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부터 금융권을 포함한 모든 법인의 웹사이트에 대해 웹 접근성 준수가 의무화되는 가운데, 국내 은행의 웹사이트 평균점수는 58점으로 여전히 미흡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은행의 상당수는 이미 웹 접근성을 준수하는 웹사이트 구축을 마쳤다고 발표한 상태지만 실제 사용자의 평가는 다르게 나타난 셈이다.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과 ㈜블루그리드는 지난 22일 서울 영등포구 이룸 센터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 상의 웹 접근성 보장 방안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실제 사용자 평가를 바탕으로 한 금융권 웹 접근성 실태조사가 발표됐다.
평가방법은 스크린리더(화면낭독프로그램)를 이용한 시각장애인과 키보드만을 이용한 지체장애인이 웹사이트에서 주어진 과제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조사대상은 △국민 △신한 △우리 △하나 △외환 △기업 △시티 △스탠다드차타드 △농협 △수협 △대구 △경남 △부산 △광주 △전북 △제주 △한국 △한국산업 △한국수출입은행 등 국내 19개 은행 웹사이트다.
각각의 평가자에게는 메인페이지 '공지사항' 확인하기, CEO 성명·회사연혁·본점주소 찾아보기, 게시물 찾아 읽어보기, 자료 다운로드 해보기 등 10가지 항목이 주어졌다.
평가자 2명이 19개 웹사이트를 거치며 10가지씩 총 380번의 과제를 마친 결과, 이들이 성공했던 것은 모두 219번. 58%의 성공률에 그쳤다. 시각장애를 가진 평가자는 190번 중 107번(56%)을, 지체장애 평가자는 112번(59%)을 성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각장애자의 경우, 메인페이지에 접근하는 것은 63%로 비교적 높은 성공률을 보였지만 정보 확인과 자료 다운로드 등에서 50% 미만의 성공률을 보였다. 지체장애자는 평균적으로 60%에 가까운 과제를 수행할 수 있었지만 정보 검색에서 성공률이 54%로 낮아졌다.
시각장애인이 웹사이트를 이용하는 데 가장 어려움을 겪은 이유는 이미지를 대체할 수 있는 텍스트가 제공되지 않은 데 있다. 스크린리더를 통해 음성으로만 페이지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해서는 각 이미지별로 이를 설명하는 문구를 포함해야 하는데 상당수 사이트에서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체장애인의 경우 키보드만을 사용해야 하는 환경일 때가 많은데 키보드로는 웹사이트 내에서 이동 자체가 불가능한 사례도 상당수 있었다고 평가원은 지적했다.
한편 이날 발표에서는 실제로 시각장애인이 공인인증서를 이용해 인터넷뱅킹을 이용할 때 겪는 어려움도 직접 시연돼 눈길을 끌었다.
이상훈 해운대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자립생활지원팀장은 스크린리더를 통해 각 은행의 인터넷뱅킹 사이트에 접속, '즉시이체'를 시도하는 과정을 보여줬다.
한 은행은 '공인인증서 로그인' 버튼을 클릭하자 스크린리더에서 '공인인증서 로그인'이라는 음성 대신 무수히 긴 숫자가 흘러나왔다. 화면을 보지 못하는 입장에서는 로그인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또 다른 은행의 경우, 로그인은 가능했지만 이체금액을 입력하고 나서 금액을 확인하려 하면 이미 입력된 금액이 삭제되는 상황도 연출됐다.
이 팀장은 "은행 한 곳은 웹 접근성을 가장 잘 준수해놓고도 공인인증서를 이용할 때 다른 사람이 로그인을 해 주어야 한다는 이유로 인터넷 뱅킹 자체를 가입시켜주지 않았다"며 "웹 접근성을 단순히 지켜야만 하는 의무사항으로 생각하고 정보소외계층이 고객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태도"라고 꼬집었다.
김진원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 팀장은 "웹 접근성 준수를 위해 각 법인이 홈페이지 제작, 개선작업을 하고 있지만 실제 웹사이트 사용에 가장 불편을 느끼는 지체장애인이나 시각청각 장애인들의 사용자 평가 없이 개선이 완료됐다고 발표하는 실정"이라며 "실제 홈페이지를 운용하는 사람들이 누구를 위한 웹 접근성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로그인을 하시면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