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오전 8시50분 서울 용산구 남영역 1번 출구 인근 횡단보도 앞. 보행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자 건너편에서 온 인파 30여명이 횡단보도가 끝나는 지점쯤에서 길을 빙 둘러서 갔다. 인도 한복판에 세워진 전동킥보드 때문이었다. 근처를 지나던 오토바이 운전자는 이 킥보드를 피해 핸들을 좌우로 꺾다 하마터면 사고를 낼 뻔했다. 킥보드 운영회사의 애플리케이션(앱)에는 이곳을 ‘주차 불가 지역’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지난 2일 서울 중구 충무로역 5번 출구 앞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지하철 출구에서 40m정도 떨어진 이곳 인도 한복판에도 또 다른 업체가 운영하는 전동킥보드가 1대 세워져 있었다. 이곳 역시 앱에는 ‘주차 불가 구역’으로 안내된 곳이었다.
불법 주·정차 단속을 하는 경찰관들도 킥보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렇게 다수의 통행에 불편을 초래하는 ‘잘못 주차된 킥보드’는 경찰의 단속 대상일 것 같지만, 이를 규제하는 명확한 법률 조항이 없어 경찰도 함부로 처리하지 못한다. 서울의 한 일선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경찰관은 “주인이 있는 이륜차의 경우 차를 옮기라고 연락하면 되지만, 공유 전동킥보드의 경우 책임소재가 업체에 있는지, 이용자에게 있는지 명확하지 않아 관리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전동킥보드 무단 주·정차에 따른 민원이 끊이지 않자 지방자치단체는 조례 등으로 단속·규제에 나서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정차 주차 위반 차량 견인 등에 관한 조례’를 만들어 차도, 지하철역 진출입로, 버스정류소·택시 승강장 10m 이내, 점자블록 위·교통약자 엘리베이터 진입로, 횡단보도 등을 전동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장치 주차 금지 구역으로 지정해 주차 단속을 하고 있다. 이를 위반해 전동킥보드가 견인 조치 되면 시에 견인료 4만원과 30분당 700원의 보관료를 내야 한다.
이렇게 단속을 벌이더라도 이제는 견인료와 보관료를 누가 납부해야 하는지 문제가 남는다. 같은 조례 4조에 따르면 시는 견인료와 보관료 납부고지서를 차량 사용자 또는 운전자에게 보내도록 돼 있다. 불법 주·정차 단속 대상이 되는 대부분의 킥보드는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공유’ 형태로 운영되기 때문에 지자체에서 운전자를 특정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킥보드 소유권자인 운영업체에 견인료 등이 주로 부과된다. 그런데 킥보드 운영회사별로 불법 주·정차를 한 이용자에게 주는 ‘페널티’는 제각각이다. 지정 구역 외 주차로 ‘경고’ 조치를 수차례 받은 이용자에게 ‘이용정지’ 처분을 내리는 업체가 있는가 하면, 주차 규정 위반 이용자에게 견인료 4만원을 부담하도록 하는 업체도 있었다.
이호영 변호사(지음 법률사무소)는 “렌터카 운전자의 불법행위로 인해 회사에 부과된 과태료를 이용자에게 구상하는 것처럼 개인형이동장치에도 (이런 시스템이) 정착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근본적으로는 개인 이동장치의 주·정차 공간이 곳곳에 별도로 마련돼야 킥보드 등으로 인한 보행·교통사고를 줄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 공유자전거 ‘따릉이’처럼 대여·반납과 주차를 연계하는 방안도 고려될 수 있지만, 사설 대여업체가 난립하고 있어 일괄적인 주차 공간 설치도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한상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대로변에서 한 구획마다 전동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장치를 50m 단위로 주차공간을 두는 것을 고려해봐야 한다”면서 “민간에서도 건물소유주나 임차인과 협의해 건물 이용자들을 위한 개인형 이동장치 전용 주차공간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국회에서는 박성민 국민의힘 의원 외 9명이 2020년 11월 지자체가 전동킥보드의 거치구역을 구축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개인형 이동장치 안전 및 편의 증진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지만, 2년 가까이 상임위원회인 국토교통위에 계류 중이다.
출처: 경향신문
링크: 인도 한가운데 ‘떡하니’···‘민폐’ 킥보드를 어찌할꼬 - 경향신문 (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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