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바로간다 인권사회팀 고재민 기잡니다.
토지주택공사, LH가 취약계층을 위해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면서, 만약 장애인이 들어와 사는 경우엔 그에 맞게 집을 고쳐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믿고 임대주택에 들어간 한 중증장애인은 막상 화장실 조차 맘 편히 갈 수 없는 집에 살게 됐다고 합니다.
이런 어려움을 호소하는 장애인들이 한 두명이 아니라는데요, 어떻게 된 일인지 지금 바로 가보겠습니다.
리포트
휠체어 한 대가 한 평 남짓한 화장실 안으로 좀처럼 들어서질 못합니다.
문턱을 넘으려고 1분 가까이 계속 오가다가, 겨우 자리잡고 변기 뚜껑에 손을 뻗습니다.
[이경희/지체장애 1급]
"밤에 화장실에 몇 번 가기도 하거든요. 제가 들어가다가 오죽하면 바지 내리기 전에 볼일을 보고, 수치스럽고…"
화장실 문폭은 68센티미터.
휠체어의 뒷바퀴 너비는 69.5센티미터.
아예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휠체어 앞바퀴만 겨우 밀어넣은 채, 몸을 던지다시피 변기로 건너타야 합니다.
"만약에 제가 화장실에 입구가 팍 걸려서 떨어지면 그때는 어떻게 하나…"
이 집은 지체장애 1급 이경희씨가 약 2년 전 입주한 토지주택공사의 공공 임대주택.
9센티미터 높이의 화장실 문턱처럼, 집안 곳곳이 이씨의 일상을 가로막았습니다.
집 밖에 나갈 땐 후진이 필수.
현관 양옆의 벽 때문에, 외출형 휠체어의 방향을 돌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경희]
"제가 겨우 들어오고 한 사람도 못 들어와요. 너무 불편하잖아요. 휠체어 세워야 되는데…"
부엌 살림도 높아 다치기 일쑤입니다.
"허벅지에 기름 튀어서 쏟을 때도 있고, 팔도 막 기름이 흘러서 응급실에 간 적도 몇 번 있었죠."
이 임대주택의 모집공고, "지체장애인이 신청하면 편의시설을 무료로 설치해줄 수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씨는 이 말을 믿고 LH에 전화했지만, 답변은 뜻밖에도 "안된다"였습니다.
화장실 공사는 비용이 많이 들고, 싱크대는 낮춰봐야 10센티미터 수준이라, 별 도움이 안 될거란 이유를 댔습니다.
참다못한 이 씨, 지방자치단체 도움을 받아 직접 공사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엔 '나갈 때 원상복구를 하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이 씨에겐 사실상 집을 고치지 말라는 말로 들렸다고 합니다.
[이경희]
"못 하나를 박아도. 다 복구를 해놔야지, 안그러면 보증금에서 다 빼요. 그러면 저는 (비용이 부담되니까) 그 복구를 할 수 없잖아요."
장애인 편의를 고려해 지은 다른 공공 임대주택과 비교해 봤습니다.
화장실에는 장벽 같았던 9센치미터 문턱을 없애고, 쉽게 열리는 미닫이문을 설치했고, 세면대를 치우고 변기 위치도 조정했습니다.
경사로로 만들어진 현관 역시 휠체어를 돌릴 공간이 충분합니다.
부엌 싱크대도 아래 빈 공간을 뚫어 휠체어를 밀어넣을 수 있습니다.
[A씨]
"걷지 못하다 보니까 앞이 막혀 있으면 제가 못 들어가거든요."
이 씨는 장애인이라고 집조차 장애물이 되선 안 된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습니다.
인권위도 "자기 집인데 혼자 화장실이나 주방도 이용할 수 없도록 한 건 차별"이라며, "사회 취약계층을 위한 국민임대주택인만큼 장애인 시설을 제공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애시당초 공사가 어려운 거였다면, 입주 공고에 미리 제대로 알렸어야 한다고도 지적했습니다.
권고가 나온지 1년이 다 돼서야 LH는 집을 고쳐주겠다고 알려왔습니다.
그런데 대상은 진정을 제기한 이 씨 한 사람뿐이라고 했습니다.
[이경희]
"다른 장애인 가구도 같이 좀 고려해서 해주셔야 하는 거 아니냐 했더니 그것까지는 얼렁뚱땅 넘겨버리더라고요."
화장실조차 가기 어렵다며 매년 LH에 호소하는 장애인은 340여가구.
LH는 이들에 대한 대책은 고민해 보겠다고만 밝혔습니다.
"맨날 울부짖고 화를 내야지만 뭔가 이뤄지더라고요. 그래서 사는 게 너무 힘듭니다."
바로간다 고재민입니다.
출처 : MBC
해당 기사링크 : https://imnews.imbc.com/replay/2021/nwdesk/article/6282791_3493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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