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편의 가로막는 편의증진법
면적 300㎡ 이상 시설에 접근로 의무화
예외 많고 관리·감독 안돼 실효성 의문
복지·치안센터도 경사로 없는 곳 수두룩
인권위, 3년 전 300㎡→50㎡ 개선 권고
복지부 “소상공인 부담… 사회 합의 필요”
“접근 개선, 시혜성 복지 아닌 권리” 비판
장애인 단체들은 현행 법령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하게 생활편의시설에 접근할 수 없도록 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개정 필요성을 제기한다.
2일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장애인 등 편의법) 시행령을 살펴보면, 1998년 4월11일 이후에 건축하거나 증·개축, 용도변경을 한 일반음식점, 카페·제과점 등 중에서 바닥면적이 300㎡(약 90평) 이상인 경우에만 장애인 등이 통행 가능한 출입구 접근로를 설치하고, 출입구 높이차를 제거하도록 하고 있다.
장애인 단체는 이 시행령이 장애인 등 편의법의 상위법인 헌법과 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을 위배한다고 주장한다.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지닌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은 장애인 접근성 보장을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생활편의시설 장애인 접근 및 이용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생활편의시설 공대위)’에 참여 중인 이재근 변호사는 “300㎡라는 기준 자체가 다른 나라에 비해 관대하게 설정된 면이 있고, 예외가 허용되는 대상이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에 이를 삭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시행령을) 위반한 경우에도 적절히 관리·감독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기에 300㎡ 기준 삭제에서 나아가 실질적 관리·감독이 이뤄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인권위, 개정 권고… 정부 “소상공인 부담 우려”
국가인권위원회도 해당 시행령 탓에 장애인들이 소규모 공중이용시설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문제점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정부에 시행령 및 관련 법 개정을 권고한 상태다.
인권위 상임위원회는 2017년 말 내놓은 권고 결정문에서 “바닥면적과 건축 일자를 기준으로 공중이용시설에 대해 편의시설 설치의무를 일률적으로 면제하는 것은 장애인의 시설물 접근권을 명시한 장애인 등 편의법의 취지에 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로 인해 헌법에서 보장하는 장애인의 행복추구권과 일반적 행동자유권, 평등권 등이 침해되는 결과로 연결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인권위는 300㎡ 이상으로 규정된 면적 기준을 ‘50㎡ 이상’으로 개정하고, 편의시설 설치에 따른 시설주의 부담 완화를 위한 정부 지원을 강화할 것 등을 권고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민간 사업주들의 반발 등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개정이 힘들다고 한다. 영세한 소상공인들에게까지 과도한 부담을 주는 규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장애인들 입장에서는 접근권 문제이기 때문에 당연히 요구하는 부분이지만, 시장 등에서는 이를 강한 규제로 받아들일 수 있다”며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라 (법 개정은) 실질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파출소·행정복지센터 접근도 쉽지 않아
장애인들은 면적 기준이 제한된 공중이용시설뿐만 아니라, 의무적으로 출입구 접근로 등을 설치해야만 하는 공공건물에도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장추련) 등 70여개 단체가 올해 7∼8월 전국 지구대·파출소 및 치안센터 2990곳 중 1615곳을 대상으로 모니터링을 진행한 결과, 10곳 중 1곳(12.1%, 196곳)가량은 휠체어를 이용해 출입구에 접근하기 힘들었다. 경사로가 설치된 1128곳(출입구에 턱이 없는 곳 제외) 중 폭이 좁아서 이용하기 어려운 곳은 251곳(22%)이었으며, 경사로가 가파른 곳은 449곳(40%)에 달했다. 주 출입구에 시각장애인 점자유도블록이 설치돼 있지 않은 곳(298곳)과 점자유도블록이 설치된 곳 중 상태가 좋지 않은 데(502곳)도 적지 않았다.
장추련이 지난해 7∼8월 전국 행정복지센터 3499곳 중 1794곳을 대상으로 한 모니터링에서도 주 출입구에 경사로가 설치돼 있지 않은 곳이 200여곳에 달했다.
◆“장애인의 자유로운 선택·접근권 보장해야”
전문가들은 장애인이 모든 건물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그들을 위한 시혜성 복지가 아닌 권리 차원의 문제라며 시급히 다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성규 서울시립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소상공인들의 의견을 반영한다는 정부의 말도 일리는 있지만, 장애인들이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헌법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소상공인이 설치비를 부담하기 어려우면 (정부가) 지원하는 형태로라도 법 개정을 해서 장애인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자유로운 선택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장추련은 시행령 내 면적 제한 기준을 없애고, 대신 시설 규모 등에 따라 정부 지원 형태를 다르게 하는 방향의 법 개정안도 준비 중이다.
박김영희 장추련 상임대표는 “턱 때문에 접근이 안 되다 보니 (장애인들은) ‘뭘 먹고 싶으냐, 메뉴를 뭐로 정할 거냐’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며 “가게 앞을 봐서 계단이나 턱이 없으면 먹고 싶은 것이 아니더라도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먹거나 (식사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이행을 촉구했다.
출처 : 세계일보
해당 기사링크 : http://www.segye.com/newsView/20201202520885?OutUrl=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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