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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 규정 미비한 시각장애인 편의시설, 보행환경 개선되려면
시각편의센터
2024-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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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다한 일이에요. 가게 유리문에 부딪히기도 하고, 거리에 세워진 것들에 걸려 넘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시각장애 1급을 가진 박한별(관현·23)씨는 5월17일 정문에서 이대역으로 향하는 하굣길에서 공사 중인 건물의 인부와 부딪혔다. 인부가 일하던 건물은 직선 보행을 돕는 선형 점자블록에서 약 83cm 떨어져 있었다. 한 사람이 서 있기만 해도 거의 남지 않는 만큼의 공간이다. 또 박씨가 다니는 도로에는 입간판, 화분, 자전거 등 장애물이 인도를 가로막고 있다. 서울시에서 보도공사에 필요한 법률과 지침을 종합해 발간한 보도공사 설계시공 매뉴얼(보도공사 매뉴얼)에 따르면 선형 점자블록 60cm 이내에는 장애물이 없어야 한다. 박씨는 평소에 시각장애인용 흰지팡이(케인)로 도로경계석을 따라 방향을 찾지만 정문 거리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나마 의존할 수 있는 점자블록마저도 좁은 도로 군데군데 위치한 장애물로 인해 보행이 어려운 상황이다. 박씨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대학에 재학 중인 시각장애학생12명(2024년 1학기 기준)이 모두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제대로 관리 안 되는 점자블록, 관리 규정은 강제성 없어


이대학보에서 우리대학 인근 시각장애인 보행편의시설(점자블록, 음향신호기 등)을 전수조사한 결과, 기준에 맞지 않게 설치된 것이 많았다. 조사 범위는 우리대학 정문, 후문, 경의선 신촌역 주변 도로 (▲이화여대길 ▲신촌로 ▲신촌역로 ▲성산로의 횡단보도 93개)다. 정문부터 이대역까지는 2023년 연속 선형 점자블록을 설치하며 점자블록을 모두 정비해 관리 상태가 양호했다. 반면 후문 인근 성산로의 600m 길이 거리에 이어진 횡단보도 점자블록 30개는 기준에 맞지 않게 설치됐다. 횡단보도까지 시각장애인에게 길을 유도하는 선형블록은 없었고, 횡단보도 끝 두 줄이어야 할 점형블록은 한 줄뿐이었다. 점자블록의 방향이 횡단보도가 아닌 차도를 향해 있는 경우도 두 곳 있었다. 조사 범위 내 횡단보도 점자블록의 적정설치율은 41.5%로 보도공사 매뉴얼에 맞게 제대로 설치된 점자블록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진행방향을 안내하는 선형 점자블록이 횡단보도가 아닌 차도를 향하고 있다. 변지연, 임수미 미디어기자

진행방향을 안내하는 선형 점자블록이 횡단보도가 아닌 차도를 향하고 있다. 변지연, 임수미 미디어기자


아예 점자블록이 설치되지 않은 곳도 있었다. 정문, 후문, 경의선 신촌역 등 우리대학 인근 횡단보도의 점자블록 미설치율은 12.8%였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한시련)가 2023년 조사한 지방자치단체(지자체) 청사, 장애인 단체가 위치한 건물 등의 반경 300미터 횡단보도 미설치율은 3.5%였던 데 비하면 높은 수치다. 특히 횡단보도 앞에 설치되는 음향신호기와 자동차 진입 억제용 말뚝(볼라드) 앞에는 이를 알리는 점자블록을 설치해야 하지만, 우리대학 인근에서는 13.3%(음향신호기 앞), 26.0%(볼라드 앞)에만 점자블록이 설치돼 있었다. 서대문구 도로과 김태환 주무관은 우리대학 인근의 규정에 어긋난 점자블록에 관해 “동별로 관리자를 두고, 보도공사 매뉴얼에 따라 매년 전수 점검하고 있지만 점검자의 재량에 따라 매뉴얼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며 “파손과 설치 여부 위주로 살피다 보니 세부 사항을 놓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점자블록을 관리하는 명확하고 강제성 있는 규정은 부족한 상황이다. 횡단보도 점자블록 설치를 규정하고 있는 교통약자의이동편의증진법(교통약자법) 제11조는 ‘편의시설을 설치·관리하는 자는 설치기준에 맞게 유지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점자블록 등 시각장애인 보행편의시설 점검 및 관리 기준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고 관리되지 않았을 때의 불이익도 나와 있지 않다. 이진원 시각장애인편의시설지원센터장(센터장)은 “점자블록 관리 주체와 의무에 관한 포괄적인 법률이 마련돼 있으나, 구체적인 점자블록의 유지 관리 방법을 명시하지 않아 관리 사각지대에 놓이기도 한다”며 “관리자가 설치기준에 관해 이해가 부족한 경우 점자블록 설치가 잘못된 채로 유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보도공사 매뉴얼은 어겼을 때도 실질적인 처벌은 이뤄지지 않는다. 시각장애인 박씨가 보행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처럼 점자블록 이용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도로 위에 있는 것은 매뉴얼에 위반된다. 하지만 서대문구 도로과 차원근 주무관은 “신고가 접수돼도 교통약자법으로 규제하기 어려우니 도로법에 따라 도로점용 허가 없이 적치한 경우로 보지만, 과태료 부과가 아닌 계도 차원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이 대표발의한 교통약자법 개정안에서 제33조가 신설됨에 따라 9월15일부터는 장애인을 위한 보도 이용을 방해할 시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게 된다.


성산로에 위치한 횡단보도. 점형블록은 한 줄 뿐이고 선형블록이 있어야 할 곳에는 외국어 인사말이 쓰여 있다. 횡단보도와 점자블록의 거리도 기준보다 멀다. 하영은 미디어기자

성산로에 위치한 횡단보도. 점형블록은 한 줄 뿐이고 선형블록이 있어야 할 곳에는 외국어 인사말이 쓰여 있다. 횡단보도와 점자블록의 거리도 기준보다 멀다. 하영은 미디어기자



성산로에 규정에 맞지 않은 점자블록이 설치된 것은 2010년 ‘디자인서울거리’를 조성하면서부터다. 횡단보도 방향을 안내하는 선형블록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헬로’, ‘你好’(니하오), ‘Guten tag’(구텐탁) 등 외국어 인사말이 쓰여 있다. 2019년 서울특별시와 각 자치구가 보도상 장애인 안전시설 정비사업으로 시도 410개 노선의 횡단보도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당시 성산로에 선형블록이 없는 것이 문제로 지적됐으나 보도의 상태가 양호해 차후정비로 분류됐다. 예산상 우선순위에서 도로 파손 등 안전에 위협을 줄 수 있는 곳이 시급정비구역으로 분류됐다는 게 자치구의 설명이다. 이 센터장은 “디자인 요소가 법이나 지침을 우선할 수는 없다”며 “거리를 조성할 때 교통약자 전문가와 충분히 상의했다면 디자인을 살리면서도 점자블록을 올바르게 설치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는 2019년 전수점검 결과에 관해 2020~2026년 1만1144곳의 점자블록을 보수할 계획이며, 2023년까지 61% 완수했다고 밝혔다.



관리 주체에 따라 책임이 나뉘는 시각장애인 편의시설



같은 도로 안에서도 각기 다른 관리 주체가 특정 시설을 담당하기 때문에 시각장애인 보행편의시설 관리 상태가 좋지 않아도 종합적으로 감독할 방법은 없다. 일반적으로 서울시 내 보도는 각 자치구와 서울시 도로관리과에서 관리하지만 중앙차로 안에 있는 버스 정류장 점자블록은 서울시 도로사업소 소관으로, 서대문구의 중앙 버스정류장은 서울시 서부도로사업소가 현장 관리를 담당한다.


이대후문 중앙 버스정류장에 깔린 점자블록은 버스전용차로가 만들어지고부터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구형 점자블록이 마모돼 케인으로 일반 블록과 질감을 구분하기 어렵다. 서울시 서부도로사업소는 “점자블록을 점검하지 않고 순찰만 돈다”며 “구형 블록이더라도 예산상의 문제로 교체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관할 주체가 직접 나서지 않으면 관할 부서가 아닌 곳에서는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 서울시 도로관리과 박상위 보도관리팀장은 “타 부서나 자치구에서만 관리하는 도로에 관해서는 점검이 어려우며, 예산을 검토하는 서울시의회 상임위원회가 달라 정비에 예산을 편성하는 것도 어렵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관리 대상 시설이 아닌 곳에 민원이 들어오면 담당 부서나 기관에 검토 요청 정도만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부서 간 연계가 부족해 점자블록이 설치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음향신호기의 기기는 기전과에서 설치하지만 그 앞에 설치되는 점자블록은 구청 도로과가 담당한다. 서부도로사업소 기전과 노경환 주무관은 “음향신호기를 설치하며 점자블록이 없는 건을 모아서 도로과에 설치를 요청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대문구 도로과 김 주무관은 “최근 10개월간 음향신호기 앞 점자블록 설치 요청이 없었다”고 말했다. 볼라드의 경우에도 설치 후 진행방향에 장애물이 있음을 알리는 점형 점자블록을 깔아야 하지만 볼라드 설치 부서와 점자블록 설치 부서 간 업무 연속성이 미비한 실정이다. 한시련 홍서준 연구원은 “보도 상의 여러 요소가 각기 다른 부서로 편재돼 있어, 부서 간 유기적인 협력이 부족해 발생한 현상”이라며 “보도에 시설물을 설치할 때 장애인 관련 전문 기관에 자문하는 등의 소통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 보행환경 개선을 위한 인식 제고 필요해



현재까지는 제도로 규제하기 어려워 담당자의 역량이 중요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담당자가 장애인 보행환경에 관심이 클수록 시각장애인 보행환경이 빠르게 개선될 수도 있다. 우리대학 장애학생지원센터에서 2023년 5월 서대문구에 이대역~정문 연속 선형블록 설치를 요청했고, 같은 해 10월 완공됐다. 장애학생지원센터 고윤자 전담연구원은 "당시 담당자가 점자블록의 필요성에 관해 긍정적으로 판단해 예상보다 빠르게 완공됐다"며 "수요에 따라 예산이 사용되더라도 시각장애인에게 점자블록은 보행 안전과 직결돼 있으니 시민의 안전 문제라고 생각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 연구원은 서대문구에 요청할 때, 매년 잠재적으로 입학할 장애학생 수가 늘어날 수 있으며 이화여대길은 학생뿐 아니라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시각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어 보도의 접근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점자블록 설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시각장애인의 보행환경에 관해 사회 전반적인 인식 제고도 필요하다. 우리대학 특수교육연구소 박진석 전임연구원은 “사람들이 많이 요구할수록 빠르게 변하지만, 장애라는 영역은 대부분 장애인만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아 변화를 요구하는 사람의 수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지체장애인을 위해 만들어진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비장애인도 많이 활용하듯, 음향신호기와 같은 시각장애인 편의시설도 모두가 사용한다는 인식이 퍼지면 관심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시련 홍 연구원은 “지자체의 관리가 부족한 측면도 있지만, 시민들의 민원 등을 통해 시각장애인 보행환경 개선을 위한 유기적인 관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출처: 이대학보

링크: https://inews.ewha.ac.kr/news/articleView.html?idxno=7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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