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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끊기는 점자·선형블록 … 시각장애인들, 길 위에서 길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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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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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5일 '제35회 흰 지팡이의 날'

 2014년 10월 22일 (수) 10:18:14 호수:194호  4면 정혜민 기자  jhm@gimhaenews.co.kr 
 
 

인도 곳곳 아예 없거나 훼손돼 보행 난감
 횡단보도에선 "도로인지 건널목인지"
차량진입 차단 말뚝 볼라드도 위험천만

 

지난 15일은 '제35회 흰 지팡이의 날(the White Cane Day)'이었다. 이 날은 1980년 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WBU)가 시각장애인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사회적인 관심을 이끌어내자는 뜻에서 제정했다고 한다. 흰 지팡이는 1900년대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시각장애인이 급증하자, 미국 안과의사였던 리처드 후버 박사가 만들어냈다.

경남시각장애인복지연합회 김해지회는 흰 지팡이의 날을 맞아 14일 시각장애인 30여 명과 함께 수로왕릉~김해시청 구간까지 인도를 걷는 행사를 펼쳤다. 시각장애인들에 대한 김해시민들의 관심을 높이고자 열린 행사였다. 이날 행사 도중 시각장애인들이 인도의 장애물에 걸려 넘어질 뻔한 아찔한 상황들이 여러 번 펼쳐졌다. 

 

▲ 시각장애인 김현수 씨가 인도에서 점자·선형 블록을 따라 걷다 차량 진입을 막기 위해 설치해놓은 말뚝에 부딪혀 난감해하고 있다.

 

경남시각장애인복지연합회 김해지회 김성희(28·여) 사무국장은 "이날 행사에서 시각장애인들은 장애인용 점자·선형블록을 밟으며 이동했다. 하지만 점자블록은 밟아도 감지가 안될 만큼 오래돼 낡아 있었다. 선형블록과 횡단보도의 방향이 일치하는 곳이 거의 없어 시각장애인들이 보행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선형블록은 직선 모양 4개가 나란히 돌출돼 있는 블록이다. 점자블록은 동그라미 모양들이 돌출돼 있는 블록이다. 선형블록은 보행을 유도하는 역할을, 점자블록은 방향·위치를 알려주거나 장애물이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는 역할을 한다. 두 블록의 역할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블록이 어디에 설치돼 있느냐 하는 점은 시각장애인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김해뉴스>는 경남시각장애인복지연합 김해지회가 파악한 도로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시각장애인 김현수(41) 씨와 함께 김해시청 주변등을 걸어보았다.

김 씨는 걷기 시작한 지 2분도 되지 않아 걸음을 멈췄다. 인도에 설치돼 있던 점자·선형블록이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여기가 도로냐, 아니면 횡단보도가 시작되는 지점이냐"고 물었다. 횡단보도까지 가려면 몇 분은 더 걸어야 했다. 김 씨는 "블록이 갑자기 사라지면 시각장애인들은 길을 잃는다. 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며 점자·선형블록이 다시 나올 때까지 부축해달라고 부탁했다.

횡단보도 앞에 도착한 뒤 문제는 더 커졌다. 비 시각장애인들은 눈으로 보면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되지만, 시각장애인들은 방향을 알려주는 점자블록이 있어야 길을 정확히 찾을 수 있다. 하지만 횡단보도 앞에는 점자블록이 없거나 손상이 심해 방향을 감지하기 어려웠다.

김 씨가 갑자기 끊긴 점자블록 때문에 횡단보도 근처에서 헤매자, 길을 가던 한 시민이 그를 부축해 횡단보도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김 씨는 "오랜만에 모르는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예전에는 혼자 걷다가 길을 잃었을 때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요즘은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도 무서운지, 피하거나 모르는 척하는 사람들이 많다. 솔직히 시설물보다는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이 더 좋다. 하지만 사람들이 갈수록 개인주의적으로 변하다 보니 도움을 받기가 어렵다"면서 "그래서 시설물이라도 잘 갖추어져 있어야 시각장애인들이 고립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점자·선형블록이 엉터리로 설치돼 있을 경우 시각장애인들은 큰 위험에 노출된다. 시각장애인 박 모(72) 씨는 "블록을 따라 걷다가 다른 길로 간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블록을 따라 가다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는 차도로 내려간 적도 있었다. 시각장애인들이 스스로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시각장애인 김현수 씨가 점자·선형 블록이 끊어진 구간에서 한 시민의 도움을 받아 걷고 있다.

 

부원동 경남은행 부근 인도에서 점자·선형블록을 따라 걷던 김 씨가 차량 진입방지 말뚝(볼라드)에 부딪혔다. 인도에 넘어져 다칠 수도 있는 위험한 순간이었다. 김 씨는 "블록 바로 옆에 말뚝을 설치해놓으면 걸려 넘어지라는 말밖에 더 되나"라며 화를 냈다. 그는 "말뚝은 시각장애인들에게 가장 무서운 장애물이다. 차량의 인도 진입을 막기 위해 설치해야 하지만, 블록 바로 옆에 설치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말뚝에 걸려 넘어져 다치거나, 심지어 입원까지 하는 시각장애인들이 많다고 한다. 시각장애인 이 모(70) 씨는 "말뚝에 부딪혀 넘어진 경우가 자주 있다. 정강이 쪽에 상처가 아물 날이 없다. 석재 말뚝의 경우 길이가 무릎 밑 정도이다. 걸려 넘어지면 정강이 뿐만 아니라 얼굴도 다칠 수 있다. 말뚝을 꼭 설치해야 된다면 허벅지까지 올라오도록 높이거나 푹신한 재질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김해시 도로과 관계자는 "점자·선형블록이 잘못 설치돼 있는 지역은 정확한 위치를 파악한 뒤 수정하도록 하겠다. 말뚝의 경우 장애인편의증진법에 따라 지난 6월에 정비를 했다. 말뚝을 푹신한 재질로 설치하면 차량들이 파손하는 경우가 많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시각장애인들에게 최대한 피해가 없도록 정비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김해뉴스 /정혜민 기자 jhm@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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