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이 생존 / 장애인, 우리가 사는 세상 (2) 시각장애인 허무근 씨
항균필름 덮은 점자 못 읽고
QR코드 인증도 쉽지 않아
설 자리 더 좁아지고 무력감만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등록 장애인은 263만 3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5.1%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일상에서 그들을 잘 마주치지 못합니다. 아무나 쉽게 갈 수 있는 곳, 할 수 있는 일들도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못합니다. 비장애인이 느끼지 못하는 유무형의 장벽이 장애인들을 여전히 막고 있습니다. 코로나19는 이러한 장벽을 더 두껍게 했습니다. 제41회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유형이 다른 장애인들을 직접 만나 코로나19 탓에 더욱 어려움을 겪는 그들 사연을 들어봅니다.
19일 오후 3시 경남시각장애인복지연합회 합천군지회 사무실에서 허무근(66) 지회장을 만났다. 그는 시력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흰지팡이를 사용해 보행하는 중증 시각장애인이다.
그는 "시각장애인들에게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여러 조치는 비장애인들 이상의 큰 벽"이라며 "아예 이동을 포기하고 집에 고립되는 시각장애인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상황이 2년째 이어지면서 비접촉·비대면 원칙은 기본적인 방역수칙이자 생활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만지고, 밟고, 두드리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장애인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졌다. 점자와 손가락을 가로막는 승강기 항균 필터도 그중 하나다.
허 지회장은 건물 승강기 버튼에 붙어 있는 필터를 가리키며 "시각장애인은 '열림' '닫힘'이나 층수가 적혀 있는 점자를 손으로 만져 승강기를 이용하지만, 필터가 인식을 어렵게 만든다"라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 확산 이후 거의 모든 승강기에 항균필터가 붙어 있는데, 사무실처럼 매일 가는 곳은 버튼 위치를 기억하고 있어 상관없지만, 낯선 곳에서는 속수무책"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해 6월부터 도입한 전자출입명부 체계도 마찬가지다. 펜을 통한 교차오염, 허위 정보 기재, 개인정보 유출을 방지하고 신속 정확하게 접촉자 관리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시각장애인이 이용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허 지회장은 "빛을 조금이나마 감지할 수 있는 저시력장애인도 스마트폰을 쓰고, 전맹 시각장애인도 시각장애인협회에서 주문제작한 인터넷이 가능한 휴대전화를 쓴다"라면서도 "정보무늬(QR코드)를 생성하고 확인하는 과정이 화면 읽기 프로그램과 호환되지 않아 무용지물과 다름없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어딘가에 들어갈 때마다 매번 수기 명부 작성을 부탁해야 하는데, 장애인으로서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라고 토로했다.
실제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가 지난해 7월 QR코드 인증이 가능한 앱 3가지를 대상으로 시각장애인 접근성을 조사한 결과, 네이버와 PASS는 메뉴 진입부터 불가능했고, 카카오톡은 다음 단계인 약관 동의에서 막혔다. 어찌어찌 코드를 생성한다고 해도, 단말기 위치에 정확히 갖다대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비대면 문화를 타고 확산하는 무인주문기(키오스크) 역시 시각장애인에게는 조형물이나 다름없다. 관공서·음식점·카페·패스트푸드점 등 거의 모든 곳을 통틀어 촉각 키패드와 음성지원 이어폰 단자를 갖춘 곳은 찾아보기 어려운 까닭이다.
그는 "합천군은 대도시에 비해 무인주문기가 많지는 않다"면서 "누구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공평하게 줘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무인주문기를 제작·운영할 때, 장애인 접근성 관련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시각장애 학생들은 비대면 학습 과정에서 코딩 관련 강의 수강을 거절당하거나 학습보조인력을 제공받지 못하는 일이 있었고,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가장 먼저 일자리를 잃어 생존의 위기를 겪고 있다"라며 "이들의 교육권·생존권 문제도 해결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허 지회장은 마지막으로 비장애인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그는 "인도 점자블록 가운데에 자전거나 전동킥보드가 놓여 있으면 시각장애인은 그저 부딪칠 수밖에 없다"라며 "제도 마련과 별개로, 작은 배려가 시각장애인들에게 큰 힘이 된다"라고 말했다.
출처 : 경남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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