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지난달 24일과 25일, 한국 정부는 스위스 제네바 유엔본부에서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아래 위원회)로부터 유엔장애인권리협약(아래 협약) 이행 상황에 대한 심의를 받았다. 협약은 국제인권조약으로, 장애인이 보장받아야 할 주요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2008년에 협약을 비준했으며, 헌법에 따라 이 협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법적 효력을 가진다. 한국 정부에 대한 심의는 2014년 이후 두 번째다. 장애계는 50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협약 한국 정부 심의 대응 장애계 연대(아래 장애계연대)’를 꾸려 정부의 이행 상황을 감시해왔다. 비마이너는 이틀간 진행된 현장 심의 속기록을 입수해 다섯 차례에 걸쳐 이를 보도한다.
① 유엔 “현행 종합조사는 협약에 부합하지 않아”
② 이동권·접근권 처참… 정부는 유엔서 “성과 있다”
③ 유엔 “코로나19 장애인 사망률 왜 높나” 정부 “한국 특성상…”
④ 잇따른 발달장애인 참사, 유엔도 주목
⑤ 유엔 “성년후견제도 폐지하라” 권고에도 정부, 수용 거부
- 시외이동권 처참한데, 정부는 “적합률 99%” 자찬
로사 이달리아 알다나 살게로 위원은 이동권에 관해 질의했다. 그는 “장애여성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사고가 발생했다는 정보를 들었다. (대중교통)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가 궁금하다. 시외버스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한 예산, 계획, 일정도 궁금하다”고 질문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여성 장향숙 씨는 2019년 4월 30일, 2호선 신촌역에서 지하철을 타려다 사고를 당했다.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의 넓은 간격에 휠체어 바퀴가 끼인 것이다. 전윤선 씨 또한 비슷한 사고를 겪었다. 3호선 충무로역에서 승차하려다 휠체어 바퀴가 지하철 턱에 걸렸다. 전 씨는 이 사고로 휠체어에서 추락했다. (관련 기사 : 지하철 단차에 휠체어 바퀴 빠져 고꾸라지고… 장애인들 ‘차별구제소송’ 제기)
이에 장 씨와 전 씨는 2019년 7월 3일, ‘서울교통공사(아래 공사)가 지하철과 승강장 사이 단차의 위험을 방치하고 있다’며 공사에 차별구제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1심과 2심 모두 패소했다. 신촌역과 충무로역 모두 관련 규칙과 지침이 생긴 2010년 이전에 준공된 역이라 규칙 및 지침의 소급적용 대상이 아니고,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는 관련 규정이 없어 공사가 정당한 편의제공을 회피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승소한 공사는 아직도 단차 문제를 방치하고 있다. 지난 4월 19일, 한 지체장애인이 3호선 동대입구역에서 승강장과 열차 사이에 다리가 허벅지까지 빠지는 사고를 당했다.
로사 이달리아 알다나 살게로 위원이 언급한 ‘시외버스 접근성’도 처참한 수준이다. 시외로 이동하는 고속버스 중 휠체어 이용자가 탈 수 있는 버스는 전국에 단 10대뿐이다. 전체 고속버스의 0.57%다. 노선도 턱없이 부족하다. 전체 고속버스 노선 169개 중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노선은 단 4개뿐이다. 사실상 버스는 탈 수가 없다. 철도로도 시외이동권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 KTX에는 전동휠체어가 두 대까지만 탑승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현실에 관해선 설명하지 않고 예산 문제 등을 언급하며 기존 입장을 반복해 설명했다. 최정민 국토교통부 생활복지과장은 “도시 간 이동에 접근성 제약이 없도록 다양한 개별지원 이동을 추진 중”이라면서 “21년 기준 철도의 장애인이동편의시설 기준적합률은 99%”라고 답했다. 장애인이 체감하는 현실과 매우 동떨어진 답변이었다.
최 과장은 “2027년 1월부터는 광역버스에도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를 전면 시행할 계획”이라면서 “철도가 운행되지 않는 지역을 중심으로 휠체어 탑승설비가 마련된 버스도 확대할 계획이다. 국가 예산을 투입 중인데 버스운송사업자의 참여를 높이기 위한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지금 당장 보장해야 할 이동할 권리를 기약 없는 미래로 미룬 것이다.
- ‘노 장애인 존’ 만들어 놓고 “성과” 운운
장애인 건물 접근성에 대한 질의도 있었다. 게투르 퍼포미 위원은 “한국은 바닥 면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장애인편의시설 설치 의무에서 제외한다. 장애인이 출입할 수 없는 곳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이는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서 바닥 면적을 기준으로 장애인편의시설 설치 의무 제외 대상을 규정하고 있는 국내 상황에 대한 질의였다. 복지부는 지난해 6월 시행령 개정 입법예고를 통해 바닥 면적 기준을 300m²(약 90평)에서 50m²(약 15평)로 줄인다고 알렸다. 바닥 면적 50m² 미만의 시설물에는 출입구 경사로 등 장애인편의시설을 설치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장애계는 개악안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그동안 장애계는 바닥 면적 기준을 아예 없애고, 장애인편의시설 설치를 의무화하라고 요구해 왔다. 그러나 정부는 소상공인의 입장을 우선시하며 끝내 바닥 면적 기준을 고수했다. 기준은 완화됐지만 대부분의 소규모 점포에 장애인은 출입하기 어렵다. 편의점의 경우 전국 4만 3000여 곳 중에서 50m² 미만인 곳은 약 80%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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