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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m 끊긴 '점자블록' … 걸음마저 뺏긴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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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30
6382

 [중앙일보] 입력 2015.01.28 01:25 / 수정 2015.01.28 02:23
[사건:텔링] 용산역 승강장 요철길 뚝 끊겨
앞 못 보는 석이 헤매다 선로 추락
CCTV 찍혔지만 역무원은 못 봐
2분50초 뒤 지하철 치여 반신마비
점자블록은 장애인 생명줄인데
코레일은 규정위반 아니다 주장만

 

 

 

아들이 떨어졌던 선로를 바라보는 어머니 김광순씨.

사랑하는 아들아!

 엄마는 지금도 그날 아침을 또렷이 기억해. 지하철 3호선 홍제역 3번 출구 앞에 너를 데려다 주고 돌아서던 그 순간을. 지난해 9월 20일이었으니 벌써 4개월이 지났네. 시각장애인용 지팡이를 더듬더듬 두드려 가며 걸어가는 네가 그날따라 왠지 눈에 밟혔는데….

 “최석! 걷기 힘들면 공익근무요원한테 도와달라고 해!”

 “내가 혼자 지하철도 못 탈까 봐? 걱정 마세요.” 그날 이후 다시는 네가 두 발로 걷는 것을 볼 수 없게 됐지. 차라리 널 약속 장소로 데려다 줬다면….

 엄마는 너를 볼 때마다 평생 죄인처럼 고개를 들 수 없었단다. 올해로 스물일곱 살이 된 우리 아들. 1급 시각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네게 세상은 암흑 천지였어. 내 얼굴조차 본 적이 없는 네가 안쓰러워 참 많이 울었지.

 하지만 넌 보통 아이들처럼 밝게 자라 주었어. 싱어 송 라이터가 되고 싶어했던 우리 아들. 매주 좋아하는 노래를 업로드하는 네 블로그는 같은 장애를 지닌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지. 그날도 넌 용산가족공원에서 열리는 밴드 공연에 가겠다고 집을 나섰어. 그런데 석아, 그날 널 홍제역에 데려다주고 두 시간 만에 전화가 왔어. 모르는 번호였어.

 

“용산경찰서입니다. 아드님이 지하철에 치여서 크게 다쳤습니다.”

 도무지 혼자 병원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어. 한걸음 한걸음이 꼭 평행봉 위를 걷는 것처럼 위태로웠지. 함께 장애활동 도우미로 일하는 친구 손을 잡고 겨우 응급실 문을 열었단다. 머리뼈 골절, 다발성 손상, 허리척추 손상. 피투성이가 된 그날 네 모습을 죽어서도 잊을 수 있을까.

 “석아, 엄마야. 목소리 들려?”

 다급한 목소리에 넌 그저 낮은 신음 소리만 내뱉고 있었어. 오랜 침묵 끝에 이 말만 남기고 다시 정신을 잃었지.

 “엄마, 난 그냥 지팡이를 짚고 서 있었을 뿐인데….”

 한 달 뒤 병원에선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했어.

 “아드님이 두 다리를 쓰기 힘들 것 같습니다.”

 시각장애도 모자라 하반신 마비라고? 난 풀썩 주저앉았어. 평생 어둠과 어둠 사이를 헤매며 살아온 우리 아들이 두 다리마저 잃게 됐다니….

 경찰은 네가 종로3가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 용산역으로 왔다고 했어. 용산역 플랫폼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졌다는 게 경찰 설명이었지. 엄마는 의아했어. 그래서 네 동생과 함께 직접 용산역 플랫폼에 가봤어.

 승강장 사이를 이어주는 계단을 오른 뒤엔 시각장애인용 유도블록이 끊어져 있더구나. 넌 유도블록을 찾지 못해 헤매다가 3m 앞 선로로 추락했던 거지. 용산역엔 172대의 폐쇄회로TV(CCTV)가 있었지만 추락한 네 모습을 비춘 건 단 한 대뿐이었고. 그때 23명의 역무원이 있었지만 아무도 네가 추락한 걸 몰랐어. 너는 2분50초가량 선로에서 더듬거리며 길을 찾았고, 결국 다가오던 열차에 치여 80m가량을 끌려가고 말았지.

 입원 4개월째. 욕창으로 네 살이 썩어 들어가는 걸 보면 내 가슴도 뭉개진다. 하지만 코레일 측은 안전펜스를 설치했으니 법 규정에 위반된 게 없고, 해당 구간은 평소 승객이 많지 않아 시각장애인용 유도블록을 일부 설치하지 않은 것뿐이라고 말하고 있어. 또 그날 추락한 네가 크게 소리만 질렀어도 안전요원들이 구할 수 있었을 거라고….

 지난해 11월 코레일을 상대로 공익 소송을 냈단다. 유도블록이 끊어진 구간은 겨우 3m였지만, 그 3m가 시각장애인에겐 생명줄과도 같다는 걸 사람들은 모르는 것 같아. 용산역은 뒤늦게 올 상반기까지 전 승강장에 스크린도어를 설치할 거라고 발표했어.

 석아, 소송이 어떻게 결론 날지 모르겠어. 다만 시각장애인용 시설은 생명과도 직결되는 사안이라는 걸 이번 기회에 꼭 알리고 싶어.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이 엄마가 평생 네 눈과 다리가 돼줄 거야. 석아, 알았지?

조혜경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이 기사는 용산역에서 사고를 당한 최석씨의 어머니 김광순(54)씨와의 인터뷰를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사건:텔링=특정 사건을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풀어 보는 기사입니다. 범인·형사·목격자·제보자 등 주요 인물들의 시점에서 소설 형식으로 실제 사건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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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joongang.joins.com/article/aid/2015/01/28/16602460.html?cloc=olink|article|de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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