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리 uri@gjdream.com
기사 게재일 : 2015-06-01 06:00:00
▲ 지난달 29일 3차로 진행된 편의시설 점검을 위해 문화전당을 찾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접근권 대책위원회’.
-`편의시설’ 3차 점검서도 문제점 `고구마 줄기’
-화재 등 비상 대책 전무…`일자 에스컬레이터’ 시급
-“법 운운 시대착오적 발상, 개관보다 개선 시급”
“20년 전, 하버드대학교는 대대적으로 건물 구조를 바꿉니다. 문턱을 없애고 휠체어가 이동하기 편리하도록 도서관, 계단 등 기존 시설을 개조한 것이죠. 이는 단 한 명의 장애인 학생을 위해서였습니다. 인권도시 광주 나아가 아시아를 대표한다는 아시아문화전당은 어떤가요? 설계부터 문제가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하루빨리 시정해야 합니다. 바뀌지 않는다면, 문화전당 개관 저지 운동이라도 해야 해요.”
3차로 진행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편의시설 점검을 마치고 이어진 간담회 자리. 곳곳에서 터져 나온 울분 섞인 성토는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이번 점검 역시 문화전당이 이동약자들에게 기본적인 접근권 조차 허용하지 않는 시설임을 여실히 증명했던 것이다. 특히 1차 점검에서 제기된 시설 전반의 문제점들이 세부적으로 파악되면서 시급하게 개선을 요하는 사항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지난 5월6일 광주지체장애인협회 주관으로 문화전당 시설점검이 있은 뒤 심각성이 파악돼 대책위원회가 꾸려졌고, 5월27일과 29일 2, 3차 점검이 진행됐다. 23개 광주지역 장애인 및 시민단체와 광주시의원 등으로 구성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접근권 대책위원회’는 모든 사람이 차별과 제약 없이 문화전당을 이용할 수 있도록 시설점검과 개선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오후 2시부터 시작된 3차 시설점검은 폭염에도 불구하고 실내·외를 오가며 약 2시간 동안 이어졌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등 신체가 자유롭지 못한 장애인 점검자들은 이동의 제약이 많았지만, 문턱부터 바닥재까지 모든 시설을 꼼꼼하게 체크하는 모습이었다. 최소한의 법적요구에도 미치지 못한 점들이 발견된 탓에 1차 점검에서 받았던 충격은 이어진 점검에서도 계속됐다.
특히 이번 점검에서는 휠체어 이용객이 문화전당 중심부인 지하 4층에서 지하 3층에 위치한 대극장으로 이동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리프트’가 무용지물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휠체어 하나가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리프트에 몸집이 큰 전동휠체어 및 스쿠터는 진입조차 불가능한 데다 수동으로 움직이는 구조라서 모든 이동약자의 접근권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 시대착오적인 리프트 대신 엘리베이터 하나만 제대로 설치했다면 큰 문제가 안 됐을 사항이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라고해서 이동권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날 점검에 앞서 민주평화광장에서 지하 4층인 문화전당으로 이동하기 위해 대책위는 정식 경로가 아닌 소방도로를 이용했다. 지상에서 지하로 통하는 유일한 관문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기 때문이었다.
기계 고장이나 부득이하게 발생하는 화재사고 등에 이동약자들이 처하는 무방비 상태를 방지할 대책은 없어 보인다.
이와 관련해 간담회 자리에서 광주장애인사격연맹의 오재헌 회장은 ‘일자 에스컬레이터’ 도입을 대책으로 제시했다. 화재 등 기계작동이 멈출 시 이동약자들이 에스컬레이터의 경사면을 이용해 이동이 가능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 오 씨의 설명이다.
이밖에도 비상 시 사면초가에 놓이는 이동약자들을 구제할 혁신적인 장치의 필요성이 계속 제기됐다.
장애인 화장실에 대한 지적 또한 계속됐다. 문화전당 시설 전체에 80여 개의 화장실 중 장애인 화장실이 몇 개인지조차 파악할 수 없는 가운데, 대책위가 꼽은 장애인이 이용하기 편리한 화장실은 딱 한 군데에 불과했다. 문화정보원에 위치한 장애인 화장실은 버튼식 자동문으로 이동이 자유로운 면적에 좌변기 옆 손잡이 및 세면대 등이 잘 갖춰졌다. 하지만 나머지 장애인 화장실은 이용편의에 어긋나는 점들이 하나 이상 지적됐다.
점검 과정에서 대책위를 가장 당혹스럽게 만든 시설은 문화정보원 내 도서관에 설치된 15개의 자동문이었다. 이 자동문은 도서관과 실내 대나무정원 사이에 위치한 문으로 벽면을 따라 얼마간의 간격을 두고 주르륵 세워진 형태다.
문화전당 5개원의 모든 주 출입구 가운데, 자동문이 단 한곳도 없는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대부분 압력식 여닫이문으로 혼자 문을 여닫고 이동할 수 있는 이동약자는 드물다는 게 대책위의 지적이다.
이밖에도 이동약자에게 반드시 필요하지만,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는 시설 가운데 시각장애인 음성안내 시스템이 있었다. 시각장애인이 공공시설 등을 이용할 때 음성안내기를 작동시키면 장소에 대한 설명과 방향 지시 등이 안내되도록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야 하지만 문화전당 측은 이를 단 한 군데도 설치하지 않았고 설치 계획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간담회에 참석한 문화전당 관계자들은 “(대책위의) 지적사항 중 예산 등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고려, 개선하겠다”고 밝혔지만 “법으로 규정한 사항들은 모두 지켰다”는 것을 강조해 공분을 사기도 했다.
대책위의 문화전당 편의시설 개선 요구는 강경하다.
이들은 간담회 자리에서 “법이 기본이지만, 이동약자들의 실제 체감 편의성이 훨씬 중요하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국립’이란 말을 떼고, ‘아시아’를 빼고 ‘문화’도 제하고 나면 그냥 ‘동구의 전당’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장애인들을 위해 문턱을 낮춘다는 말로는 안 되고 아예 문턱이 없어야 한다” 등의 입장을 표명하며 오는 9월로 예정된 문화전당 개관 이전 시설 개선을 호소했다.
한편 대책위 등이 3차에 걸쳐 확인한 문화전당의 편의시설 점검사항은 보고서 형태로 정리돼 문화전당 측에 전달될 예정이다. 또한 이날 점검에 참여한 박혜자 의원 측은 오는 6월 임시국회에서 긴급현안질의를 통해 문화전당 편의시설 관련 책임을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김우리 기자 uri@gj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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