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캠 장애인 보행환경 점검
2017년 본지는 ‘쉽게 걸었던 그 길, 누군가에게는 낭떠러지였다’기사를 통해 장애학생들이 학교에서 보행할 때 겪는 어려움을 알렸다. 2022년, 학교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본교 서울캠퍼스 안 팎의 장애인의 보행환경을 5년 만에 다시 살폈다.안암역 음향신호기 4월 설치 약속
규정과 다른 점자블록에 안전 우려
코로나 이후 2년 만에 대면 수업이 진행되며 캠퍼스는 청춘의 활기로 가득 찼다. 하지만 학교를 오가는 발걸음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이들이 있다. 장애인들의 이동을 가로막는 보행환경의 ‘문턱’은 캠퍼스 안팎으로 사방에 있었다.
# 캠퍼스 안:
지름길 장벽에 불가피한 에움길로
인문사회계 캠퍼스의 가파른 언덕길과 계단은 비장애인에게도 힘겹지만, 휠체어를 탄 장애인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장벽이다. 부상으로 한동안 휠체어를 이용했다는 학생 A씨는 백주년기념관과 법학관을 잇는 언덕길의 가파른 경사 때문에 우당교양관에서 운초우선교육관으로 이동할 때 정문 쪽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A씨는 “평소 이용하던 길은 볼라드(차량 진입 방지용 말뚝)나 계단 등으로 막혀있어 지나갈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며 “가파른 경사길을 피해 돌아가면 다른 친구들보다 몇 배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고 전했다. 비장애인 학생들이 이용하는 본관 뒤쪽 ‘다람쥐 길’도 계단으로만 이어져 있어 휠체어 진입이 불가하다.
이 밖에도 교내 곳곳에는 장애인들의 통행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있었다. 코로나19 방역수칙으로 교내 건물 상당수가 출입구 이용이 제한돼 휠체어 이용자들에게 어려움이 따랐다.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를 자주 이용하는 허해진(문과대 사학18) 씨는 “백주년기념관 앞에 중앙광장 지하로 통하는 승강기가 설치된 출입구가 있었지만 코로나 이후 폐쇄되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계단을 통해 중앙광장 지하로 내려가는 것이 불편하다”고 설명했다. 허 씨는 휠체어를 사용할 수 없을 때 어렵게나마 계단을 이용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장애인은 더 막막할 수밖에 없다.
각종 설치물이 휠체어 진입을 가로막는 곳도 있었다. 고려대역 1번 출구로 나와 캠퍼스로 진입하는 경사로는 석재조형물로 막혀있어 비장애인도 몸을 틀어야 통과할 수 있는 간격만 남아있다.
# 캠퍼스 안 고려대역 1번 출구 앞에 캠퍼스로 진입하는 경사로가 석재조형물로 막혀 있다.
이공계 캠퍼스도 문제는 마찬가지였다. 하나스퀘어에서 과학도서관으로 향하는 횡단보도의 보행로 진입 구간에는 위치를 잘못 잡은 원형 화단이 휠체어 진입을 막고 있었다. 보행로와 차도의 경계에 세워진 높은 연석도 휠체어 이용자의 안전을 위협했다. 본교 건축팀 직원 조아름 씨는 “책임자로서 담당 부서에 반드시 전달해 조치하겠다”고 답했다.
# 캠퍼스 안 하나스퀘어에서 과학도서관으로 향하는 횡단보도의 보행로 진입 구간에 원형 화단이 휠체어 진입을 막고 있다. 본교 건축팀은 “담당 부서에 전달해 조치하겠다”고 했다
캠퍼스 내 책임주체는 학교
학생사회와 학교 측은 장애인들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각자의 역할에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서울총학 인권연대국(국장=명세은)은 학교 측에 건물 승강기와 경사로 설치를 요구하고자 14일까지 수요 조사를 진행하는 등 장애학생 보행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장애인권위원회(위원장=김인서, 장인위)는 장애인대학생네트워크(장대넷)와 함께 ‘통학길 배리어프리 조사’를 진행한다. ‘통학길 배리어프리 조사’는 장애인재활협회와의 협력사업으로, 대학마다 통학길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공론화함으로써 배리어프리한 학내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본교 장애학생지원센터(센터장=김윤경 교수)는 2019년부터 ‘교통약자이동지원 차량 서비스’를 진행해 교내에서 카니발 2대를 운행하고 있다. 센터 관계자는 “과거부터 장애학생들이 이동권 보장을 위해 학교 안에서도 장애인콜택시 같은 차량 서비스를 지원해달라고 꾸준히 건의한 결과”라고 말했다.
캠퍼스 안에서 확인된 장애인 보행환경 문제의 책임 및 해결 주체는 학교였다. 시설을 설치할 땐 학교 측에서 성북구청과 절차상 논의해야 하는 부분도 있어 해결이 더딜 수 있지만, 적어도 캠퍼스 안에서 발생한 불편을 해결하는 것은 학교가 책임지고 진행할 수 있었다. 장인위가 진행하는 ‘통학길 배리어프리 조사’ 결과가 나오면 학교 측의 적극적인 검토와 피드백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안암역 지하철:
휠체어 세우는 비상용 개찰구
승강기 내리자 비탈길 경사 위협
장애인 보행환경에 있어 더 큰 문제는 캠퍼스 밖에 있었다.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6호선 안암역. 이곳에는 교통약자를 위한 자동개폐형 개찰구가 없다. 휠체어 이용 승객은 비상용 게이트에서 벨을 눌러 호출된 역무원이 문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장인위 배리어프리 지도 제작에 참여했던 오상엽(문과대 사회17) 씨는 “본교 지체장애인들은 안암역을 비롯해 지하철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며 “지하 승강장으로의 통행을 비롯해 개찰구에서 역무원을 호출하고 출입하는 과정이 번거롭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울교통공사에서 지하철역 개찰구 설치를 담당하는 전자과 담당자는 “매년 교통약자 개찰구를 설치하겠다는 계획서를 제출하지만, 회사 내에서 다른 사업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려 예산이 편성되지 않아 설치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06년부터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시행규칙에 따라 역 내에 교통약자를 위한 자동개폐형 개찰구 설치가 의무화됐지만 우리나라는 소급입법이 적용되지 않아 안암역에는 설치할 의무가 없다.
한국환경건축연구원 배융호 책임연구위원은 “서울교통공사에서 예산을 편성해 교통약자용 개찰구를 설치하기로 계획하면 되겠지만, 법이 제정된 시점부터 적용되기 때문에 안암역에 대한 법적 강제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역사 내 승강기는 지상에서 안암역 1번 출구와 이어지지만, 이곳 보행로의 경사가 매우 가팔라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은 이동하기 힘들다. 허해진 씨는 “이곳의 경사 때문에 휠체어에서 넘어지기 쉬웠다”고 말했다. 오상엽 씨도 “장애학생들은 길이 너무 가팔라 그쪽으로는 다니지 않는다”며 “지하철 승강기는 주변의 보행환경을 고려해 설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행로의 폭이나 *횡단경사, 보행로와 차도의 높이 차이 역시도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보행을 위해 특히나 중요하게 고려할 요소다.
# 안암역 지하철 안암역에는 교통약자용 자동개패형 개찰구가 설치돼 있지 않아, 휠체어 이용 승객은 비상용 게이트에서 벨을 눌러 역무원을 호출해야 한다.
# 시각장애인 음향신호기:
보행자 많은 안암역엔 미설치
지상으로 올라오자,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전시설에서도 미흡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시각장애인용 음향신호기는 리모컨이나 버튼으로 제어하는 보행신호 안내장치다. 시각장애인의 안전한 횡단을 위해 필수지만, 안암역 사거리와 스타벅스 안암역점 앞 횡단보도 모두 음향신호기가 없다. 2021년 개정된 경찰청의 ‘시각장애인용 음향신호기 설치 규격서’에는 시각장애인 밀집거주지역이나 직장밀집지역 등 시각장애인들이 많이 다니는 장소에 먼저 설치하도록 한다. 경찰청 교통국 관계자는 “시각장애인이 많이 다니는 보행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워 통상적으로 보행자가 많은 횡단보도 신호등에 음향신호기를 설치하고 있다”고 전했다.
캠퍼스 주변 보행자가 많은 안암역 사거리에는 왜 음향신호기가 없을까. 안암동의 음향 신호기 설치를 담당하는 서울시 북부도로사업소 관계자는 “사안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며 “4월까지 안암역 사거리에 음향신호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 시각장애인 음향 신호기 안암역 사거리 신호등에는 시각장애인용 음향신호기 대신 ‘원룸 세입자 모집 전단지’가 붙어있다.
# 횡단보도 점자블록:
찻길 향하는 위험한 배치
횡단보도 앞에 설치되는 점자블록은 시각장애인이 음향신호기 버튼을 찾기 편하도록 음향신호기와 가깝게 설치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음향신호기 버튼 근처 점자블록 설치에 대해 별도의 규정이 없는 상황이다. 고대앞사거리 등에서 점자블록이 음향신호기와 먼 거리에 설치돼 실효성이 떨어지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배융호 책임연구위원은 “시각장애인들이 음향신호기의 버튼 위치를 찾지 못하는 것을 매우 힘들어한다”며 “음향신호기가 설치됐더라도 점자블록이 음향신호기까지 연결해주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횡단보도에서 사선으로 설치된 점자 보도블록도 시각장애인이 걷는 중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 요소다. ‘멈춤’을 뜻하는 점형 블록은 횡단보도에서 보행 방향과 평행하게 배치돼야 한다. 하지만 고대 앞사거리와 안암병원 앞 횡단보도 등 캠퍼스 밖의 횡단보도에선 점형 블록이 차도로 향하도록 비스듬하게 배치된 경우가 많았다. 서울시가 지난해 배포한 ‘보도공사 설계시공 매뉴얼’에는 ‘시각장애인이 방향을 인지할 수 있도록 점형블록 설치해야 한다’고 적혀있다. 성북구청 도로과 관계자는 “한정된 예산 탓에 일괄적인 정비는 어렵겠지만,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시청각장애인 권리보장 및 복지진흥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한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은 “정책 실무자들이 점자블록이 어떤 필요에 따라 설치되는지 등에 대해 시각장애인 당사자의 관점과 인식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며 “배리어프리한 환경을 구축하려면 당사자들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보수와 안전관리를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횡단보도 점자블록 고대앞사거리 횡단보도의 모습. 점자블록과 음향신호기의 거리가 멀어 시각장애인은 음향신호기를 찾는데 어려움이 있다.
# 횡단보도 점자블록 안암병원 앞 횡단보도에 점형 점자블록이 비뚤어진 채 차도를 향해 배치돼 있다. 점형블록은 횡단보도 앞에서 보행방향과 평행하게 배치돼야 한다.
‘모두의 일’로 인식해야
취재 과정에서 각 시설물의 담당 기관에 연락을 취한 뒤 돌아온 답변은 고무적이었다. 구체적인 불편 사례를 전달했을 때 각 기관은 시정 의지를 내비쳤다. 물론 이같이 개별적인 민원 신고로는 ‘완전히’ 배리어프리한 환경을 구축하기는 어렵다. 전문가들은 보행환경의 장벽을 허무는 일이 단지 장애인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를 위한 일이라는 인식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예지 의원은 “우리 모두 유아차를 타는 아이에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된다는 점에서, 장벽 없는 보행환경은 장애인에 국한된 사안이 아니라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융호 위원은 “장애인 이동권은 복지의 차원이 아니라 인권의 차원에서 논의돼야 한다”며 “법적 기준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가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고 사안을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횡단경사: 도로의 가로 방향 기울기
출처 : 고대신문
해당 기사링크 : http://www.kunews.ac.kr/news/articleView.html?idxno=33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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