부의 집에서도 사용하였으나 최근에는 친환경 포장재로 각광 받고 있어 수요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그 사괴석이 언제부터 사고석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 자갈치 시장의 사고석 도로. ⓒ이복남
중구청으로 전화를 했다. 중구청 교통행정과에서는 담당이 아니라며 건설과로 바꿔 주었다.
필자 : “자갈치 시장이나 중앙동에 사고석으로 울퉁불퉁한 차도를 만든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래되어서 잘 모르겠다며 이유를 찾아보고 알려 주겠다고 했다.
마침 A 씨가 그런 사실을 알고는 불만을 토로했다.
A 씨 : “서면 영광도서 윗길로 다닐 일이 있어서 가끔 그길로 가는데, 길이 울퉁불퉁해서 다닐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횡단보도가 아니라 아래쪽 평평한 길로 무단횡단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A 씨는 목발을 사용하는 지체장애인이다. 울퉁불퉁한 사고석에 대해서 조사 중이라 사진을 한 장 찍고 싶다고 했더니 흔쾌히 승낙했다.
서면 영광도서에서 부산진구청으로 가는 길은 서면문화로였는데, 과연 그 일대 도로는 전부 사고석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A 씨 : “뒷모습만 찍으면 되지요?”
A 씨는 사고석으로 포장 된 횡단보도로 천천히 걸어갔다.
A 씨 : “비라도 오는 날이면 죽음입니다.”
▲ 서면 사고석 도로 위로 걸어가는 지체장애인. ⓒ이복남
목발을 사용하는 장애인은 비가와도 우산을 쓸 수가 없으므로 고스란히 비를 다 맞아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목발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딛어야 되는데 울퉁불퉁한 길로는 건너갈 엄두조차 안 난다는 것이다.
마침 폐지를 줍는 리어카를 끄는 할머니도 길이 울퉁불퉁해서 다니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어느 분의 말씀처럼 아스팔트는 바닷물에 삭는다고 했지만, 서면에 바닷물이 들어 올 리도 없으니 도대체 이유가 뭘까.
다음 날 부산진구청 건설과로 전화를 해서 필자를 밝히고 질의를 했다.
필자 : “서면문화로가 사고석으로 되어 있어서 장애인들이 다니기 불편하다고 해서 어제 갔다 왔는데, 사고석으로 포장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부산진구청 건설과 : “몇 년 전에 특화거리 조성한다고 그렇게 한 모양인데, 안 그래도 민원이 많아 다시 하려고 예산을 배정받아 놨습니다.”
특화거리 조성한다면서 그로 인한 장애인들의 불편상황은 왜 고려하지 못했을까.
필자 : “그동안 들인 예산은 어떻게 하고요?”
부산진구청 건설과 : “글쎄요, 그건 제가 오기 전이라서…….”
중구청에서 답변을 해 준다고 했는데 며칠이 지나도 답변이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중구청에 전화를 했다.
중구청 건설과 : “여기저기 좀 알아보느라고 전화를 못 했습니다.”
필자 : “자갈치에 사고석을 깐 이유가 무엇이던가요?”
중구청 건설과 : “자갈치 차도는 원래 아스팔트였는데 해수(海水)로 인해서 군데군데 파인 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차로에는 사고석을 깔고 인도에는 보도블록을 깔았는데 부근 상인들이 물건을 많이 내 놓는 바람에 사람들이 차도로 다니는 것 같습니다.”
필자 : “사실 자갈치시장 도로는 차도와 인도의 구분이 별로 없고 사람들이 그냥 왔다 갔다 하는데 장애인은 물론이고 인근 상인들도 불편해했습니다. 특히 다른 지방에서 자갈치에 오는 장애인들은 우리 단체에 항의를 하고 불평불만을 토로합니다.”
얼마 전에도 지방에서 자갈치에 해산물을 구입하러 온 휠체어 사용 장애인이 차는 근처 주차장에 주차를 했는데 휠체어를 타고 자갈치를 지나가기가 너무 어렵더라며 불평을 했다.
중구청 건설과 : “저희들도 알고 있는데, 전체를 다 바꾸기에는 예산이 너무 많이 들고 그래서 부분적으로 조금씩 보수를 하고 있습니다.”
도로를 건설하고 잘못되어서 다시 수리하고 보수하고, 그것은 다 국민들의 세금인데 거기에 대해서는 누가 어떻게 책임 질 것인가.
▲ 울퉁불퉁한 서면문화로의 특화거리. ⓒ이복남
각 구청 건설과에서도 사고석 도로 등은 비장애인은 물론이고 장애인들에게 불편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평평한 도로로 보수할 예정이라니 더 이상 뭐라고 할 말은 없다만, 왜 처음부터 장애인의 불편함을 인지하지는 못하였을까.
어느 조경회사에서는 사고석으로 포장하는 방법이 인터넷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었고, 어느 석재회사에서는 사고석으로 멋지게 포장했다고 홍보하는 등 모두가 사고석 포장을 자랑하고 있어 몇 군데 전화를 했다.
필자 : “사고석 도로는 좋지만, 장애인이나 유모차가 다니기에는 불편한데 혹시 그에 대한 대안은 있을까요?”
어떤 곳에서는 몇 사람이나 바꿔주기도 했으나 담당자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며 대답을 회피했다.
장애인이 편한 길이면 모두가 편하다. 그런데 조봉현 장애인권익활동가는 이제는 그 말도 바꾸라고 했다. 장애인이 편하면 비장애인은 더 편하다고.
특정한 누군가를 위한 디자인을 별도로 만드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누구에게나 편리하도록 만든 보편적인 개념이 배리어 프리고 유니버설 디자인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다수를 위한 보편적 공감이 아니라 몇 몇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뭔가를 입안하고 정책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출처: 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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