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빌리티(mobility). 최근 몇 년간 많이 들려오는 단어입니다. 한국어로 해석해보자면, ‘이동성’ 정도가 적당하겠네요. 그런데 말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자동차도 모빌리티, 킥보드도 모빌리티, 심지어 드론도 모빌리티라고 말합니다. 대체 기준이 뭘까요? 무슨 뜻인지조차 헷갈리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몇 년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스타 벤처 중 상당수는 모빌리티 기업이었습니다.
‘마치 유행어처럼 여기저기에서 쓰이고 있지만 도대체 무슨 뜻인지, 어디부터 어디까지 모빌리티라고 부르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라는 분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모빌리티 인사이트]를 통해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다양한 모빌리티 기업과 서비스를 소개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차량호출 서비스부터 아직은 낯선 ‘마이크로 모빌리티’, ‘MaaS’, 모빌리티 산업의 꽃이라는 ‘자율 주행’ 등 모빌리티 인사이트가 국내외 사례 취합 분석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하나씩 알려 드립니다.
일상 속 나만의 길라잡이, 내비게이션의 범용적 역할
지난 2022년 4월 18일,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약 2년 1개월만에 본격 해제했습니다. 어느덧 2개월이나 지났네요. 부쩍 지인들의 문자 메시지와 전화가 늘어난 것을 보며, 일상회복을 실감할 수 있는 요즘입니다. 지난주에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지인들과 많이 만나서 육체적으로 꽤나 피곤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만남이 잦아진 사람은 필자만이 아닌 듯한데요. 지난 주말 모임은 처음 방문한 장소였습니다. 약속 장소 근처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이 거리에 나와 있어 골목은 붐비고 있더군요. 초행길이라 정확한 위치를 잘 몰라서 식당 이름을 검색하고 지도를 봤지만… 찾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운전할 때 사용하는 내비게이션을 켜고 장소를 검색해 찾아갔는데요. 다행히 늦지 않게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무척 번잡해 애먹긴 했지만, 코로나19로 위축했던 경제가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아 기분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루빨리 많은 피해를 입었던 소상공인들이 코로나19 이전 상황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늘어난 약속 때문에 만남도 잦아져서 위치 검색을 자주 하는데, 도통 길 찾기는 쉽지 않더라고요.
하하. 마찬가지입니다. 오죽하면 걸어 가면서 자동차용 내비게이션을 사용할까요. 사람은 너무 많고, 가는 길은 모르겠고, 너무 답답하더라고요. 내비게이션 아니었다면… 아찔합니다. 다시 한 번 기술 발전에 감사함을 느꼈는데요.
그런데 만약 같은 상황, 같은 환경에서 안대를 착용하고 길을 찾아가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지도를 보면서 내비게이션으로 안내를 받아도 찾아가는데 한참 걸리는데 말이죠. 눈 앞을 가리는 안대까지 착용하면, 얼마나 오래걸릴지 궁금합니다.
이렇게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시각장애인입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발표한 2019년 국내 교통사고 사망자 통계에 따르면, 보행자의 사망 비율은 전체 사망사고 중 38.9%를 차지하했습니다. 자동차, 이륜차, 자전거 등과 비교해 가장 높은 수치인데요. 이동하는 동안 아무 보호를 받지 못하는 보행자의 교통사고는 더 크게 다칠 수 있다는 뜻이죠.
시각장애인는 어떨까요? 시각장애인은 보행 중 주변을 잘 볼 수 없기 때문에 일방인과 비교해 훨씬 더 위험한 상황에 자주 노출되죠.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우리나라 등록 장애인은 264만 4,700명에 달합니다. 그 중 시각장애인은 25만 1,620명으로 약 9.5%를 차지하죠. 장애인 10명 중 한 명은 시각장애를 앓고 있습니다. 2020년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시각장애인 보행 안전실태조사’ 따르면, 우리나라는 볼라드 및 점자블록 등 시각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도로안전 시설을 보유하고 있지만, 자동차 진출입로로 인한 보도 단절, 시설 부족, 바닥재 색상 및 질감의 한계 등 여러 문제점도 있는 상황이죠. 지금의 도로안전 시설로는 사각장애인의 보행 안전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국내 전체 장애인 10명 중 1명은 시각장애인이라니 빨리 문제점을 개선해야 겠네요.
맞습니다. 시각장애인 중 50% 이상이 외출할 때마다 편의시설 부족으로 불편함을 겪는다고 합니다. 이동하기 위한 교통수단으로는 장애인 택시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놀랍게도 두 번째 이동 수단은 도보하고 합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이 도로를 이동하기에는 아직 불편한 실정이죠.
그동안 신체적 장애로 보행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웨어러블 장비, 로봇, 자율주행 휠체어, 휠체어용 내비게이션 등 다양한 기술을 소개했는데요. 이러한 장비는 비싸기도 하지만, 아직 상용화하기에는 부족한 상황입니다. 특히, 시각장애인에게 맞춰 개발한 기술이 아니죠. 때문에 시각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편의 기술을 계속 개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시각장애인을 위해 전방의 장애물을 알려주거나 길을 안내해주는 기술을 사용한다면 어떨까요? 자율주행에 활용하는 다양한 센서 기반 기술을 도보 이동에 접목한다면 앞이 잘 보이지 않아도 조금 더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은 이러한 첨단 기술을 적용해 이동할 때 자신이 가야 하는 방향과 주변 장애물 유무를 알려주는 ‘신발’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신발이 길을, 아니 그러니까, 방향을 알려준다고요?
신발이 내가 가야 하는 방향을 알려주고, 장애물을 인지해 알려주는 기술입니다. 조금 생소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사실 생각보다 예전부터 기술은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시각장애인의 눈이 되어주는 따뜻한 기술인 셈이죠.
지난 2014년 인도에 본사를 둔 ‘두체레 테크놀로지스(Ducere Technologies, 이하 두체레)’가 시각장애인의 편리한 보행을 위해 차세대 기술을 접목한 신발을 개발했습니다. 두체레가 개발한 스마트 신발 ‘리챌(Lechal)’은 GPS와 연동해 보행 시 진동을 통해 진행 방향을 알려주는 신발입니다. 리챌은 힌디어로 ‘나를 그곳으로 데려가세요’라는 뜻이라네요.
두체레는 신발 속에 작은 모터를 넣고 스마트폰 앱과 연동했습니다. 사용자가 앱으로 목적지를 설정하면, GPS를 통해 위치 정보를 계산해 방향을 전달하죠. 오른쪽으로 이동해야 할 경우 오른쪽 신발에 진동을, 왼쪽으로 이동해야 할 경우 왼쪽 신발에 진동을 일으킵니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양쪽 신발에 진동을 일으키죠. 리챌은 신발 제품과 깔창 제품으로 구분해 일반 신발에도 깔창을 넣어 동일한 기능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제공합니다. 신발 크기에 비해 깔창이 너무 크다면, 표시되어 있는 가이드라인을 보고 잘라서 사용할 수도 있죠.
깔창 뒤쪽과 신발 뒤꿈치쪽에 밀어넣을 수 있는 충전식 배터리를 함께 제공합니다. 배터리는 한 번 충전하면 15일 동안 사용할 수 있는데요. 배터리를 앞에 두고 손가락을 튕기면 소리로 배터리 잔량을 안내해주는 ‘인터랙티브 충전기’입니다. 여러모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배려를 담은 기술이죠.
리챌은 방향을 알려주는 신발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앱을 통해 운동량을 설정하거나 칼로리 계산도 할 수 있어 시각장애인이 아닌 비장애인도 운동용 신발로 사용하기 좋습니다. 착화감을 좋게 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했다네요. 참고로 비장애인이 리챌을 구매하면 두체레가 시각장애인을 위해 판매 수익금 일부를 기부합니다.
일본의 자동차 기업 ‘혼다’도 지난 2021년 사내벤처 프로그램 ‘이그니션(Ignition)’을 통해 ‘아시라세(Ashirase)’라는 스마트 신발을 개발했습니다. 아시라세는 스마트폰 앱과 신발 내부에 부착한 모션 센서를 포함한 입체 진동 장치로 구성된 내비게이션 시스템인데요. 앱에 설정한 경로에 따라 장치가 진동해서 이용자에게 길을 안내합니다. 현재 계속해 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며, 오는 2023년 신발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Grand View Research’에 따르면, 전 세계 의료용 신발 시장 규모는 2019년 83억 달러(한화 약 10조 7,277억 원)로 평가됩니다. 2020년부터 2027년까지 연평균 5.7%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는데요. 앞으로 신발을 통해 장애인 이동성을 증진시키려는 움직임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신발에 여러 기술을 접목해 길을 안내한다니 무척 신기하네요. 혹시 최근 관련 기술로 주목받는 회사가 더 있나요?
다양한 회사가 시각장애인을 위한 신발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GPS에만 의존한다면 건물 내부, 지하공간, 터널 등에서 원활하게 이용하기 어렵겠죠. 신발이 직접 장애물을 판단하고 위치를 알려준다면 가정, 사무실 등 실내에서도 활용할 수 있을 텐데요. 이런 생각을 기술로 현실화한 기업이 있습니다. 스타트업 ‘테크이노베이션(Tec-Innovation)’인데요.
지난 2014년 설립해 오스트리아에 본사를 둔 테크이노베이션은 시각장애인의 일상을 더욱 안전하게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장애물 감지 지능형 신발 ‘이노메이크(Innomake)’를 개발했습니다. 이노메이크의 경고 시스템은 거리 센서, 발 움직임 감지 센서, 진동 장치, 초음파 등 차세대 기술을 탑재했는데요. 휴대폰과 연결해 이동하고자 하는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길을 안내합니다. 이노메이크는 알고리즘을 활용해 걷는 동안 초음파 신호를 보내고 받을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전방 4m 앞의 장애물까지 확인해 미리 대응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노메이크를 신고 외출할 때에는 이노메이크 앱을 실행해야 하는데요. 이노메이크 앱의 핵심은 이어폰, 헤드폰 등 음향을 통해 피드백을 전달한다는 것입니다. 전방에 장애물이 왼쪽에서 오는지, 오른쪽에서 오는지, 또는 다른 방향에서 오는지 파악하기 어려운데, 정밀한 음향를 통해 장애물 위치를 좀 더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고 하네요. 주변 소음에 상관없이 장애물 위치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이노메이크의 배터리는 약 일주일 정도 지속되며, Micro-USB를 활용해 3시간이면 충전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신발 가격은 약 3,200유로(한화 약 435만 원)로 조금 비싼 편이지만, 향후 기술 발전과 함께 활발한 상용화로 이어진다면 더욱 저렴한 가격으로 출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테크이노베이션은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기술을 상용화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앞으로는 딥러닝 기술과 이미지 처리 알고리즘 등을 활용해 장애물 종류에 따라 구분할 수 있도록 개선해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는 관련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나요?
지난 2022년 5월, 보건복지부가 전국 지방자치단체 청사에 대한 시각장애인 편의시설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점형 블록, 점자표기 등을 적정하게 설치하고 유지하도록 시정명령을 조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시각장애인 편의시설 조사항목 6,021개 중 적정하게 설치한 비율은 38.8%로, 부적절하게 설치한 비율 37.4%와 비슷했습니다. 심지어 아예 설치하지 않은 비율도 23.8%를 차지했죠. 시각장애인이 지자체 청사 접근하고 이용하는데 불편했던 것으로 나타난 것이죠.
공공기관의 건물 접근성도 낮았습니다. 시각장애인이 일반 거리를 이용할 때는 더욱 불편했을 것으로 판단할 수 있죠. 일각에서는 아직도 장애인의 이동권 문제 해결은 크게 개선된 점이 없다며, 우리 사회의 관련 인식 제고와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국내에는 아직까지 시각장애인용 신발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다만, 관련 기술을 시도하는 모습은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서울시 송파구, 동대문구, 성동구, 대구시 달서구 등 몇몇 지자체에서 ‘스마트 인솔 보급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스마트 인솔’이란, 사물인터넷과 위성항법 시스템 기술을 장착한 깔창입니다. 쉽게 말해 스마트폰 앱으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깔창인데요. 아직 발달장애인 대상으로 위치 알람 서비스 형태로 지원하고 있지만, 이러한 기술이 좀 더 다양한 각도에서 고민하고 발전시킨다면 초정밀 위성항법 시스템과 여러 센서를 활용해 시각장애인용 신발로 발전시킬 가능성도 있습니다.
앞으로 시각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기술 개발에 극복할 과제는 무엇일까요?
최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출근시간대 지하철 시위를 통해 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불편 해소와 차별 개선을 주장했습니다. 이에 교통약자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불편하다는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죠. 이번 시위는 지체장애인 문제에 집중했지만, 사실 다른 유형의 장애를 지닌 사람들도 공평한 이동권을 보장받지 못하곤 합니다. 어떻게 하면 교통약자가 이동할 때 불편하지 않을지, 사회적 고민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입니다.
현재 여러 첨단 기술개발을 통해 많은 사람이 다양한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사회적 약자와 소수를 위한 기술 및 상품은 시장성 한계로 출시는 더딘 편이죠. 이러한 문제 극복을 위해 우리 모두가 인식을 바꾸고, 범정부차원에서 관련 기업을 지원해 모두에게 편의를 제공할 수 있는 사회로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글 / 한국인사이트연구소 김아람 책임연구원
출처: 동아일보
해당기사링크: https://www.donga.com/news/It/article/all/20220623/1140716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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