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자활' 외면하는 한국 사회
기사입력 2009-11-03 05:35 | 최종수정 2009-11-03 08:42
교통·교육·금융서비스 곳곳에 문제투성이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김남권 기자 = "보기 싫다고 점자블록마저 없애면 시각장애인은 어떻게 다니란 겁니까"
지난 6월 서울시가 47억9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준공한 금천구 시흥사거리~독산동길 입구 700m 구간 '디자인서울거리'에는 노란색 점자블록이 없다.
걷기 편하고 미관상으로도 세련된 환경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인도를 새로 깔면서 점자블록을 없애 버린 것이다.
인근에 사는 시각장애 1급 장애인 윤기명(58)씨는 이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도움 없이는 병원이나 은행도 다닐 수 없는 신세가 됐다.
3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난 윤씨는 "공사 단계부터 구청과 서울시, 심지어 보건복지부에까지 문제를 제기했지만 담당자들은 모두 외면했다. 미관상 좋지 않아 없앴다는 데 시각장애인은 도대체 어쩌라는 거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러한 사례는 시각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관심과 차별 관행의 일각에 불과하다.
최근 시중에서 볼 수 있는 현금자동지급기(ATM)는 대부분 터치스크린 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며, 버튼식도 점자표기가 돼 있지 않아 시각장애인에게는 무용지물이다.
금융감독원은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금융회사들에 올해 말까지 이러한 문제에 대한 장단기 대책을 마련하도록 했지만, 권고사항에 불과해 실효성이 의심된다.
실제로 금융회사들은 금감원의 권고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시각장애인도 폰뱅킹은 사용할 수 있고 입ㆍ출금도 은행에서 직원의 안내를 받으면 된다. 야간에 ATM을 사용하는 시각장애인의 수요는 그렇게 많지 않아 큰 문제가 안 된다"며 ATM 개선에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쳤다.
지하철 승차권 무인발매기나 1회용 교통카드 발급기도 터치스크린 방식이 많아 시각장애인들한테는 '그림의 떡'인 셈이다.
시각장애인에 대한 '무배려' 관행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시각장애인 학생들의 입시 준비 과정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학생들은 화면 정보를 음성이나 점자로 표기할 수 있는 점자노트북을 활용해 공부하고 있지만, 교재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국립특수교육원의 시각장애 학습전문 사이트인 '이얍'(E-yab)에서는 교과서와 학습교재를 텍스트 파일로 제공하지만, 저작권 문제 때문에 교육방송(EBS) 외의 자료는 구할 수 없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는 "외국에서는 시각장애인이 책을 사면 텍스트 파일을 제공하는 등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한 여러 방안이 강구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이런 문제에 대한 관심이 매우 부족하다"라고 지적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각종 사업도 당사자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아 졸속으로 이뤄진 사례가 적지 않다.
서울시가 다음달부터 시범운영하는 범용 버스노선 안내단말기는 목적지를 말하면 해당 노선번호를 음성으로 안내하지만, 노선도는 터치스크린 방식으로 돼 있어 시각장애인들을 배려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밖에 ▲각종 매장의 맹인안내견 동반입장 거부 ▲지하철 등에 설치된 장애인용 음성유도기와 횡단보도 음향신호기 오작동 ▲지폐 점자표기의 비실용성 등도 시각장애인을 괴롭히는 사례로 꼽힌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는 "'점자의 날' 제정 83주년을 맞았으나 시각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이 여전히 차갑다. 그간 많은 개선이 있었지만 국민 모두 시각장애인이 주변의 도움 없이도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의식을 갖지 않는다면 언제나 절반의 성공에 그칠 것이다"라고 말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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