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철아 나 왔어.” 2022년 2월21일 화요일 오후, 인터뷰 작가 문세경씨가 동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병철 소장(53)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어 세경이 왔구나. 너 키 많이 컸다.” 희미하게 윤곽만 볼 수 있는 시력에도 40여년 만에 만난 초등학교 동창이 낯설지 않았다.
둘은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 ‘짝꿍’이었다. 5학년 때 세경씨가 전학을 갔으니 다시 만난 게 42년 만이다. 연락이 닿았던 건 2016년, 오 소장이 세경씨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같은 초등학교 같은 반”이라고 했다. 세경씨는 오 소장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가보다 했다. 올해 초 6년 만에 다시 메일이 왔다.
오 소장은 국립장애인도서관에서 세경씨가 쓴 책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를 읽었다고 했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만나 쓴 인터뷰집이다. 세경씨에게 애착이 큰 책이다. 책을 읽었다는 친구의 연락이 반갑게 느껴졌다. 카카오톡으로 대화가 이어졌다. “조만간 한번 보자.” 42년 만이다.
두 사람은 잠시 센터 안에 앉아 이야기하다 밖으로 나왔다. “배 고프다.” 세경씨가 말했다.
“뭘 좋아해? 뭐 먹고 싶니?” 오 소장은 먹을 걸 사주겠다고 했다.
“술 좋아하는데?” 세경씨가 웃으며 말했다.
오 소장은 술을 한잔도 못 마신다. 그래도 술을 사주겠다고 했다. 주위엔 마땅한 식당이 없었다. 세경씨는 혼자 낮술 마시기는 싫었다. 그냥 근처의 빵집에 갔다.
세경씨는 샌드위치를 골랐다. 오 소장은 단팥빵에 핫초코. 멀리서 왔다며 오 소장이 계산을 했다.
“어떻게 지냈어?” 숏컷 머리에 안경을 낀 세경씨는 목소리가 크다. 청각장애인인 그는 정확하게 듣기 위해 입모양을 보고 대화한다. 오 소장도 청력이 좋지 않다. 보청기를 낀 귀를 귀울였다.
“고등학교 때 시력이 나빠져서 휴학을 했는데, 다시 학교에 가니까 퇴학을 당한 상태더라구.”
오 소장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이야기했다. 그는 조용하고 차분하다. 검정고시를 보고 방송통신대를 나와 고학으로 성공회대에서 석사학위까지 땄다. “학력 세탁 좀 했어.” 오 소장의 너스레를 보고 세경씨는 떠나갈 듯 웃었다. “너 말 참 재밌게 잘한다.”
대화가 이어졌다. 기억도 조금씩 돌아왔다. “너가 초등학교 때 서기도 했잖아.” 오 소장이 말했다. 잘 기억나지 않던 오 소장의 모습도 희미하게 떠올랐다. “그때도 나이가 들어 보였는데 직접 보니까 기억이 좀 나더라구요.” 세경씨가 그날 만남을 떠올렸다. 미소가 번졌다.
짧은 만남 동안 많은 이야기를 했다. 42년을 떨어져 있었지만 둘은 장애인 권리 옹호 활동을 오랫동안 해 왔다. 한 다리만 건너면 서로 아는 사람도 있었다.
“장판(장애인 운동판)에서 같이 활동하고 있을 줄은 몰랐네.”
다시 만날 날이 앞으로 많겠지. 세경씨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세상과 소통하게 해준 컴퓨터
42년의 세월 동안 오 소장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다. 고교 시절 갑작스레 시력이 약해졌다. 그 뒤 별다른 치료는 받지 못했다. 시각장애인 1급 판정을 받았다. 오 소장의 세계는 가운데가 보이지 않는 세계다. ‘U자’ 형태로 양옆과 아래쪽만 보인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아주 짙은 안개같다”고 말했다. 하루하루는 안갯속을 더듬는 삶이었다.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안마사를 직업으로 선택한다. 오 소장은 컴퓨터를 택했다. 몸이 약해 안마가 힘들었다고 했다. 화면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은 컴퓨터를 이용하기 쉽지 않다. 화면을 음성으로 변환하는 프로그램이 지팡이였다. 컴퓨터를 ‘들으면서’ 배웠다. 어렵게 컴퓨터를 배워 시각장애인을 위한 컴퓨터 강사로 일했다. 컴퓨터는 오씨의 세계를 넓혔다.
2008년 석사 학위를 땄고 2009년에는 사회복지사 1급 자격도 취득했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송파구의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했다. 2015년 동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설립했다. 장애인 당사자가 스스로 설립해 지역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시각장애인들에 조금 더 집중하고 싶어 직접 센터를 차렸다.
배우고 공부하는 일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장애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걸어가는 하나의 과정이에요.” 그는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고교 시절 학업이 중단됐다. 그 아쉬움이 그를 늘 도전하고 행동하게 만들었다. “공부는 시력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하는 거에요. 공부는 시야를 넓혀주고 자신을 완성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오 소장은 매일 오전 9시30분이면 사무실에 도착한다. 서울 지하철 7호선 중곡역 2번 출구 앞. 점자 블럭을 따라 100m쯤 걸으면 인도가 끊기고 검은 아스팔트 도로가 나온다. 오토바이나 자동차를 요령껏 피해 100m쯤 걸어야 사무실이다. 오 소장은 매일 지하철을 타고 이 길을 걸었다.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 이어폰을 꽂고 일을 시작한다. 매일 늦은 시간까지 일했다. 오래된 2G 핸드폰을 썼기 때문에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도 컴퓨터 앞에서만 가능했다. 소리를 들려주는 컴퓨터는 오씨가 세상과 만나는 통로다.
동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오병철 소장의 사무실 책상. 그가 사용하던 컴퓨터를 제외한 다른 물품들은 대부분 정리됐다. 전현진 기자
■물 같은 사람, 존중받을 만한 사람
컴퓨터를 벗어나 그는 세상으로 더 나갔다. 지하철에 있는 장애인 화장실이 실제 장애인들에게 얼마나 불편한지, 코로나19 확산 속 장애인들이 어떻게 소외되고 있는지, 점자블록이 갑자기 사라진 곳에서 시각장애인은 어떤 고통을 겪는지 이야기했다. 기자회견에 나서고, 인권위에 진정서를 냈다. 방송에 출연해 당당히 목소리를 내거나 직접 동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도 올렸다. 장애인 운동계에서 조금은 얼굴이 알려졌다.
그가 오래 전 사용하던 트위터 계정에서 오 소장은 자신을 “서울에서 살고있는 장애인복지운동 활동가, 시각장애인컴퓨터 강사, 기독교인, 사람을 세우는 사람 세상을 채우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함께 활동하던 이들은 그를 신뢰했다.
권경자 동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팀장은 “물 같은 분”이라고 했다. 과묵한 것 같으면서도 한 번 신뢰한 이들을 한없이 받아들이고 품어준다는 뜻이다. 주정수 동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은 “매사에 긍정적이고 봉사하려는 마음이 강했다”고 했다.
주 국장은 2015년 장애인 인권 교육을 수강하다 만났다. 오 소장이 동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시작한 뒤 함께 일했다. 오 소장은 중후한 외모 덕에 실제 나이보다 더 들어보였다. 주 국장은 “말을 함부로 한 적이 없었다. 항상 부를 때는 ‘주 선생님’이나 ‘주 국장님’하면서 꼭 높여 불렀다”고 했다.
장애벽허물기 등 단체 활동가들이 2020년 2월4일 오전 서울 청와대 앞에서 한국수화언어어법 제정 4주년 맞이 수어와 농인의 복지정책 개선 요구서 전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오른쪽 첫 번째가 오병철 소장이다. / 김기남 기자
38년 가량 만년필 제조 회사에서 일했던 주 국장은 “사회 생활을 많이 해봤지만, 오 소장님은 서로 존중하면서 때로는 형제처럼 의지하고 함께 일할 수 있는 분”이었다며 “존중 받을 만한 인물”이라고 했다.
주 국장에게 오 소장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선 돈을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근검절약이 몸에 뱄다. 사무실 집기류를 구입 때 꼭 인터넷 최저가 물품을 찾았고 인근에 폐쇄된 다른 사무실이나 후원 물품이 있으면 직접 찾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새로 산 옷도, 값비싼 음식도 볼 수 없는 일이었다. 평소에는 식사도 제대로 안 챙겨 먹으면서 돈을 아꼈다.
주변 사람들에게 밥을 사줄 땐 아끼지 않았다. 센터 직원들이 야근을 하면 치킨도 시키고 피자도 시켰다. 장애인차별추진연대 활동가 박승규씨도 그런 모습을 기억했다. 오 소장은 장애인들이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인권 문제들을 소개하는 ‘장애인 인권 오 소장이 간다’라는 유튜브 방송을 기획했는데, 여기에 승규씨가 함께 출연했었다. “유튜브 촬영하러 오 소장님을 찾아 가면, 항상 웃으면서 피자를 2~3판씩 아낌 없이 시켜주던 모습이 기억에 나요. 남겨도 된다고 많이 먹으라면서.”
승규씨는 “어떤 사람에게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맛있는 음식을 나누면서 교류하는 시간들이 인간적인 순간들로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초보 활동가 시절 조심스럽게 찬조 발언을 요청하는 그에게 걱정 말라며 답을 해주던 일, 농성장에 함께 앉아 이야기하며 격려해주던 일도 떠오른다. 승규씨는 “장애 운동이라는 활동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며 “굉장히 인간적인 분”이라고 했다.
■“의지하며 많은 일 할 수 있었는데…”
늘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다. 헤어짐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오 소장의 부모님이 코로나19에 확진됐다. 전날까지 큰 증상이 없었다. 자가진단키트에선‘음성’이 나왔다. 불편한 몸을 끌고 PCR검사를 받으러 갔다가 그냥 돌아온 게 여러 번. 선별진료소를 오가는 일은 시각장애인에겐 쉽지 않았다. 오 소장은 2월22일 코로나19 PCR검사를 받으러 갔다가 길에서 쓰러졌다. 행인의 신고로 병원에 옮겨졌지만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2022년 2월 24일 오병철 동서울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 소장의 장례식장, 문세경씨 제공
서울 강동성심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빈소에서 동료 장애인 활동가들이 상주 역할을 했다. 유족들이 코로나19에 확진돼 격리되면서 빈소에 오지 못했다. 활동가들은 23일 오후 추모제를 열었다. 추모제에서 오 소장의 여동생은 영상통화를 통해 조문객들에게 인사할 수밖에 없었다. 25일 발인을 마쳤고, 장지는 경기 여주시 광성교회 공원묘지로 정해졌다.
오 소장의 죽음은 페이스북을 통해서 활동가들에게 알려졌다. 사망 전날 만났던 세경씨도 그렇게 죽음을 접했다. 42년만에 만나 다음을 기약했던 짧은 대화는 마지막 추억이 됐다. 작가인 세경씨는 친구와의 짧은 만남을 기록하기 위해 오 소장의 활동을 찾았다. 장애인 권리 향상을 위해 쌓아온 크고 작은 활동들이 눈에 들어왔다. 재밌게 이야기하던 친구는 자신의 자리에서 의미있는 삶을 쌓아왔다는 걸 알게됐다.
“사과하고 싶어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묻자 세경씨는 말했다.
“병철이에게 처음 연락이 왔을 때 관심을 갖고 바로 만났다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어요. 그랬으면 같이 활동하며 의미 있는 일을 많이 했을 텐데. 서로 의지하며 그동안의 공백도 메꿀 수 있었을 텐데 말이에요.”
세경씨는 오 소장과 만난 짧았던 하루를 웃으며 이야기했다. 사진 한 장 남기지 못 했다. “또 만날 수 있을 줄 알았죠.” 단팥빵과 핫초코, 샌드위치의 기억만 남았다. ‘다음’과 ‘또다시’는 42년전 ‘짝꿍’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세경씨의 미소가 희미해졌다.
[더 부고]는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지만 의미 있었던 인물의 삶을 기록한다. 오병철 소장의 삶을 이야기해준 이들의 이름은 실명으로 표기했다. 오 소장이 생전에 한 다양한 인터뷰와 기자회견 당시 한 발언 등을 참고했다. 오 소장의 장례 후 며칠 지나지 않아 그의 아버지도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나 유가족들과는 인터뷰하지 못했다.
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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