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인 피플] 장애인식 개선 앞장서는 배우 노현희
편의지원센터
2020-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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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국민의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 장애인의 재활 의욕을 고취하기 위해 정부가 제정한 기념일이다. 올해로 어느덧 40회째를 맞는다. 그런데, 여기 벌써 수십 년째 장애인을 위한 봉사와 나눔의 손길을 펼치며, 우리 사회의 장애인식 개선을 위해 팔을 걷은 배우가 있다. 바로 노현희 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각종 자선공연과 초청행사 등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시간과 형편이 닿는 한 어디든 달려가 힘을 싣는 ‘착한 연예인’으로 유명하다. 무의탁 노인모임, 노숙자를 위한 무료배식, 복지관 등 다양한 시설에서 사랑나눔을 실천해왔다. 한번은 호스피스 병동에서 임종을 앞둔 암환자가 노래를 들려달라고 해 손을 꼭 잡고 불러준 적도 있다. 지난해부터는 서울 휘경동에 소재한 동문장애인복지관(관장 이성복)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틈날 때마다 장애인 권익옹호의 현장에 선다.
노현희 씨가 장애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시청자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던 농촌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의 ‘명자’로 출연할 당시부터. 극 중 활력을 불어넣는 밝고 쾌활한 성격의 캐릭터를 연기하며 한창 대중의 주목을 받을 때이다. 갑작스런 사고로 중도장애를 겪게 된 홍성룡 CP가 그를 장애인 행사에 자주 초대했던 게 인연의 시작이었다. 이후 한국장애인고용안전협회 홍보대사를 맡거나 시각장애인이 만든 애니메이션에 내레이션 재능기부를 하는 등 ‘장애인의 친구’가 됐다.
동문장애인복지관의 홍보대사는 우연한 기회에 지인의 소개로 맡았다. ‘동행’이란 제목으로 열린 콘서트에 초대가수로 참여한 게 계기였다. 그런데, 위촉식에 오면서 깜짝 놀랐다. 이미 그 자신이 봉사활동을 위해 몇 해 전 방문했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 더욱 애착을 갖고 장애인의 권리실현을 위한 다양한 사업에 함께 하고 있다.
특히 이런 활동을 단순히 단발성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매년 꾸준히 동참하는 모습에서 그의 진정성이 전해진다. 바자회, 시화전, 백일장, 장기자랑 등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크고 작은 자리에 기꺼이 올라 사회를 맡고, 노래를 부르며 응원한다. 주변의 칭송에도 오히려 자신이 배우고 얻는 게 더 많다며 겸손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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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노현희 씨는 평소 장애인식 개선에 앞장서고 있는 ‘착한 연예인’이다. [사진제공 = 노현희] |
우리 모두가 장애인이라는 마음 갖는다면
노현희 씨는 2008년 출연했던 EBS TV <리얼실험 프로젝트X>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2주간 안대를 쓰고 시각장애 체험을 하면서 장애인에 대한 평소 인식을 완전히 바꾸게 됐다.
“식사는커녕 간단히 물 한 잔 마시는 것도 어려웠어요. 익숙한 제 방에서 조차 물건을 못 찾거나 가구 모서리에 부딪히기 일쑤였죠. 제일 어려운 점은 계단 오르기였어요. 겨우 보름 남짓한 보잘 것 없는 체험도 이렇게 힘든데, 시각장애인들은 평생을 이처럼 힘들게 살아야한다고 생각하니, 체험마저 왠지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신호등을 건널 때의 공포감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모든 게 어둠에 뒤덮여 한 발짝도 내딛기 어려울 만큼 무서웠다. 바람을 가르며 쌩쌩 내달리는 자동차와 인파 속에서 홀로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기분은 마치 남산꼭대기에서 눈을 감고 혼자서 집을 찾아가는 것처럼 막막하게 느껴졌다. 낭떠러지에 서 있는 것처럼 아득했다.
그때의 경험은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는 것이기에 그들의 불편을 남의 일로만 여겨서는 안 될 것이라는 귀한 깨달음을 얻게 했다. 말과 인지가 아닌, 직접 몸으로 겪는다는 게 얼마나 큰 차이인지 피부로 알게 했다. 그래서인지 그 다음부터는 주변을 한 번씩 더 돌아보게 됐다. 공연장을 계약할 때도 휠체어가 들어올 수 있는 곳인지 먼저 확인하고, 식당에 갈 때도 계단이나 문턱이 얼마나 높은지 살핀다. 승강기를 탈 때는 안내점자를 눈여겨보고,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는 점자블록에도 시선이 머문다. 장애인을 대하는 에티켓도 빼놓을 수 없다.
“라디오 DJ를 할 때였어요. 휠체어를 탄 출연자가 있었는데, 생방송 시간에 늦지 않으려 빨리 밀어주다 그만 고꾸라져 넘어지는 일이 있었죠. 그분은 자기만의 패턴이 있고, 일정한 속도가 있는데, 저는 그게 선행이고 친절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그때 배웠어요. 장애인이 직접 할 수 있는 일을 일방적으로 돕는 건 자칫 결례가 될 수 있다는 걸. 장애인을 도울 때는 반드시 동의를 구해야 합니다.”
그는 종종 장애인 사고 관련 소식이 전해져 올 때마다 아직 우리 사회에 공동의 관심과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느낀다. 물론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해외 선진국에 비해서는 공공시설이나 이동수단이 부족한 것 같아 아쉽다. 만약 우리 모두가 장애인이라는 마음을 갖는다면 좀 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개선하게 될 거라는 게 그의 솔직한 심정이다.
‘극복의 아이콘’ 노현희의 꿈
올해로 어느덧 데뷔 30년차를 맞는 노현희 씨는 자신이 서 있는 문화예술 분야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해 더욱 힘차게 뛰고 싶다. 그들과 함께 땀 흘리고, 무대에 오르고, 그들이 우리 사회의 당당하고 떳떳한 일원임을 알리는 작품을 만드는 게 목표다. 그 일환으로 얼마 전에는 장애인연극제에 출품해 대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마음처럼 쉽지 않다. 사회적 약자나 취약계층을 위한 작품은 외면 받는 현실이어서 안타깝다. 혼자의 힘으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막다른 벽에 부딪힐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여러 상황과 여건이 맞아야 하고, 때로는 운도 따라줘야 하는데 마냥 녹록치 않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저보고 ‘극복의 아이콘’이래요. 솔직히 여러 가지 인생의 부침을 겪으며 바닥까지 떨어지는 힘든 생활도 해봤어요. 하지만 희망을 놓지 않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결실을 얻으리라고 믿어요. 장애인들이 무대 위에서 맘껏 나래를 펼칠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가 바라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살맛나는 세상이니까요.”
자신의 말마따나 그는 한때 극심한 슬럼프로 연예활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남모를 우여곡절에 눈물을 삼키기도 했다. 속이 다 썩어 들어가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어딘가에서 과거의 자신처럼 삶의 역경을 견뎌내고 있을 누군가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부탁하자 따뜻한 위로를 먼저 보냈다.
“제가 좌절하고 있을 때, 한 동료가 그런 말을 했어요. 세상은 돌고 도는 거라고. 기회는 언젠가 꼭 다시 온다고. 그러니 포기하지 말라고. 그래서 힘들지만, 하루하루 제 안에 ‘조그만 노현희’를 만들었어요. 오늘 하루도 잘 견딘 나를 사랑하고 칭찬했죠. 인생이란 게 쉽지 않은 여정이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지금의 시련이 훗날을 위한 좋은 밑거름이 될 거예요. 분명 내일은 오늘보다 더 좋은 아침을 맞이할 겁니다.”
요즘은 예전만큼 TV 화면에서 자주 볼 수 없지만, 그는 꾸준히 연극 무대에서 활동 중이다. 2013년 창단한 극단 ‘배우’를 통해 관객과 만나고 있다. 가족뮤지컬 <마음에 쏙 드는 엄마를 원하세요?> 등 지난해만 9편의 작품을 올렸을 만큼 활동이 왕성하다. 팔방미인답게 기획부터 출연, 홍보까지 도맡는다.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잠시 쉬고 있지만, 얼마 전까진 지방공연을 다닐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그는 지난해 연말 공연한 연극 <테너를 빌려줘>의 프레스콜에서 “배우는 ‘평생 배우라고’ 배우인 것 같다. 타인의 인생을 표현하는 배우로서 현장에 살아있음이 행복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배우로 살아가는 게 꿈”이라며 연기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연습실로 바삐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어쩌면 노현희 씨는 이미 그 꿈을 이룬 배우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의 극단 이름처럼 말이다.
출처 : 위드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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