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로 일상을 바꾸는 생활인들① 이시완 엘비에스테크(LBS tech) 대표
코로나19 상황과 기후위기, 4차 산업혁명과 노동위기 등 사회 전 영역에서 많은 것 달라지고 있는 '전환의 시대'. 우리는 저성장과 고용불안, 저출산·고령화 등의 인구구조 변화, 사회적 격차와 불평등의 확대라는 구조적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사회적경제에서 사회혁신, 사회적 가치, ESG의 사회까지 '사회적인 것(the social)'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이유는 경제적 성장과 민주화의 성숙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많은 난제(wicked problem)를 누가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 때문일 것이다. '라이프인'과 한겨레 '서울&'은 생활 속 난제를 지나치지 않고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진정성에 기술을 접목해 기존과 다른 차원의 해결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생활인들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서울 시내 곳곳에는 버스 노선을 음성으로 안내하는 정류장이 있다.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을 위한 시스템이다. 하지만 여러 대가 한꺼번에 도착하면 시각장애인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승차하려는 버스를 찾기 힘들다.
'이동권'은 누가 언제나 원하는 곳에 자유롭게 갈 수 있는 권리다. 그래서 누구나 소외당하지 않고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장애인에게 이동권은 '보장된 권리'가 아닌 스스로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꼭 해결돼야만 하는 문제이다. 그동안 시각장애인에 대한 많은 연구가 진행됐지만, 이동을 위해 사용되는 수단은 흰색지팡이 '케인'(Cane)뿐이다. 대다수 시각장애인은 아직도 케인을 통해 점자블록을 읽으면서 걷는다.
"개발자로서 사촌 동생에게 정말 쓸모 있는 뭔가를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성장기에 갑작스럽게 시력 저하가 된 동생이 스마트폰을 정말 잘 다루는데도, 위치를 공유하거나 위치에 관련된 정보를 찾는 것을 매우 어려워했어요."
이시완 엘비에스테크(LBS tech) 대표는 사촌 동생 지인이 택시를 타고 늘 내리던 곳에서 10m 정도 떨어진 곳에 내려져, 집까지 5분이면 갈 거리를 몇 시간 동안 헤맸던 이야기를 듣게 됐다. 시각장애인의 가장 큰 불편사항인 ‘위치 찾기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점자가 아닌 접근성을 높이는 솔루션 개발에 나섰다.
▲ 서대문구 충현동 엘비에스 사무실에서 이시완 대표가 플랫폼 '지아이'에서 사용되는 보행로 정보 수집방법과 자율주행 휠체어 대한 설명을 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라이프인
시각장애인이라고 하면 대부분이 앞을 완전히 보지 못하는 전맹을 떠올린다. 하지만 국내 전체 시각장애인 중 84%가 어느 정도 시력을 가진 저시력 장애인이다. 그 가운데 후천적 발병이 91%로 점자 해독이 가능한 시각장애인은 불과 6% 미만이다. 이마저도 국내에서 사용되는 점자는 2종류로 나뉘어 있으며, 촉각으로 인지해야 하는 점자 특성상 배우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용 제품과 서비스는 하드웨어 또는 점자 기반이다.
드라마 <스타트업>에서 주인공이 근무하던 삼산텍의 실제 모델이기도 한 엘비에스테크는 사람을 향하는 따뜻한 기술력으로 주목받는 기업이다. 주력 앱과 플랫폼인 '지아이'(G-EYE)는 시각장애인·지체장애인·고령자 등 교통약자를 위한 보행 내비게이션과 비대면 주문·결제 서비스 등 인공지능(AI)을 바탕으로 위치기반 생활편의 기능을 제공한다.
▲ 수집된 보행로 정보는 AI기술로 분류된다. ⓒ라이프인
'지아이'는 스마트폰으로 반경 3㎞ 내 보행로에 위험물이나 신호등을 음성으로 알려주고 건물의 출입구까지 안내한다. 만약 시각장애인이 '지아이'를 통해 음료를 주문하면 카페까지의 경로가 전송되고, 점포에서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주문이 접수된다. 결제는 지역화폐로 거래할 수 있게 시스템화해 소상공인을 위한 사회적 공급망관리(Social SCM)의 표준도 만들었다.
현재 강서구 마곡동, 성남시, 세종시에서 스마트시티사업이 진행됐다. 코로나 팬데믹은 디지털 경제와 기술 중심 불평등의 증가를 가속했지만, 엘비에스테크가 추진한 스마트시티사업은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개선했고 시스템을 사용하는 업장의 평균 매출도 27% 증가했다. 사회의 꼭 필요한 일을 비즈니스로도 증명한 것이다.
시각장애인 관련 사업은 돈이 안 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지만, 이 대표는 확신이 있었다. 오히려 아무도 오랫동안 하지 못했다는 점, 신뢰를 얻지 못한 서비스는 1~2년 안에 사라졌다는 것에 주목했고, 현장에서 답을 찾았다.
"기술을 설계하고 테스트할 때 실제로 사용할 분이 직접 참여해요.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에서 많이 배우고 도움을 받기 때문에 '테스트하러 왔습니다'가 아니라 '컨설팅 받으러 왔습니다'라고 인사드립니다." 이 대표와 직원들은 일주일에 한 번은 시각장애인들을 만나 테스트를 진행한다. 정확한 기술 개발을 위해서는 실제 그 지역 시각장애인을 섭외해 테스트하는 단계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 보행로 데이터 수집장치 ⓒ라이프인
엘비에스테크의 플랫폼을 사용해 본 시각장애인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전국 단위에서 서비스를 제공해달라는 요청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으며, 해외에서도 반응이 뜨겁다. 베트남 호찌민에서는 음식점, 카페에서만 운영되던 서비스가 미용실과 같은 생활 전반의 서비스로 확장됐다. 지난 2월 28일부터 3월 3일까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는 이 대표가 직접 참석해, 스페인 시각장애인협회, 바르셀로나시에 신호등 신호를 위치기반으로 알려주는 시스템에 대해 서비스를 제안했고, 현재 진행을 검토하고 있다.
가장 느린 사람의 속도가 곧 그 사회의 속도다. 그리고 기술은 느린 사람의 속도를 보조해 줄 수 있다. 에이블 테크(able tech)는 장애인, 노약자처럼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편하게 기술을 이용하도록 돕는다. 그리고 결국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의 삶에 도움을 준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타자기'부터 팔 장애가 있는 사람을 위한 '전동칫솔', 휠체어로 계단을 올라가기 위해 만들어진 '세그웨이'까지 다양하다.
엘비에스테크의 기술도 장애인을 위한 것이었지만, 서비스를 개발하며 수집된 보행로 정보와 개발 기술은 배달로봇을 만드는 데 사용될 예정이다.
이 대표는 "장애인이 겪는 이동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싶다"고 했다. 원하는 곳으로 이동해서 필요한 서비스를 받는 평범한 일상을 얻는 것 말이다. 이를 위해 장애인이 직접 운전할 수 있는 공유 자동차 플랫폼을 구상하고 있다. 실제 휠체어를 탄 채로 운전할 수 있는 디자인유트러스사의 '캥거루'라는 자동차도 있다.
엘비에스테크가 길을 안내해 주고 자율주행 휠체어, 결제시스템까지 갖췄으니 조만간 건물의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된 장애인 전용 공유 자동차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이렇게 장애인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기술을 만들기 위해 힘쓰고 있는 이 대표는 "사회 문제가 복잡다단해질수록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며, 현장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현장을 찾고 당사자들을 만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처 : 라이프인
해당 기사링크 : http://www.lifein.news/news/articleView.html?idxno=13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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