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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의 손으로 배리어프리를 일구다
편의지원센터
2021-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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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학교 배리어프리 사업단 ‘장벽없는 경희대, 함께하는 회기동’ 인터뷰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대학에서는 온라인 수업이 일상이 되었다. 몇몇 학생들은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로 오히려 비대면 수업을 환영하기도 하지만, 비대면 수업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학생들도 있다. 바로 시청각 장애인들이다. 이들을 위한 보조기능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온라인 수업이 시행된 것이다. 장애학생들은 어떻게든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대학에서의 지원 없이 스스로 보조 프로그램을 찾아 이용하거나, 불편을 학교에 건의하고 상황이 개선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강의가 시행되기 이전부터 대학 현장에서 장애학생들이 배제되고 있다는 목소리는 존재해왔다. 캠퍼스 내 가파른 경사, 턱이 높은 계단, 뚝 끊긴 점자유도블록 등 비장애인은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수 있는 풍경이 장애 학생들에게는 장벽으로 다가온다. 

  대학생들에게 캠퍼스는 교육의 장, 그 이상의 역할을 한다. 대학생들은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는 것 외에도 동아리 활동을 하거나 취업정보를 찾는 등 캠퍼스를 톡톡히 활용한다. 기숙사생에게 대학은 주거 공간이기도 하다. 이처럼 대학생들의 생활 전반을 책임지는 캠퍼스에서 배제된다는 것은 교육권뿐만 아니라 대학 내 생활권이 침해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생활의 모든 장벽(barrier)을 없애는 것, 즉 ‘배리어프리’(barrier-free)가 중요하다. 배리어프리는 주로 저상버스 등 장애인 이동권을 이야기할 때 많이 쓰이지만, 물리적인 장애물뿐만 아니라 장애인이나 고령자 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역시 넓은 의미에서 없애야 할 ‘배리어프리 대상’에 포함된다. 휠체어 리프트 설치와 같이 생활과 밀접한 부분뿐만 아니라 문화생활 영역까지 사회적 약자들이 느끼는 장애물들은 모두 배리어프리 과제에 해당하기 때문에, 최근에는 배리어프리 영화제 등이 열리기도 한다. 즉, 사회적 기반을 통해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생활수준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온전한 배리어프리라고 할 수 있다. 

배리어프리를 외면하는 대학

  배리어프리는 장애인에 대한 ‘배려’나 ‘시혜’의 개념이 아니다. 특히, 학내 배리어프리 과제는 1998년 4월 11일부터 이미 법적으로 의무화되어 있다. 대통령령 제31614호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하 장애인 편의법)에 따르면 대학은 편의시설 설치 대상, 즉 배리어프리 시설 의무 설치 대상에 속한다. 이 법에 따라 대학은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 주 출입구 및 접근로 경사로, 점자블록, 경보 및 피난설비, 유도 및 안내설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기숙사 역시 접근로 단차 제거 등이 의무화되어 있다. 그러나 아직 많은 대학은 배리어프리 과제를 신경쓰지 않는다.

  법률의 세부 내용이 모호하여 시행에 어려움을 겪는 것도 아니다. 휠체어의 너비를 고려하여 복도 및 접근로의 폭을 1.2m 이상으로 하고, 경사의 기울기를 1/18 이하로 규제하는 등 시설물에 대한 법령이 수치화되어 있다. 또한 보행 시 안전성을 위해 바닥 재질을 매끄럽게, 이음새 구멍 크기를 2cm 이하로 규정하고 있고, 휠체어 사용자를 위해 점자표지판 및 손잡이 높이의 정확한 위치가 명시되어있다. 나름 면밀한 가이드라인이 제도화되어 있음에도, 법령 대상으로 신축건물만 해당되거나 법령을 어길 시 제재조항이 따로 없어 시행효과가 미미한 것이다.

  또, 보건복지부령 제672호에 따르면 대학은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이하 BF인증) 의무 시설의 대상이기도 하다. 즉, 대학은 인증기관 지정신청서를 보건복지부, 국토교통부에게 제출해야 하며, 인증심사를 통과한다면 인증실적과 인증업무 추진상황을 연2회 보고해야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하지만, 이 역시 대상이 신축건물로 제한되어있기 때문에, 이것만으로 대학에서 배리어프리가 잘 실천되고 있는지 확인하기에는 아직까지 부족하다. 

배리어프리, 대학생의 손으로 일구다

  이렇게 배리어프리에 무관심한 대학을 점검하고 보완하기 위해 뭉친 대학생들이 있다. 바로 경희대 배리어프리 사업단 ‘장벽없는 경희대, 함께하는 회기동’(이하 ‘사업단’)이다. 사업단은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뿐만 아니라 캠퍼스 소재지인 회기동까지 영역을 확장하여 경희대학교 일대를 배리어프리화하고자 하였다. 

  사업단은 캠퍼스 내 모든 건물을 답사하며 학내 배리어프리 현황을 조사하였다. 사업단은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경사로와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경사로의 경사는 충분히 완만한지, 엘리베이터의 버튼 위치가 휠체어 이용자에게 맞춰졌는지 살펴보았다. 더불어 점자 유도블록은 제대로 설치되었는지, 촉지도(촉지도에 대한 설명)는 정확한지, 복도에 핸드레일이 끊기지 않는지도 확인하였다. 또한 강의실에 장애인 전용좌석이나 휠체어 이용이 가능한 높이의 책걸상이 있는지, 장애인화장실의 설치 여부와 내부 손잡이 유무, 입구 크기등을 체크하였고, 장애인 주차장이 충분한지까지 면밀하게 둘러보았다. 

  사업단은 이어서 현장답사 결과와 건물별 이용 빈도를 고려하여 청운관(교양동) 1층 및 전층 화장실 앞과 문과대학 1층에 점자유도블록을 구매해 설치하였다. 

  더불어 촉지도의 정확성이 떨어지는 등 강의실 위치가 확인이 어려운 경우가 있어 문과대학과 청운관 강의실 안내판 하단에 점자스티커를 부착하였다. 

  경희대 학생들과 회기동 주민들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사업단은 경희대 주변 상권으로 영역을 넓혔다. 사업단이 직접 식당 및 상점에 방문하며 배리어프리 필요성에 공감하는 사업장을 선정했다. A 사업장에는 경사로가 설치되어있었지만 경사로 진입 구간의 단차가 휠체어 통행을 방해하는 상태였고, B 사업장에는 보도와 건물입구의 단차를 줄이기 위한 금속 단이 있었지만 이 역시 휠체어로 통행하기에는 무리인 상황이었다. 사업단은 출입구 너비, 주변 진입로 상황 등 두 사업장의 특성을 고려하여 경사로를 주문제작한 후 2021년 1월에 해당 사업장에 설치하였다. 더불어, 사업단은 ‘경희마을 사람들’ 상인회와의 미팅을 통해 협력의사를 보인 사업장에 점자메뉴판 도입을 제안하였다. 이에, 협력 의사를 보인 사업장 중 두 사업장이 점자메뉴판 도입을 희망하여 A, B 사업장에 점자메뉴판을 2부씩 제작하여 배포하였다.

  사업단은 경희대와 회기동 일대 장애인 이동권뿐만 아니라 AAC 시스템 도입을 추진하여 의사소통 취약자의 권리 구제를 실천하고자 하였다. AAC란 보완 · 대체 의사소통(Augmentative and Alterative Communication)의 약자로 말과 언어 표현 및 이해에 크고 작은 장애를 보이는 사람들에게 언어적 표현을 보완(augment)하거나 대체(alternative)하는 방법을 말한다. 비장애인들은 주로 언어표현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의사소통을 하는 방법으로 필담을 떠올리곤 하는데, 아동, 고령자, 외국인, 장애인 등 필담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의사소통 방식을 제안한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AAC 시스템 방식으로는 음성 출력이 지원되는 AAC 앱, 해당 그림을 응시하거나 지목하는 의사소통판 등 전자/비전자 의사소통판이 있는데, 그 중 사업단은 비전자 의사소통판인 AAC 책, AAC 의사소통 포스터 등을 배포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사업단은 AAC 메뉴판을 구비하고 있는 카페와 2018년부터 AAC Zone으로 선정된 포구 성산동 일대를 방문하여 AAC를 어떤 형태로 시행하고 있는지 살폈다. 해당 카페는 인지하기 쉬운 그림으로 구성된 별도의 메뉴판을 구비하였지만, AAC 의사소통판의 사용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또, 마포구 성산동의 주민센터, 도서관에는 AAC가 잘 실천되고 있었지만, AAC Zone으로 지정된 성산동 편의점의 경우에는 점원이 AAC 설치여부 및 이용방법에 대해서 인지하지 못한 경우가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사업단은 위 현장답사를 통해 AAC 의사소통판 제작 및 배포뿐만 아니라 사용법 등에 대한 교육까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며, AAC 사업의 가이드라인을 더 면밀하게 잡게 되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AAC 제작업체인 ‘사람과 소통’ 사무실에 방문하여 AAC 의사소통판 구매와 교육에 대한 협력을 논의하였다.

  본격적인 AAC Zone 조성을 위해 사업단은 경희대 내 AAC를 도입할 공간을 설정하였다. 캠퍼스 내 서점, 복사실, 우체국, 은행, 매점 등의 실무자와 만나 해당 공간에서 자주 사용되는 어휘 등을 수집한 후, 사용되는 어휘가 지나치게 제한된 공간을 제외한 후 우체국과 복사실을 대상으로 AAC Zone 구축을 확정지었다. 

  사업단은 학내 시설뿐만 아니라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 주변 회기동 상점에도 AAC 의사소통판을 제작을 기획하였다. 사업단은 식당 8곳, 카페 8곳을 직접 답사하면서 협력을 요청하였고, 그 중 입구 단차, 자동문 설치 여부 등 기존 환경에 있어서 배리어프리화가 용이하고 협력 의사를 밝힌 식당 3곳, 카페 1곳의 AAC 메뉴판 제작을 결정하였다. 사업단은 경희대 정문 앞에 위치한 약국에도 방문하여 사업 협력을 요청하거나 사업단 소개 브로슈어 및 AAC 의사소통판에 대한 안내 및 협력요청문을 전달하였고, 협력의사를 밝힌 약국 2곳에 AAC 의사소통판을 제작 및 배포하였다. 약국에 AAC Zone을 구축하면서 AAC 의사소통판 사용법 및 사용자 대응에 대해서도 간단한 교육까지 진행하였다. 

  더불어 사업단은 경희대 캠퍼스, 회기동을 너머 동대문구까지 AAC Zone을 확장시켰다. 우선 동주민시설, 지구대 및 파출소, 도서관 등 AAC Zone으로 지정할 수 있을 만한 동대문구 소재 공공시설 추려내어 명단을 정리한 후, 동대문구청에 방문하여 AAC 의사소통판 샘플과 사용방법에 대해 안내하면서 AAC Zone 사업계획을 전달하였다. 그 결과, 동대문구 내 모든 동주민센터와 공공도서관 7곳에 공문을 보내 AAC 의사소통판 비치 및 사용법 교육을 허가받았다. 사업단은 협약을 맺은 ‘사람과 소통’과 함께 동주민센터 14곳을 방문해 실무자를 대상으로 AAC 교육을 진행하였고, AAC 책자, AAC Zone 인증 스티커, AAC 팔찌, AAC 포스터를 배포하여 동대문구 주민들의 의사소통권을 보장하였다. 

  ‘장벽없는 경희대, 함께하는 회기동’은 경희대학교 캠퍼스, 회기동 일대를 답사하면서 배리어프리를 구체화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고, 경사로 및 점자유도블럭 설치, 점자스티커 부착, AAC Zone 구축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배리어프리를 실현했다. 이 과정에서 현재 배리어프리가 어떤 상황인지 진단할 수도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을 경희대학교 학생들이 직접 발로 뛰어가며 겪었기에 더 큰 의의가 있다. 사업단과의 인터뷰를 통해 현재 배리어프리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진정한 배리어프리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물었다.

Q1. ‘장벽없는 경희대, 함께하는 회기동’ 사업단을 결성하게 된 취지가 궁금하다. 

  평소 배리어프리 의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경희대학교 학생 6명이 문제의식을 실천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는 것에서부터 사업단이 시작되었다. 당장 내가 몸담고 있는 지금 여기, 즉 대학과 지역사회부터 바꿔 나가는 것이 우선이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경희대부터 시작해 회기동, 동대문구까지 활동영역을 확장하였고 2020년 7월에 사업단을 결성하게 되었다. 사업을 구체적으로 기획하는데 있어서는 다른 배리어프리 운동의 영향도 받았다. 몇몇 대학생들이 캠퍼스 배리어프리 지도를 만들었다는 말에 경희대에도 이런 움직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고려대학교학생들이 AAC Zone을 지역사회에 보급한 사례를 보고 이를 확산시키면 좋겠다고 생각해 관련 언어연구소와 연락하고 공부하며 AAC 의사소통판 보급 사업을 실질적으로 기획하게 되었다. 다른 배리어프리 사업을 참고했던 것처럼, 이후에 누군가 배리어프리 활동을 진행하게 된다면 우리 활동이 일말의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Q2. 사업단이 모두 직접 현장에 나가 조사하고, 시설물 설치 및 교육을 했다. 경희대의 배리어프리 수준을 어떻게 진단하는가.

  현장을 조사하자, 아예 휠체어가 진입조차 안 되는 건물도 있었다. 경희대 음악대학 건물의 경우, 진입로가 모두 계단이기 때문에 휠체어 진입이 어렵고 그나마 있는 계단조차 미끄럽고 가파르기 때문에 학생들이 이동에 불편을 겪는다. 많은 학생들이 이용하는 교양동에 방문해 현장 경비 담당자와 인터뷰를 하다가 시각장애 학생이 화장실을 찾지 못해 곤란을 겪은 적이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체크리스트를 들고 경희대 캠퍼스와 동네를 돌아다니면, 3년간 다닌 학교임에도 생소하게 느껴진다. 주로 경사로(유무, 경사 정도), 엘리베이터(유무, 층 운행, 버튼 높이), 점자 유도블록(유무, 정확성), 핸드 레일(유무, 끊김), 의자/책상(전용 좌석 유무, 높이, 개수), 촉지도(유무, 일치 여부) ,장애인 화장실(유무, 내부 시설, 입구 크기), 장애인 주차장, 위험 구조물 등을 점검하는데, 비장애인은 미처 인식하기 힘든 지점도 많다. 경사로가 있지만 너무 가팔라서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나, 점자유도블록이 있어도 중간중간 끊겨 있고 잘못된 방향으로 이어진 경우도 상당하다. 실제로 경희대 내 설치된 점자 유도블록을 따라가자 위험 구조물이 나와 그대로 부딪히게 되는 구조도 있었다. 바뀐 건물 구조가 적용되어있지 않은 촉지도나 휠체어 이용이 안 되는 일체형 의자처럼, 지나치듯 보기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하나하나 파고들었을 때에는 구색맞추기인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Q3. 흔히 ‘배리어프리’하면 이동권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장벽없는 경희대, 함께하는 회기동’은 이동권과 더불어 AAC를 도입하며 ‘의사소통의 배리어프리’를 실천했는데. 

  장애인뿐만 아니라 아동, 고령자, 외국인 등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의사소통을 돕는 모든 방법과 전략을 AAC라고 하는데, 그 중 우리 사업단은 그림판을 이용했다. 당장 언어로 소통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그림판에 물컵이 그려져 있는 상징을 가리킨다면 “물 한 잔 주세요.”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자신의 손을 사용할 수 없는 장애 유형을 가지고 있는 분의 경우에는 눈 응시판을 이용해 시선의 방향을 통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도 한다. 이렇듯 그림을 통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판이 우리가 보급한 AAC 의사소통판 책자에 포함되어있다. AAC 의사소통판은 단순히 획일화된 그림판을 배포하는 게 아니다. 우체국을 갔을 때 하는 말, 약국을 갔을 때 하는 말 등 설치장소마다 주로 하는 말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의사소통판을 이용하는 사업장의 성격에 따라 의사소통판을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우체국과 복사실의 경우에는 직접 새로운 판을 생성했는데, 실무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방문하는 사람들이 주로 무슨 말을 하는지 수집해야 했다. 인터뷰를 토대로 수집한 어휘를 그림으로 변환했고, 수집한 어휘들 중 가장 먼저 쓰일 말부터 우선순위에 따라 배치하였다. 예를 들면, “국내 택배 보낼게요.”→“박스 주세요.”→“테이프 주세요.”와 같은 식이다. 우리 사업단은 그림책 형식의 의사소통판을 보급했지만, 실제로 그림으로 클릭하면 음성이 나가게끔 하는 애플리케이션도 존재한다. 픽토그램이 그려진 팔찌 등 끼고 다니면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팔찌 등도 AAC 의사소통의 양식 중 하나다. 

Q4. AAC 의사소통판을 보급할 때 현장의 반응은 어땠는지. 

  AAC 의사소통판 제작 및 보급을 진행할 때 공공기관의 협조를 구하고 상점들에게 설득을 하고 하는 과정이 경사로나 점자 스티커나 유도블록 부착을 진행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든 작업이었다. AAC 사업이 잘 알려지지 않기도 했고 덜 가시적이라는 이유에서이다. ‘장애인’ 이미지를 떠올리면 흔히 신체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만 떠올리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의사소통에 관련한 장애를 경시하는 것이다. 현장에서도 “우리 상점에는 그런 사람 온 적 없다. 온다고 해도 혼자 오지 않고 도우미나 보호자가 함께 오기 때문에 필요 없다.”라며 냉대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보호자와 함께 동행하기 때문에 의사소통을 따로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본인의 의사를 자기자신이 표현하는 것은 하나의 권리이기 때문에 보호자가 있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소통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한 번은 공무원분에게 사업계획서를 보여드리며, 협조를 구하자 “이 돈으로 경사로를 더 설치하지 그러냐, AAC 의사소통판 설치는 본질적인 배리어프리가 아니다.”라고 말해 화가 난 적이 있었다. 배리어프리 안에서 보호되어야 할 장애인의 권리라면 이동권이나 의사소통권 둘 중 그 어느 것도 결코 우열을 가릴 수 없다. 단지 비장애인 본인에게 더 가시적이라는 이유라는 이유로 혹은 덜 가시적이라는 이유로 어떤 것은 우선시하고, 어떤 것은 차순위로 밀어낸다면 더더욱 그래서는 안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답답하고 화가 났지만 역설적으로 AAC 의사소통판 보급을 우리의 주요한 사업으로 선정하기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Q5. AAC 의사소통판의 도입으로 인해 어떤 변화가 찾아올 것으로 기대하는가.

  보통 사업 실행에 대한 평가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용했고, 얼마나 많은 것이 바뀌었냐에 주목하지만, AAC의 경우에는 인지도가 낮고 필요성을 공감하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의사소통판 보급 및 활용법 교육 그 자체로도 의미를 가진다. 선례로, 언어치료 AAC센터 ‘사람과 소통’에서는 영등포구, 성북구 등 지자체 주민센터 등에 AAC 의사소통판을 도입해왔다. 코로나 이후, 이 AAC 의사소통판이 해당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코로나 모니터링할 때 의사소통이 어려운 노인, 외국인, 장애인들이 자신을 증상을 설명하는 것에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당장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용하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AAC 의사소통판 도입 결과를 평가하는 것보다는 AAC 의사소통판이 확산이 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더불어, AAC 의사소통판을 도입함으로써 의사소통에 불편을 겪는 사람들이 자신의 공간이 확장되는 것에서도 의의가 있다. 이런 기대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AAC가 상용화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2013년도부터 AAC판 제작 및 보급을 해온 ‘사람과 소통’은 실제로 AAC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해 “물 주세요.”라고 했을 때 장난인 줄 아는 분이 굉장히 많다고 말했다. AAC가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 수준이 높아진다면 AAC를 통해 보다 편하게 의사소통이 가능해질 것이다.

Q6. 대학 및 공공기관은 재정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배리어프리 과제 실천을 미루곤 한다. 배리어프리 현황을 학교측에 전달하고 조율하는 과정은 어떠했는지.

  돈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주변에 배리어프리 사업을 하시려는 분이 예산 80만원 정도의 규모로 진행하고 싶다고 하셔서 어려울 것이라는 답변을 드린 적도 있다. 하지만 배리어프리 사업의 본질적인 한계는 재정문제보다 비장애인 편의로 맞추어져있는 인식에서 온다. 경희대 정경대학 건물에는 큰 턱이 있어 보행보조기구를 이용하는 학생들이 통행하기에 위험하다. 이를 시설과에 문의하자, 비올 때 물 빠지는 길이라는 답변만 들었다. 재정적인 부담을 고려해 그 턱을 반만 줄이자고 건의했지만 이마저도 조율되지 않았다. 문마다 강의실을 안내하는 점자판을 설치할 때도 디자인부서와의 갈등이 있었다. 법안에 따르면 휠체어에 앉아있을 때 손이 닿이는 높이에 점자판을 설치하는 것이 규격인데, 미관상 거슬린다며, 점차판에 색칠을 해달라는 둥, 아래쪽에 위치하면 예쁘지 않으니 원래 강의실 안내 위치인 높은 곳에 붙여달라는 둥 사업 진행을 허락받는 과정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처럼 열악한 학내 배리어프리 현황은 장애인들에게 대학진학 폭을 좁힌다. 함께 사업을 진행한 팀원 중 이동에 불편을 겪는 분의 증언에 따르면, 캠퍼스 내 경사로나 핸드레일의 유무 등 대학의 전반적인 배리어프리 정도에 따라서 대학의 선택지 자체가 달라진다고 한다. 간혹 장애인 학생의 수가 많지 않아 배리어프리 시설을 갖추지 않았다고 말하는 대학도 있으나 이는 선후관계가 뒤바뀐 말이다. 실상은 시설이 갖춰지지 않아서 장애 학생이 대학에 지원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Q7. 그렇다면 배리어프리 사업이 한계를 겪는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국가적 차원에서의 지원이나 법안 마련도 중요하지만, 배리어프리에 대한 인식이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한다. 현재 법안에도 장애인 등에 대한 편의법이나 시설과 관련된 규정을 명시하고 있지만,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이에 따라야 한다’, 즉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에는 이러한 시설을 설치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세부 시행규칙이 있어 적용을 완화하곤 한다. (장애인편의법 제15조, 제16조의2) 

대표적인 예시로, 신촌역과 충무로역의 사례를 들 수 있다. 두 역의 승강장 연단의 간격은 12cm로 법이 규제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폭이 넓다. 비장애인은 보행 시 주의하면 되는 문제지만, 장애인의 경우 휠체어가 연단 사이에 끼여 휠체어에서 추락하는 등 큰 사고를 유발한다. 이에 장애계에서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권리 구제, 차별 구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장애인 차별금지법의 제4조 제3항 제1호에 ‘현저한 사정’과 ‘정당한 사유’가 있을 경우 장애인차별이 발생하더라도 차별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근거로 서울교통공사의 편을 들었다. 이는 결코 합리적이라고 할 수 없는 주장이다. 만약에 비장애인들이 다니기 힘든 지하철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돈이나 시간이 얼마나 들든간에 바로 보수를 했을 것이다. 수어통역도 마찬가지다. 방송국에서 수어통역을 몇 년 간 미뤄왔지만, 단 1시간이라도 비장애인이 알아들을 수 없는 방식으로 방송을 한다면 당장 폐지 논의가 들어갔을 것이다. ‘정당한 이유’라는 문구를 들이밀며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일상에서의 위험을 감수하게끔 하는 등 배리어프리가 잘 시행되지 않는 원인은 인식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다. 

Q8. 배리어프리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먼저 장애 인권에 대한 미온적인 태도를 넘어서, 배리어프리는 누군가의 삶이 달린 문제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애 의제를 앞장서서 반대하지도 않고, 정치적인 이슈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장애 의제를 ‘착한 의제’정도로만 인식하고 배리어프리를 ‘배려’ 차원으로 해석하며 시혜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이를 탈피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용하는 시설이나 누리고 있는 환경, 법과 제도에 대한 의심이 필요하다. 비장애인의 시각에서 법과 제도와 모든 구조물들이 재단되어 있기 때문에 비장애인이 ‘장벽’들을 파악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사회가 누구의 틀을 중심으로 재편되어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이 틀로부터 배제당한 사람이 얼마나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에 대한 공감 없이는 시혜적인 태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가 “장애인들에게 계단은 계단이 아니다”라고 말한 게 생각난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공간의 차이지만, 장애인들에게는 남은 생을 결정하고 삶과 죽음을 가르는 문제인 것이다. 이들에게 건물은 건물이 아니고, 길은 길이 아니다. 그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Q9. 지금까지 배리어프리는 이동권 차원에서의 논의가 많았다. 그 밖에 주목해야 할 장애인권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다면.

  우선, 장애 운동에서 이동권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상당히 높은 건 사실이다. 국내에서 장애 인권 운동이 크게 시작된 계기가 2001년 오이도역 휠체어 리프트 추락 사망사고이기 때문에 이동권 운동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맞지만, 이는 결코 장애인권의 전부라고 볼 수 없다. 젠더 문제처럼 비장애인에게도 가해지는 차별이 중첩되면서 장애인권 문제가 더 심화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노동권의 경우에는 비장애인에서 장애인의 노동권으로 옮겨가면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비장애인이 최저임금을 더 올려야 된다고 논의하고 있을 때 장애인의 경우에는 아예 최저임금이 적용조차 되지 않고있고, 비장애인이 산업재해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을 때, 장애인의 경우에는 산업재해를 산정 받는 과정에서부터 어려움을 겪고,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산업재해 산정기록에서는 아예 누락되고 있다. 배리어프리는 말 그대로 신체 부자유자와 같이 사회가 비정상적이라고 내몬 이들에 대한 제도적인, 의식적인 장벽을 제거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길을 길답게, 교육을 교육답게, 노동을 노동답게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차원에서의 논의가 필요하다.

Q10.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침묵의 대가〉(마르틴 니묄러) 라는 시가 있다. 다른 사람의 억압에 침묵한다면 결국 자신의 억압에 대해서도 목소리 내줄 사람 하나 없을 거라는 내용이다. 노화로 인해, 사고로 인해 언제든지 내가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과도 맞닿아 있지만, 지금 당장 비장애인이라고 해도 누군가의 자유가 침해되는 세상에서는 자신의 자유가 완전해질 수 없다. 모두가 자유로워 질 수 있도록, 정상성의 기준으로 재편되어 있는 자신이 삶의 기반에 대해 고민을 해봤으면 좋겠다.

 

  경희대학교 배리어프리 사업단 ‘장벽없는 경희대, 함께하는 회기동’ 이외에도 학내 배리어프리를 실천하자는 대학생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때때로 포착되고 있다. 대학 내 배리어프리 현황이 처참한 수준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기도 하다. 이는 대학사회에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주변에서 손쉽게 장애인 주차장이나 장애인화장실을 찾아볼 수는 있지만, 혹시 이런 시설이 방치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공간이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곳인지에 대한 고찰은 드물다. 사회 전반에 깔린 배리어프리에 대한 미온적인 태도가 대학에서 하나의 증상으로 나타나는 셈이다. 

 

  내 주변에서 장애인을 흔히 볼 수 없다’라거나 ‘장애인은 보호자와 함께 다니면 되지 않느냐’는 이유로 비장애인들은 장애인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계단이 너무 많다고 불평하며 오르던 교양동이, 우리가 아무 자각 없이 다니는 길과 건물이 누군가에게는 단단하게 앞을 가로막은 벽처럼 다가와 삶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에서 누군가는 완전히 소외되어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배리어프리를 단순히 배려 차원으로 해석하지 않고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끝)

출처 : 대학알리

해당 기사링크 : https://www.univalli.com/news/article.html?no=23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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