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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에게 높은 은행 문턱…"인식부터 바꿔야"
편의증진센터
2013-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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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기사입력 2013-03-31 07:00

 

(서울=연합뉴스) 고유선 안홍석 기자 = 내달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차법)' 시행을 앞두고 은행권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은행들은 휠체어로 전면 접근이 가능한 자동화기기(ATM)를 지점마다 1대씩 들여놓기로 하고 홈페이지도 개편하는 등 법 시행에 대비하고 나섰다.

그러나 장애인 관련 시민·사회단체들은 은행권의 이 같은 움직임이 `구색만 갖추려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장애인이 일반인과 똑같은 수준의 금융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영업 체계를 근본부터 바꿔야 하는데 은행들은 정부 지침에만 맞추려고 할 뿐이라는 것이다.

◇"휠체어 ATM·홈페이지 개선?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

장차법 제17조는 금융사가 상품이나 서비스 제공을 할 때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장애인 단체들은 이 조항을 장애인이 일반인과 같은 수준의 금융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점을 규정한 것이라고 본다.

현재 은행권의 준비 상황은 이 수준에 크게 못미친다는 게 장애인들의 평가다.

특히 옥외 ATM 이용이 불편하다는 지적이 많다. 장애인은 은행 지점보다는 거주지 근처의 옥외 ATM 부스를 이용하는 빈도가 일반인보다 높다.

일단 ATM 부스가 어디 있는지 시각장애인이 알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요철이 있는 점자블럭이 깔려있어야 ATM 앞에 서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전면에 점자블럭이 없거나 아예 아스팔트만 깔려있는 ATM 부스가 적지 않다.

점자블럭으로 표시돼 있더라도 이 부스가 어느 은행 것인지는 부스 안에 들어가 안내 방송을 들어야만 알 수 있다.

지점과는 달리 ATM 부스에는 경사로가 설치돼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휠체어를 타고 접근할 수 없는 것이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이하 장추련) 박김영희 사무국장은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에게는 일반인이 쉽게 넘나드는 문턱도 `벽'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은행권이 2010년께부터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 확대·음성지원 ATM을 늘려왔지만 이들 기기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이어폰 단자를 아예 막아놓는 등 제 기능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청각장애인은 ATM이 고장나면 일반인이 올 때까지 꼼짝없이 기다려야 한다. 고장 신고를 하려면 인터폰을 통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뱅킹은 제대로만 운영된다면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서비스다. 그러나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이하 한시련) 조사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국민은행만 시각장애인이 무리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장애인인권포럼 사무국 박장우 차장은 "홈페이지를 개선한다는 은행들이 실제 시각·청각 장애인이 새 홈페이지를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지 테스트 해봤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면서 "장차법 시행을 앞두고 보여주기 식으로 장애인 관련 단체의 웹 접근성 인증을 받는데만 열심이다"고 지적했다.

한시련 편의증진센터 이승철 연구원은 "인터넷뱅킹이든 ATM이든 처음부터 장애인과 일반인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으면 지금처럼 따로 돈을 들여 급박하게 교체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면서 "이윤을 그토록 따지는 은행권 사람들이 장애인 서비스 관련해서는 왜 경제적으로 생각을 못하는 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 대규모 소송 가능성도…"장애인에 대한 인식부터 바꿔야"

장추련에 따르면 뇌병변 1급 장애인인 김모(45)씨는 최근 아파트 전세금 대출을 받으려고 서울 중곡동의 한 은행 지점을 찾았다.

언어 구사가 자연스럽게 안 되는 까닭에 창구 직원과 대화를 나누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보증서류를 제출하고 금리를 확인하는 등 대출을 받기 위한 절차를 하나 하나 진행해 나갔다.

갑자기 창구 너머 뒤쪽에 앉아있던 과장이 다가와 "고객님 본인 대출 맞나요?"라며 의심스럽다는 눈빛으로 물었다.

김씨는 "내가 맞아요"라고 떠듬떠듬 수차례 답했다. 제대로 못 알아 듣겠다는 과장은 명확하게 고객의 의사를 확인해야 대출이 가능하다며 가족과 함께 오라는 말만 반복했다.

화가 난 김씨는 휠체어에서 내려와 바닥에 쪼그려 앉아 "왜 차별하느냐"며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과장은 놀라면서 대출을 해줬다. 김씨의 자존심은 이미 상처받은 뒤였다.

장추련 박김 사무국장은 "ATM이나 홈페이지는 어떻게 보면 매우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장애인이 일반인과 똑같이 대접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은행이 장애인을 대하는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장추련은 장차법이 시행되면 올해 안으로 영업점 창구 서비스, ATM, 인터넷·텔레뱅킹 등 은행 서비스를 전반적으로 점검할 계획이다.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문제점이 발견되면 인권위원회 진정을 거쳐 필요할 경우 행정소송을 낼 계획이다. 만약 차별 대우로 피해자가 발생한다면 장차법에서 규정한 손해배상 소송도 벌이기로 했다.

장차법은 금융사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인을 차별해 장애인이 피해를 입으면 손해를 배상하도록 규정한다. 고의나 과실이 없다는 것을 입증할 책임은 금융사가 진다.

박김 사무국장은 "인권위 진정을 몇차례 해봤지만 구속력이 약해 실효성이 떨어지더라"면서 "앞으로는 소송에 중점을 두겠다"고 경고했다.

장애인인권포럼 박 차장은 "정부 지침에 따라 휠체어 전면접근이 가능한 ATM을 지점마다 설치한다고 해서 은행의 장애인 서비스가 장차법에서 요구하는 수준으로 올라가는 게 아니다. 몇몇 사업만 보여주기 방식으로 해놓고 `할 일 다했다'는 식으로 나온다면 그게 더 큰 문제일 수 있다"고 말했다.

ah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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