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0 장애인의 날’ 기획] ① 장애인 관광 이런 점이 문제다
[경주] 세계 최고의 관광대국으로 손꼽히는 스페인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산티아고 가는 길’이 도보 여행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기자도 지난 2009년 약 36일간의 도보여행으로 그 길을 걷던 중 놀라운 안내판을 발견했다. 바로 산티아고 가는 길을 표시하고 있는 ‘점자 안내판’이었다. 시각장애인이 도보여행을 한다는 자체도 상상이 안됐지만 그 먼 길을 걷기 위해 누군가의 동행은 필수적일 것이고 그렇다면 굳이 점자로 된 안내판이 필요 없을 터.
하지만 시각장애인들도 엄연한 사회의 한 구성원임을 잊지 않고 사소한 것까지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는 스페인의 문화가 부러웠다. 한국은 경제대국 10위에 올라섰지만 이런 점에서 선진국으로 불리기에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하던 차, 경주에 장애인을 위한 관광도우미센터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운 마음에 찾아가봤다.
스페인의 도시 레온(Leon)에서 만난 점자 도로 표지판
경주는 수많은 문화유산을 보유한 우리나라 최고의 관광지로, 특히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이면 최고의 여행지로 각광받는 곳이다. 경주의 대표적인 유적지 ‘대릉원’에 방문해 장애인 편의시설이 어떤 지 먼저 살펴봤다.
예전에 비해 장애인들의 대중 교통편 이용 등에서는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 대부분의 관광지가 그렇듯 경주 역시 장애인은 입구에서부터 식은땀을 흘리기 일쑤다. 대릉원 입구에는 휠체어 이용이 가능하도록 시설이 마련돼 있지만 가파른 경사로로 인해 장애인 혼자서는 이용이 거의 불가능해보였다.
경주의 대표적인 유적지 대릉원 입구. 휠체어 이용이 가능하도록 시설이 돼있지만 경사가 심해 장애인 혼자서는 이용이 거의 불가능하다.
힘들게 대릉원에 들어왔지만 사정은 별반 나아지지 않는다.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전용 보도 블럭이 아닌 울퉁불퉁한 보도 블럭으로 인해 휠체어를 밀기도 쉽지 않았다. 가뜩이나 힘들게 휠체어를 밀어야 하는 상황에 장애물인 턱이라도 만나게 되면 난감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자, 그럼 이제 화장실에 한번 가볼까? 장애인이 이용 가능하다고는 돼있지만 시설 자체가 너무 열악해 이용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아 보였다. 하지만 유적지마다 각종 장애인 편의시설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보완하기 위해 경주 장애인 도우미센터가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경주 장애인 관광도우미센터는 장애인들이 여행욕구는 강하지만 여행정보 부족, 편의시설 미흡 등으로 인해 여행을 망설이거나, 어려워 한다는 것을 알고 경상북도와 경주시가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비장애인들은 무심히 지나치는 울퉁불퉁한 보도블럭과 장애물인 턱은 장애인에게는 엄청난 모험이다.
장애 유형별 맞춤 상담을 통해 관광 일정을 장애인의 입장에서 설계, 불편을 최소화하는 ‘맞춤형 여행서비스’를 제공하며, 장애인 편의시설이 갖춰진 음식점, 숙박시설을 안내하고 문화 유적지마다 장애인 문화 해설사를 대동해 관광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
특히, 시각장애나 중도 지체장애를 가지고 있는 장애인들이 장애인 문화해설사 양성 교육을 수료한 뒤 장애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문화·해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누구보다 장애인들이 겪는 심리적, 육체적 어려움을 이해하고 있었다.
경주 장애인 관광도우미센터 서비스 과정은 모두 무료로 이용이 가능하다. (사진=경주장애인관광도우미센터 홈페이지)
장애인 문화해설사들은 이구동성으로 “내가 장애가 있어 실제로 여행을 했을 때 불편함을 느낀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돼 자원봉사로 문화해설사를 하게 됐다. 내가 같은 입장이다 보니 장애인 관광객들이 가족같은 생각이 든다.”며 “사명감을 가지고 문화해설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해설사로 활동 중인 이상돈 씨는 “장애인들은 몸이 불편해 휠체어나 목발에 의존하기도 하는 등 걸음이 느릴수밖에 없고, 지적장애의 경우 눈높이에 맞춘 해설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일반 해설사들은 이를 배려하지 않아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경주 장애인 관광도우미센터의 문화유산해설사들.
또 다른 문화해설사인 김동한 씨는 “‘처음 문화 해설을 할 때는 많이 어색했다.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같은 장애인의 마음으로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해설을 해주니 장애인 관광객분들이 너무 좋아해주셔서 나도 뿌듯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어 “장애인들도 장애인들인지만 보호자들도 장애인을 돌보느라 여행을 거의 하지 못한다. 그래서 장애들과 함께 보호자들이 우리 센터를 이용해 여행을 하고 난 뒤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올 때가 많다.”며 “비장애인지만 같은 장애권으로 생각해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다.”이라고 설명했다.
전찬익 씨는 “경주 관내 문화유적시설에 장애인 편의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휠체어를 타고 가서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도 부족하고 화장실을 이용하기에도 정말 힘들다.”며 “장애인 편의시설이 돼있다고 하더라도 일반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시설에 장애인들이 겸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구색 맞추기에 지나지 않는다.”며 “장애인 전용 시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경주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대릉원, 불국사 등에서 장애인의 눈높이에서 문화유산 해설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가장 시급하게 개선돼야 할 사항으로 장애인 전용 보도블럭, 장애인 화장실 확충, 점자 블록 및 점자 안내판을 꼽았다. 또 장애인 관광도우미센터에는 리프트 차량 한 대가 지원이 가능하지만 전동 휠체어가 이용되지 않는 차량이라며 다소 아쉬워했다.
장애인 문화해설사의 도움으로 장애인들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 갈 때는 대부분 ‘기회가 되면 꼭 다시 찾고 싶다’고 말할 만큼 여행의 만족도는 매우 높을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이 여행을 하기에는 여전히 개선돼야 할 점은 많아 보인다. 무엇보다 장애인 편의시설 마련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중요하고, 비장애인들의 인식 변화 또한 매우 중요해 보인다.
문화 해설 서비스 및 차량 지원 서비스 신청은 여행 일주일 전에 경주 장애인 관광도우미센터(www.jangtour.org)로 인터넷 신청 혹은 전화로 신청하면 무료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단체뿐 아니라 개인 여행도 가능하다.
정책기자 정해경(프리랜서) chnag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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