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잦은 폭우로 인한 홍수, 2017년 포항 지진, 2022년 밀양 화재사건 등 화재나 자연재해에 의한 피해가 속출함에 따라 재난극복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고 있다. 특히 장애인은 보행 약자로 재난 시 피난에 대한 피해가 더 클 수 있다. 그래서 국가적인 연구도 활발했다.
서울시 및 경기도 장애인 재난 극복 매뉴얼 등 해당 내용의 장애인 재난극복은 주로 파트너십 등 인적요소로 해소하는 게 주된 내용이다. 보다 주체적이고 독립적이고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편의시설에 확보가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화재의 원인은 단순 사고나 방화 등 인재일 수 있고 또는 자연발화일 수도 있는 것이기에 애당초 우리 사회에서 화재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릴 때부터 자나 깨나 불조심을 외치고, 포스터를 그렸으며, 정기적으로 가스정비를 받거나 누전 조심 캠페인을 보고 자랐다. 그리고 정부는 ‘소방법’과 ‘건축물의 피난 방화구조 등의 기준에 관한 규칙’ 등 법과 지침을 제정하여 화재의 발생을 예방하거나 발생하더라도 그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많은 건물에서는 관련 법과 지침을 준수하지 않아 크고 작은 참사가 반복되어 소중한 인명을 앗아갔으며, 국민 모두는 만성적 사고 트라우마에 휩싸여 있다.
이에 따라 지자체는 재난 관련 기구 강화 등 재난 안전에 대한 총체적인 진단과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하였으며, 정부는 중소형병원이나 다중이용시설 등 전국 6만 개소를 위험시설로 분류해 관계부처와 지자체 등으로 구성된 합동점검단이 전수 점검에 나서기도 하였지만, 이 과정에서 시각장애인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간 시각장애인의 재난극복을 위한 여러 연구가 이루어진 바가 있다. 특히 2015년도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는 ‘시각장애인 재난대응 매뉴얼 등 개발 연구’를 수행하였으며, 이를 근거로 서울소방재난본부의 정책자료로 활용하고자 하였다. 주요 내용은 해외 선진국의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에 맞는 피난 관련 시사점을 파악하여 시각장애인의 특성에 맞는 재난극복 매뉴얼을 발간한다는 것이다. 매뉴얼에는 화재 전기 가스 등 사회재난 대비 요령과 태풍 호우 산사태 지진 등 자연재난 대비 요령을 설명해주고 있으며, 조력자를 통한 행동지침을 소개하고 있다. 내용의 구성만 보면 매우 획기적이고 실용적일 것이라 예상되나 실제 내용을 보면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참고로 화재에 대한 대비 요령은 다음과 같다.
화재사고의 정의와 현황에 대한 설명, 화재 사전 대비 방법으로 ‘소화기 사용법 숙지, 비상구 위치 확인, 최소 2가지 탈출 경로와 탈출시나리오 계획, 평소 소방대피 훈련에 관심을 두고 적극적인 참여’라 기술되어 있다. 또 화재 발생 시 행동요령으로 ‘불이야 라고 큰소리로 외쳐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화재경보 비상벨을 누름부터 해서 119로 신고’까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화재 발생 시 행동요령과 다를 바 없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조력자 역할이 추가된 점뿐이다.
이처럼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정부나 산하 단체들은 단순히 연구를 위한 연구, 새로울 것 없는 매뉴얼 발행에만 집중을 하고 있는 나머지 실효성 있는 해결방안에 대한 접근은 크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해외 사례를 나열하고 모두가 아는 내용을 마치 특별한 연구처럼 소개하고 있다. 시각장애인의 재난극복을 위한 실질적인 자구책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
우리 센터에서는 앞으로 시각장애인의 재난극복에 도움이 되고자 다양한 방법을 시도할 예정이다. 그 첫 번째로 시각장애인이 누군가의 도움 없이 재난에 안전하게 대비할 수 있도록 ‘피난촉지안내도 단체표준’을 제정하고자 한다.
우리나라는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제12조 (피난안내도의 비치 또는 피난 안내 영상물의 상영)에 따라 다중이용 업소에 화재 등 재난이나 그 밖의 위급한 상황 발생 시 이용객들이 안전하게 피난할 수 있도록 피난계단·피난 통로, 피난설비 등이 표시된 피난안내도를 갖추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과 같이 시각장애인을 고려한 구체적인 지침은 현재 마련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그나마 BF인증을 받아야 하는 시각장애인 전용시설(복지관과 맹학교)의 경우 인증기관 및 심사‧심의위원의 추가 의견으로 피난안내도에 촉지할 수 있는 점자와 돌출선을 표기하여 보완하라는 정도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에서 말하는 다중이용 업소란 식품접객업, 영화상영관 비디오물감상실업 및 극장업, 학원(기숙사 포함), 목욕탕업, 게임 및 인터넷컴퓨터게임시설제공업, 노래연습장업, 산후조리업, 고시원업, 종합사격장, 골프 연습장업, 안마시술소 등이다. 물론 모든 다중이용 업소에서의 시각장애인 피난을 위한 안내시설 개선은 필요하나 우선적으로 시각장애인의 주요 직업 공간으로서 안마시술소는 특히 상시 근무하는 공간이므로 시각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피난안내도 설치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시각장애인이 사용할 수 있는 피난안내도를 설치한다고 해서 재난 시 시각장애인의 안전이 완벽하게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평소에 피난 정보를 알고자 할 때 현재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피난 동선을 알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매우 큰 차이이다.
장애인의 생존권은 무엇보다 소중하다. 그러므로 유관기관과 정부, 지자체가 합심하여 보행약자인 시각장애인의 피난 대비책을 마련하는 등 시각장애인의 안전한 생활환경을 조성하는 일에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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